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참 밝다.

나는 아까 <솔약국집..>을 보면서 마음이 약간 저몄다.
분명 저 드라마가 현실성이 조금 부족하고 신파성이 조금 있고 결국 말도 안 되고 이렇게 생각해봐도
나는 저런 드라마에 약하다. 주로 주말 저녁에 하는 KBS드라마들...

눈물이 너무 많다.
연장선상에서 왠만한 멜로나 다큐같은 것은 보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 왠만하면 재미있는 영화들을 많이 보려고 한다. 액션이나 판타지, 공포, 스릴러, 뭐 멜로를 제외한 것은 거의 다.
사람들이 멜로물이나 가족물을 보러 가자고 그러면 거절한다. 그런 영화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실은 엄청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것은 차치하고 그게 훌륭한 것이 되었든 엉터리가 되었든 쉽게 공감한다.
쉽게 질질 짠다.

그러므로 그런 영화들은 되도록 훌륭한 것을 골라 아무도 없고 조용할 때 혼자서 보려 한다.
<봄날은 간다>나 <조제....>, <8월의 크리스마스>, <색,계>, ...가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가끔은, 같이 울고 싶다. 남들과 같이 우는 재미에서 감동적인 글을 쓰고, 감동적인 영화를 만드는 거겠지?


대보름달이 참 밝다. 낮이었으면 양털구름이었을 구름들이 달빛을 받쳐주고 있다.
안산에 오면 하늘을 보고 걷는데, 신촌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안산이 좋다.




집에 있는 컴퓨터의 하드가 뻑났다.
고로 2009년 3월 이전에 쓴 글들, 사진들이 모조리 날아갔다.
'백업해놓을걸 ㅠ-ㅠ' 딱 이 심정이다.
사진쪽 손실이 아주 큰데 한 만장정도되려나.
특히나 내가 그간 들인 공들을 생각하면 조금...

그러나 반대로 내가 찍은 사진들에 대한 감정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후련하기도 하다.
내게 있어서 그것들은 그 시절과 거의 동일한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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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기로 마음먹은 추석명절이지만 역시 집에 들어와 앉아(누워;;)있으니 아무래도 TV앞에 하루종일 붙어있게 되었다.

오늘 밥을 먹다 TV드라마에서 인상깊은 대사가 들었는데

"~하기는 죽기보다 싫어."라는 것이었다.

 

죽기보다 싫은 것이라. 그렇다면 그것이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아마 대본에서는 매우 싫다는 의미, 일상적인 의미에서 쓴 것일 거지만

나는 수저를 들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무엇이 목숨보다 중요한가?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으로 두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일리아드>에서는 (욕되거나 평범하지만 길고 '행복한') 삶과 (정의로운 행동으로써 얻는) 영원한 명예에서의 선택이 주어진다.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선택권을 얻지만 망설임없이 (응당 행해야할)친구의 복수를 하고 영원한 명예를 얻고 요절한다.

여기에서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예, 정의로운 삶이다.

<일리아드>는 영웅의 삶을 권장한다.

 

어떻게 보면 <일리아드>의 연장선상에서 간계를 사용했던 오디세우스는 <오디세이아>에서 10년 동안 벌을 받는다.

그러나 <오디세이아>는 권고의 성격을 가진 <일리아드>와 달리 인간이 목숨보다 더 중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경고한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와 그의 병사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그들의 욕망이다.

오디세우스를 미워하는 신들의 사주로 군인들을 노리는 존재들은 그들의 욕망을 미끼 삼아 목숨을 앗아간다.

식욕 때문에 마법에 걸려버리기도 하고 거인에게 잡아먹히기도 하면서 결국 여행의 끝에는 오디세우스 홀로 그의 고향 이타카에 도달하게 된다.

