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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덩그라니 놓인 외로움과 싸우다가 체력이 달려 열병이 도진 나는 약을 구하듯이 황급히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틀었다.
머리와 가슴의 통증과 밤의 고요함과 은은한 빛과 베토벤을 버무러서 나는 스스로에게 대증요법을 행한다.
제약사는 푸르트뱅글러 선생.

많은 이가 듣는다고 해서 그 음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클래식 생초짜라서 어쩔 수 없는 감이 있지만 간밤에 들은 '합창'은 정말 뭐라고 해야하나 베토벤선생과의 교감이랄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칠 듯한 고뇌와 고독을 뚫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는 한 인간의 위대한 시도.
4악장에서는 그게 단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뇌에서 환희로, 다시 고뇌, 고뇌에서 환희로, 망설임, 등등이 반복되다가 경쾌하게 끝을 맺는데, 베토벤은 이런 추락과 상승을 우리에게 제시하면서 음...구원받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끝에 이르러 나는 생각했다. 정말 구원이란 게 있을 지 모르겠다고. 베토벤의 음악에 따르면.

나는 카라얀보다 푸르트뱅글러가 좋은 것 같다. 카라얀은 꾸준하고 뭔가 규범에 딱딱 들어맞는 느낌은 있는데 푸르트뱅글러가 보여주는 생동감은 없는 듯 싶다. 뭐 그 둘의 지휘를 다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베토벤을 놓고보자면 그렇다. 푸르트뱅글러는 약간 자기 멋대로인데(한없이 질질 끌다가도 빵터뜨리는 부분에서는 미친듯이 달리는) 난 오히려 그게 베토벤에 대한 청자의 이해를 돕는 효과를 주고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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