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서거라는 존칭을 생략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게시판에 올린 글에는 그 단어들을 사용했었다. 여기엔 내 개인적인 글쓰기 방식으로 그의 죽음에 대해서 담담하게 적어보고 싶다.(시저의 죽음, 당통의 죽음, 그냥 이런 식)
이게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표할 수 있는 최대의 조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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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은 환희의 순간들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기는 국난으로 시작해서 경제성장과 정보화가 그 성과를 막 피워낼 때 그 막을 내렸다.
월드컵에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그 자신들의 결집된 힘을 느꼈으며 그들이 인터넷이라는 선진화된 미디어수단을 보유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실을 자각했다.
그 사람들이 곧장 정치화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사람들은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것처럼 뭔가 혁신적인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고 느꼈다.
변화의 방향은 두가지 정도로 짚을 수 있는데 하나는 일반 대중들의 실질적인 참정권에 대한 요구, 다른 하나는 통일문제에 대한 자주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기에 한국의 의회민주주의제도는 제 궤도에 올랐지만 행정부의 강력한 힘은 여전했고 의회 내에서의 정당 간의 극렬한 갈등양상은 국민들에게 하여금 심한 환멸감과 함께 이 정당제도의 틀 속에서는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가져왔다. 뭔가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는데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에서의 집회가 응원이라는 명분 아래 그 제약에서 풀려남으로써 기존에 데모로서의 거리운동을 하지 않았던 세대들에게 거리에서의 정치를 맛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십만명이 뿜는 숨결, 목소리에 압도당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월드컵에서의 성과는 거리에서의 운동을 민족적인 자긍심과 연결시킴으로써 효과적으로 민족주의적인 정당성을 결합시켜주는 요소가 되었다. 군중들은 2002년에 새로운 힘과 수단을 얻었다.
한민족에 대한 긍지는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양상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마침 국민정부의 대북정책은 6월선언을 통해서 큰 성과를 거두었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무르익은 남북의 화해무드에서 민족에 대한 긍지는 통일 문제를 민족화해를 통해서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보는 견해를 낳았다. '레드컴플렉스의 극복'이라는 문제에서 보듯이 기존의 극렬한 반공주의에서 보다 개방적인 사고가 용인되었는데, 이 시기 보수진영에서는 이러한 분위기를 잡아내지 못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고집함으로써 한동안 대북문제에 있어서 낙후된 시야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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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끝나고 대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경선이라는 획기적인 후보선출방식을 도입함으로써 국민들의 관심을 선점하는 효과를 거뒀는데 노무현은 처음에는 별볼입없는 군소후보였지만 경선을 통해서 대선 후보로 급부상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나는 노무현의 승리가 두가지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가지는 정치적 센스와 다른 것은 그가 그 시대에 적합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이 둘이 사실은 같은 말일 수도 있겠다.) 노무현이 당시의 대중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는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가 당시 대중들이 원하던 지도자상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소탈하고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항상 서민들편에 서서 타협하지 않으며 살아왔으며 권위적이지 않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회창과 비교하여) 서민적인 그의 모습에 국민들은 열광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당시 참정권은 없는 청소년이었지만, 정말 노무현에게 열광했다. 그 때 노무현은 나의 영웅이었으며 나라를 바꿀 희망이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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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성공, 즐거운 이야기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은 현실이었으며 노무현은 노력했지만 한국의 현실을 완전히 변화시키진 못했다. 기득권층의 힘은 강력했으며 거리에서 환호하던 시민들의 열기는 정치참여로 곧장 이어지진 못했다. 당시의 여당은 강력한 규율을 가지고 있지 못한 느슨한 정치연합이었고(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열린우리당 창당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노무현은 강력한 적들의 견제로 그 어떤 지도자들보다도 권력을 휘두를 수 없었다. 혹자는 그가 추구하던 토론의 문화, 토론에 의한 정치모델이 그의 권위를 약화시켰다고 하는데 정치가 보다 탈권위적이고 협상을 중시하는 문화가 되어도 권력이 약화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현정권의 리더쉽을 보면 그 문제는 명확하지 않는가. 노무현이 실패한 주된 원인은 노무현과 그 지지세력이 약했으며 쉽게 타락했고 그 적들에게 쉽게 극복당했다는 점이다. 또한 북한, 미국관계는 굉장히 영속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일괄타결식의 문제해결을 추구한 그 전략은 애초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아 실패는 여기까지 쓰려고 한다. 실은 여기에 대해서 아직 공부중인 입장이라;;

