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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사람들의 점진적인 무산계급화와 대중의 점진적인 형성은 동일한 사건의 양면이다. 파시즘은 새로이 생겨난 무산계급화한 대중을 이 대중이 폐지하고자 하는 소유관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은 채 조직하려 하고 있다. 파시즘은 대중으로 하여금 결코 그들의 권리를 찾게 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표현하게 함으로써 구원책을 찾고자 한다. 대중은 소유관계의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파시즘은 소유관계를 그대로 보존한 채 그들에게 표현을 제공하려고 한다. 파시즘이 정치적 삶의 심미화(審美化)로 치닫게 되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다. 단눈치오와 함께 데카당스가 정치의 영역에 진입했고, 마리네티와 함께 미래주의가, 그리고 히틀러와 함께 슈바빙(Schwabing)전통이 정치에 진입했다.
 정치의 심미화를 위한 모든 노력은 한 점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데,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전쟁, 오로지 전쟁만이 전승된 소유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규모의 대중운동에 하나의 목표를 설정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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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네티의 에티오피아 전쟁에 대한 선언문 인용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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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가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날의 전쟁미학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즉 생산력의 자연스러운 이용이 소유 질서에 의해 저지당할 떄는 기술적 수단과 속도 및 에너지 자원의 증대는 불가피하게 생산력의 부자연스러운 이용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고, 또 이러한 필연성의 마지막 출구가 바로 전쟁이다. 전쟁의 파괴성은 사회가 기술을 하나의 기관(器官)으로 병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으며, 또 기술이 사회의 근원적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그 가공할 양상을 두고 볼 때 엄청난 생산수단과 이 생산수단을 생산과정 속에서 충분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 사이의 괴리(바꾸어 말하면 실업과 판매 시장의 결핍)때문에 생겨난다. 제국주의 전쟁은 일종의 기술의 반란이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 전쟁에서 기술은 사회가 평소 자연적 재료를 통해 기술에 부여하지 못했던 권리들을 "인간재료"에서 거두어들이고 있다. 기술은 항공운항 대신 폭탄을 운반하고, 아우라를 새로운 방식으로 없앨 수단을 가스전(戰)에서 발견하였다.
 파시즘은 "세상은 무너져도 예술은 살리라"고 말하면서 기술에 의해 변화된 지각의 예술적 만족을, 마리네티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전쟁에서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예술지상주의의 마지막 완성이다. 일찍이 호메로스의 시대에 올림포스 신들의 구경거리였던 인류가 이제 그 스스로 구경의 대상이 되었다. 인류의 자기소외는 인류 스스로의 파괴를 최고의 미적 쾌락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936, 제2판) Walter Benjamin 저, 최성만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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