1. 그것은 손으로 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즉물적인 것이어야 한다.
2. 어떤 장면을 포착하는 순간 두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저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인가.
3. 많은 매니아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그것과 자신의 거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엄청난 거리가 시공을 줄이는 테크놀로지로 인해 인지되지 못한다.
때문에 그것은 객관적으로 인지되지 못하며 심한 경우에는 그것과의 동일시를 넘어서 그것을 숭배하는 경향으로까지 발전한다.
'빠'가 되는 순간 그러한 경향에서 벗어나는 게 어려워진다.
4. 테크닉 혹은 스킬은 최대한으로 끌어내고 넘어서는 것이다.
5.까르띠에에 대한 비평집을 읽으면 이것은 마치 창을 던지는 것에 비유된다. 최대한 빠르고 날카롭게 갑옷 사이의 틈새를 포착하고 그것을 찌르는 것과 비슷한
..표제는 주어져 있지 않지만 ‘제1악장 Moderato-Allegro non troppo는 어렸을 때의 회상, 제2악장 Allegretto는 다시 돌아오지않는 과거에의 씁스레한 미소, 제3악장 Largo는 고뇌의 눈물, 제4악장 Allegro non troppo는 모든 의문에 대한 회답’이라고 적혀 있다...
(네이버 사전 펌)
음악이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했던 전체주의 국가에서 쇼스타코비치는 고난을 겪는다.
어두침침한 그의 4번 교향곡은 당국으로부터 퇴폐적인 부르주아 문화에 젖은 곡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쇼스타코비치는 정치적인 요구를 만족시키면서도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모색했고
절치부심하여 5번 교향곡을 발표하고 불멸의 반열에 올라선다.
5번, 9번 교향곡은 베토벤의 전통, '고뇌에서 환희로'라는 주제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쇼스타코비치의 5번 역시 압제, 고난을 딛고 일어나는 인간의 힘을 포착하고 있다.
파시즘과 스탈린 독재, 비밀경찰, 전쟁의 시대에 한 인간의 가치는 시대에 매몰되고 휩쓸리고 짓밟혔을 것이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그 인간의, 핍박당하는 인간대중(왠지 인민, 민중이라고 말하면 의미가 너무 한정되는 것 같다..),
, 시대를 떠다니는 인간들, '당하는' 인간들이 승리할 것을 말한다.
이런 음악이 인간을 핍박했던 소비에트 당국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쇼스타코비치는 아주 멋지게 그들을 한방 먹인 셈이다.
또 쇼스타코비치 5번은 냉전시대 남한에서 최초로 연주된 공산권의 음악이라고 한다.
번스타인과 뉴욕필이 내한공연을 하려고 했는데 박정희 정권에서 이 음악을 공산권의 음악이기 때문에 레퍼토리에서 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번스타인이 쇼스타코비치를 빼면 내한공연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강하게 나가자 어쩔 수 없이 당국이 굴복해서 쇼스타코비치 5번은 한국에서 최초로 연주된 공산권의 음악이 되었다.
압제받는 인간이 존재하는한 쇼스타코비치 5번이 주는 교훈은 영원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