노무현이 실패했을 때 이명박이 집권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노무현이 성공했다고 해도 우린 아직도 많은 문제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노무현을 통해서 확실히 배울 수 있는 점은 영웅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더라도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는 문제들이 일괄적으로, 한방에 해결되고 세상이 순식간에 바뀌는 그런 일들을 일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실 그래선 안 된다. 민주정부의 강점은 그런 변화들이 신중한 논의를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에 있다.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다수를 통한 의사결정구조의 강점이다. 이명박 집권 이후 노무현은 한동안 이명박의 짐이 되었다.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부의 초기 행정능력을 마비시켰고(아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정당성을 훼손시켰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실패를 발판삼아 집권했기 때문에 노무현을 완전히 극복하지 않으면 완전한 권위를 획득할 수 없다.(이런 의미에서 노무현의 죽음은 이명박이 그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게 만들었다.) 노무현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실은 퍼포먼스에서 노무현을 극복했다면 정말 최선이겠지만 이명박 정권은 우월한 권력을 이용해서 노무현이 임기 말년에 자신을 공격한 방법을 되갚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게 좀 악수라고 생각하는데...실은 이 방법밖에는 없었을 것 같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유착이 거의 확실히 포착되겠지만 노무현의 윤리적인 부분이 파괴되면 노무현 역시도 완전히 정치적으로 파멸할 것이므로 걸어볼 만한 도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회 역시도 완전히 살리지 못하고 노무현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노무현의 극복을 통한 권위 회복은 아마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퍼포먼스로 승부하지 못하면...

그러나 노무현이 없으면 노무현의 정치세력을 묶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노무현은 한국 정치사에서 굉장히 특이한 존재였다. 그의 사상이 절대로 많이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협소한 주류 정치무대에서 노무현은 상당히 급진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큰 정치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특이한 지도자였다. 일국의 정치발전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고 가정하면 그의 노선이 지금은 급진적이지만 언젠가는 보수적인 것으로 여겨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노무현이 그 중심에서 버티고 있었다면 약화되었던 그의 정치적인 세력에게 언젠가 기회가 찾아왔을 것이고 그들은 노무현이라는 이름 아래 쉽게 규합하고 그 노선을 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년 총선무대에서 봤듯이 노무현 없는 민주당 지도자들의 정치적인 카리스마는 아주 고만고만한 것이어서 노무현은 민주당, 넓게봐서는 진보측에 반드시 필요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제 다음 지도자가 탄생하기 전에 진보세력은 일대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게 얼마나 길어질 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한나라당에는 이명박이 있고 박근혜가 있으며, 적어도 영남이 있다. 그러나 진보측, 좁게 봐서는 민주당 측에는 그런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호남은 충성도는 있지만 그게 민주당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노무현같은 지도자가 또 언제 등장할까?
 
노무현의 죽음은 참으로 정치적이다. 어떻게 보면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인생 자체가 그런 길을 걸어왔다. 정치적인 삶. 참으로 묘하지. 노무현에 대한 애도는 이명박과 이 사회의 괴리에 대한 자성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그를 미워했어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죽는 데에 대해 아쉬워하고 뭔가 생각해야하지 싶다. 이명박이 노무현에 대한 애도를 정치적인 저의가 있다고 방해한다면 이는 올바른 상황인식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처는 아니다. 그네들이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은 폭압을 저지르고 있다. 죽은 노무현에 entanglement되어가지고 권력을 남용하는게 그들에게 좋은 일은 아닐게다.(대통령 아저씨 정신 좀 차립시다.)

이제 분석적인 부분은 마치고..요새 자주 생각나는 대사인데 올드보이에 이런 대사가 있다. '아무리 짐승같은 놈이라도 살 권리는 있지 않습니까?' 당연하다. 누구든 태어났으면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어야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선 경건한 마음으로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서 자작극이니 나약한 놈이니 왈가왈부하는 놈들은 죽음을 경시하는, 이 사회의 공동선을 해치는 놈들이다. 죽어마땅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내가 생각할 때 노무현은 적어도 죽어마땅한 죄는 저지르지 않았다. 그가 세상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이 많으면 많았지. 나는 정말 안타깝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를 보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욕봤습니다.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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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1년 뒤에 나와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게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 결심한다.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얼어붙은 가슴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기도하며 살아가기.
09.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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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이질적이고 위험하지만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그 불에 취해버린 사람들이 몇몇 있을 것이다
(물론 방화범은 나쁜 쉐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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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는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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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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