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아리한다고 쪼~금은 들떠있던 날들.
뭐 새로운 시작이었지.
햇살이 좋았던 날들로 기억한다.
물들기 시작한 단풍, 직선거리, 핫도그냄새, 선선한 바람, 주말 오후, 따스한 햇살,
다 기억해.
mx, gol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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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의 부모님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벽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었고, 이따금 불어대는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렸다. 그리고 밝은 달빛이 간간이 방으로 새어 들어왔다. 하인리히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한 이 방인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열망을 불러일으킨 것이 과연 값진 일일까?"
 그는 중얼거렸다.
 "내겐 큰 욕심도 없어. 그렇지만 한 번만이라도 푸른 꽃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대체 이런 생각이 마음속으로 떠나지 않는군. 다른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글로 쓸 수도 없단 말이야. 이런 마음은 처음이야. 마치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선잠이 든 채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 같아. 이 세상에서 나 말고 과연 누가 푸른 꽃에 대해 이토록 성가실 정도로 생각하고 또 생각할까? 하긴, 푸른 꽃을 보고 싶은 이 낯선 열망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
그때 하인리히를 이끄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름아닌 빛 바랜 푸른 꽃이었다. 높은 곳에 솟아 있는 그 꽃에 그는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푸른 꽃은 샘 옆에 피어 있었다. 그는 푸른 꽃의 빛나는 넓은 잎에 손을 대보았다. 푸른 꽃 주위엔 갖가지 빛깔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푸른 꽃의 무덤이 발산하는 짙은 향기는 그의 후각을 충만하게 했다. 그의 눈엔 오로지 푸른 꽃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푸른 꽃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침내 하인리히는 푸른 꽃에 더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해 버렸다. 잎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면서 줄기에 찰싹 달라붙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푸른 꽃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인리히에게로 허리를 숙였다. 꽃잎은 보다 짙은 푸른빛으로 반짝였고, 그 속에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맴돌았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인리히는 푸른 꽃에 드리운 얼굴을 보며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
하인리히는 춤이 끝나지 않고 영원토록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는 이미 황홀함에 취해 파트너의 장밋빛 붉은 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틸다의 맑고 영롱한 눈빛도 그를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크고 그윽한 눈을 바라보자, 하인리히는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청춘이 깨어나 말을 건네는 듯했다. 눈동자의 옅은 하늘빛 바탕에는 갈색 동공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그녀의 이마와 코는 두 눈가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백합 같았다. 가늘고 흰 목덜미에는 파란 힘줄이 매력적으로 곡선을 그리며 부드러운 두 뺨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멀리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녀의 갈색 곱슬머리의 조그만 머리는 그녀의 우아한 자태 위에서 떠다니는 것 같았다.
<Heinrich von Ofterdingen>中


섬세하고 고결한 영혼을 가진 소년 하인리히는 낯선 꿈에서 푸른 꽃을 보고 그것에 나타난 얼굴을 찾아 길을 나선다. 가는 길에 그는 상인, 기사, 광부, 은둔자 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길을 고민하게 된다. 어머니의 고향, 아름다운 아우구스부르크에 도착한 그는 시인인 클링조어를 만나게 되고 그의 딸 마틸다에게서 푸른 꽃에 나타난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만 마틸다는 요절하고 하인리히는 결국 시인이 된다.

쉽게 술술 읽었는데 그렇다고 쉽게 이해되는 글은 아닌 것 같다. 겉은 쉬운데 파고들기 어려운 텍스트. 그나마 하인리히와 마틸다의 결혼식에서 클링조어가 축사로 읊는 파블과 에로스의 서사에서 주제가 드러나는데 거기에서 노발리스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대결, 그리고 낭만주의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 나는 거기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하인리히의 성장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갔다. 하인리히는 나에겐 무엇이 가장 잘 맞는 일일까? 무엇을 해야할까? 이런 고민을 쭉 안고 있는데(그 이면에는 사랑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내 사랑일까?) 그것의 상징으로서 푸른꽃을 이해하는 것도 참 문고판스러운 해석이지만 괜찮을 성 싶다. 내 처지에 대입시켜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 세대는 모두 자기의 푸른꽃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서있지 않겠는가.


*

방에 덩그라니 놓인 외로움과 싸우다가 체력이 달려 열병이 도진 나는 약을 구하듯이 황급히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틀었다.
머리와 가슴의 통증과 밤의 고요함과 은은한 빛과 베토벤을 버무러서 나는 스스로에게 대증요법을 행한다.
제약사는 푸르트뱅글러 선생.

많은 이가 듣는다고 해서 그 음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클래식 생초짜라서 어쩔 수 없는 감이 있지만 간밤에 들은 '합창'은 정말 뭐라고 해야하나 베토벤선생과의 교감이랄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칠 듯한 고뇌와 고독을 뚫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는 한 인간의 위대한 시도.
4악장에서는 그게 단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뇌에서 환희로, 다시 고뇌, 고뇌에서 환희로, 망설임, 등등이 반복되다가 경쾌하게 끝을 맺는데, 베토벤은 이런 추락과 상승을 우리에게 제시하면서 음...구원받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끝에 이르러 나는 생각했다. 정말 구원이란 게 있을 지 모르겠다고. 베토벤의 음악에 따르면.

나는 카라얀보다 푸르트뱅글러가 좋은 것 같다. 카라얀은 꾸준하고 뭔가 규범에 딱딱 들어맞는 느낌은 있는데 푸르트뱅글러가 보여주는 생동감은 없는 듯 싶다. 뭐 그 둘의 지휘를 다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베토벤을 놓고보자면 그렇다. 푸르트뱅글러는 약간 자기 멋대로인데(한없이 질질 끌다가도 빵터뜨리는 부분에서는 미친듯이 달리는) 난 오히려 그게 베토벤에 대한 청자의 이해를 돕는 효과를 주고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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