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답답해서 기도실에 와서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어떤 농구커뮤니티에서 초딩 교사가 어떤지 고민하는 글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댓글을 보지는 않았지만 아주 많은 댓글이 올라온 것을 보면 퐈이야가 된 글 같은데, 그 내용이 안정성과 연봉에서 초딩교사라는 직업이 어떤지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일게다.

물론 안정성과 연봉은 중요하다, 중요하다,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너무 뻔한 생각같지만.. 여튼 그게 다일까?

난 그래도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요 몇주간 나를 사로잡았던 직업에 대한 고민들은 죄다 연봉과 안정성이라는 점에 집중되어있었다.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기도실에 엎드려서 절을 하다가 가만히 누워 좁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해봤는데,

정말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원하는지도 흐릿하기만 하다. 

쪼들리게 사는 게 지겹고 사람노릇 못 하는 놈 취급받는 일에 받았던 상처들도 이제 아물지 않아서 여기를 떠나려고 생각했는데,..



자유로워지고 싶다. 전부다 엿을 먹이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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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선선하다. 어제가 입추라고 그랬나. 내일은 아마 교회사람들과 양평으로 나들이갈테고 돌아오면 토요일 오후가 될테고 토요일 오후가 지나면 주일이 오고, 주일이 오면 교회 잠깐 갔다오면 하루가 다 지나고.. 시간이 너무 빠르다. 그래도 빨리 나는 언제나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으면 한다. 


선선하다, 라는 말이 좋다. 선선하다라는 말은 2008년의 여름이 떠오르게 한다. 조제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던 여름을 보내고 나는 그 학기부터 살기로 한 대학교 기숙사에 짐을 풀고 서울에 온 기념으로 서대문에 가서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8월말의 해는 느릿느릿 그 화려한 색채를 하늘에 흩뿌리면서 저물어가고 있었다. 파랗고 어떻게 보면 까만 하늘이 저쪽 끝에서부터 금빛에서 와인빛깔로 점점 물들어가고 있었다. 식어가는 대지 위로 이제 막 가을이 오는 것처럼 바람이 불어 참으로 시원하고 선선했다. 아마도 그런 날씨라면 누구든 마음도 선선해지지 않을까. 절묘하게도 그때 걸려온 전화에서는 그리워하던 목소리가 흘러왔고, 나는 '선선하다'라는 말에 그때의 행복을 버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소하지만 기억에 남는 그 저녁에 본 영화는 이스라엘 영화 젤리피쉬였다. 


아마 젤리피쉬를 포스팅하면서 이런 말들은 이미 쓰지 않았을까 싶지만, 날씨가 선선해지니 그냥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끄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또다른 가을을 맞이하고 선선하다라는 말을 더 풍성하게 가꿔나가야겠다. 신선한 날들이여, 신선한 사람이여. 

보르헤스 글을 볼 일이 있어서 《픽션들》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이런 낙서를 보고 빵 터졌다. 



"역사의 도표"라는 단어를 보고 "봉신연의 마지막 권 제목"을 떠올린 그대는 얼마나 놀라웠을까.

센스쟁이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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