오직 오디세우스만이 그의 욕망을 이겨내고 긴 여정의 끝에 그의 고향에 도착하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그의 욕망을 이겨낼 수 있었는가. 그의 여행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는 그의 병사들과 달리 잠깐의 욕망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래서 개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오디세우스는 욕망을 통제할 줄 알았다. 그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지혜를 발휘해 죽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적인 욕망때문에 프시케와 몇 년을 허송세월했지만 결국 그는 그것에서 벗어날 줄을 알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지혜'로운 자였고(실은 간교하단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그를 수호하는 것은 지혜의 여신 아테나였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가 죽음으로 행하는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선 지혜와 이성에 의지해야 한다고 호메로스는 <오디세이>를 통해 말하고 있다.

 

어찌 보면 둘은 상반되는 듯싶다. 일리아드를 보면 욕된 삶 따위는 버리고 영원한 명예를 택할 것을 말하고 오디세이아를 보면 욕망에 빠지지 말고 지혜에 의지해 그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두 작품 중에 일리아드의 중요성이 더 높았다고 한다. 일리아드의 영웅적인 삶에 경도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디세이아의 결말부분은 조금 처량하다. 장엄한 헥토르의 장례식과 달리 부하들을 모두 잃고 단신으로 돌아와 간교를 꾸며 처절한 복수극을 실행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뭔가 굉장히 씁쓸하다. 일리아드의 정의에 따르면 오디세우스의 복수는 정당한 것이지만 <오디세이아>에서 그런 정의를 바라보는 호메로스의 시선이 달라진 듯 우리는 그의 복수를 보며 뭔가 뒷맛이 개운치 못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이게 진짜 삶이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싶다. 난 그래서 <일리아드>가 재미있고 보기 좋지만 진짜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오디세이아>라고 생각한다. 영웅이 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그 스스로의 삶을 현명하고(때로는 간교하게) 영위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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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명절, 기분 좋다.

모짜르트를 듣고, 글을 두어편 써볼 예정이다. 오랜만에 철원에도 한번 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황동규의 시가 보고 싶다. 황동규의 시를 보니 슈베르트도 듣고 싶어졌다.




마지막 산책길
-오문강 시인에게


어쩌다 한 보름 산책 놓친 길
아파트 내어놓기 이틀 전
마지막으로 걸어본다.
마지막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놓고
한 시간쯤 노래하는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를 막 틀어놓고 나왔다.
방이여
오늘은 겨울 안개 속에 버클리 마리나까지밖에 보이지 않는
방이여
짐 싸느라 부산한 체하는 나를 내보내고
혼자서 한번 들어다오
『겨울 나그네』끼마저 벗겨진
저 벌거벗은 슬픔과 맑음을.
크리스마스 다음다음날
보름 전보다도 한결 풀이 파래진 바닷가 길
낚시꾼 하나 없는 길.
주인 없이 방이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이 결국 삶의 마지막 모습.
포르테시모!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졸던 프라이팬이 화닥닥 바닥에 떨어진다.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아 내 끼마저 벗겨진 소리,
벌거벗은 흥취.
좀처럼 듣기 힘든 샌프란시스코 만의 물새 하나가
옆을 스치며 운다.
(1997. 12. 27, 에머리빌에서)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pp64~65, 황동규, 문학과지성사2000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운하고 또 비참한 존재 같소.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빠진 건강과 완전한 절망에 빠져 모든 주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한 남자의 심사를 헤아려 보시오.
간직했던 모든 희망이 하나같이 다 무너져버리고
이제는 사랑과 우정으로도 위로받지 못하게 된 남자를 상상해 보시오.
매일밤 침대에 누울 때마다 다시는 아침에 깨지 않기를 기도하오.
그러나 아침은 어김없이 오고 슬픔은 밤새 나와 같이 잠잤다가 다시 깨어 내 옆에 그대로 있소."
1824년 3월 31일, 슈베르트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





학교에 나오는 길에는 최인훈의 소설과 황동규, 정현종의 시를 빌렸다.
나는 싫어하는 것들을 많이 봤으니 좋아하는 것들과 시간을 함께할 참이다.
휴일에는.
음악처럼 살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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