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잠깐 여의도에서 일을 도와줄 때, 모니터 앞에서 시린 눈을 꿈뻑이며 날잡고 쭉 좋은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군대에서 휴가나가면 먹고 싶은 음식 생각을 하듯이 나는 그 시간이 지나면 읽고 싶은 책들에 대해 생각했다. 우선은 운동권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맑스에 대해서 많이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또 그렇게 8,90년대에 행해진 '학습'이 아니게 맑스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는 것 역시 알았다. 8,90년대의 표준적-과학적, 그러니까 교조적 맑시즘에서는 독일 이데올로기같이 철학적이고 난해한 작업들에 대해선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 나는 신물나게 '정치경제학'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건 물론 맑스-엥겔스가 이야기하는 과학적 사회과학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맑스의 '경제결정론'적 해석을 암시하는 레토릭일 뿐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연구실에 들어와서 맑스를 읽게 된 방식은 그 반대의 지점이었다. 정통 맑스주의자들이 아니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서구의 맑스주의자들로부터 윌리엄스에 이르는 이들처럼 나는 문화적이고 상부구조를 중요시하는 해석들을 배웠다. 그러므로, 내가 사무실에서 계속 읽고 싶었던 글은 독일 이데올로기였다. 그냥 상상해보자면 아마 서유럽에서 제일 인기있는 맑스의 글을 뽑자면 독일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싶다…


 맑스에 대한 아이디어와는 별개로 그 분들로부터 김훈을 알게 된 건 다행인 일이다. 올겨울 접한 남한산성의 문장들은 내게 제법 곱씹을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그 소설에 대해서는 추후에(기약할 수 없는) 또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때 또 읽고 싶었고, 또 아직도 읽지 못한 글은 나보코프이다. 가을에 겨우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었을 뿐, 나보코프의 소설 세계에 어떻게 접근해야할 지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나보코프라는 이름보다 '로리타'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지 않나 싶다. (책을 많이 읽은 분이라면 웃기겠지만) 로티의 책을 보면서 그가 한 장을 할애한 나보코프라는 이름의 작가를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로리타와 연결시키지 못 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그 책에서 하버마스에 대한 언급보다도 나보코프를 예시하고 분석하는 부분이 나는 더욱 난해했기에, 나보코프라는 이름은 내게 다가갈 수 없는 먼 산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나보코프에 대해 다시금 호기심이 샘솟는 날이 찾아왔는데, 누군가 pgr에 가디언인가, 영국 매체가 가장 섹시한 소설의 도입부 50선인가 100선을 모아둔 것을 올렸고 나는 거기서 두 문장에 확 꽂혔더랬다. 하나는, 

“All happy families are alike;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도입부이다. 위대한 소설이기에 나의 끌림은 아주 자연스러웠으리라. 톨스토이를 이어서 스크롤을 쭉 내리다가 나는 낯설고 매혹적인 문장 하나를 만났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이 얼마나 재기넘치는 문장인가. 미국문학에 일천하고 영어실력이 아주 저질인 나에게도 이 문장은 "어머 저건 질러야해!" 라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로 오늘 빌린 로리타의 1997년판 표지는 이렇다. 



열심히 읽어서 다음번엔 같이 로리타와 나보코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음 좋겠다. 

' > 인생의 잔재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5900원의 즐거움, 홈플 까베네 소비뇽  (0) 2016.11.28
Rihanna - Love on the brain  (0) 2016.10.22
카를라 브루니, <comme si de rien n'était>  (0) 2014.09.30
8월의 수수께끼.  (0) 2014.08.23
휘트먼, 'Life and Death'  (0) 2014.08.19

굉장히 우연하게, 그리고 우발적으로 키보드를 손에 넣었다. 

이번 겨울에 나온 한성 Gtune CHL5 모델인데 무접점 방식이라고 한다. 

토프레사와 같은 기술은 아니고 중궈 형님들의 카피레프트 정신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뭐, 이거 보다가 사실 레오폴드로 갈뻔도 했지만, 그냥 일단은 적당한 선에서 퉁쳤다.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리얼포스로 갈 날이 오겠지 ㅠㅠ

*

기본 세팅으로 점등한 상태.


*

*

카페에서, 나의 놋북과 함께 (어머니 말씀으로는 꼴깝질 중)


일단 비슷한 크기의 마제를 가지고 있으니 마제와 비교해볼 때 이런저런 만듬새는 마제에 비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abs 키캡은 생각보다는 높이나 이런 점에서 아주 나쁘진 않아보인다. (그러나 난 내일 볼텍스 키캡을 받을 예정이다;;)

led 기능은 클래식하고 단정하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저렇게 키보드를 손볼 줄 아는 매니아라면 단점으로 다가오겠지만, 뭐 끌 수 있으니까!

키감은 내가 처음 무접점 방식을 만나서 그런지 몰라도 생소하다. 내가 가진 마제는 청축인데 그것과 비교하자면 청축이 경쾌하다면 이건 조금 더 쫀득한 느낌이 강한 듯 하다.

무엇보다도 훨씬 더 조용하고. 키압은 아주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당하게 손가락에 달라붙을줄은 안다. 무슨 축으로 비유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리얼포스가 더욱더 궁금해진다...이러면 안 되는데..)

더 작았으면 휴대하기 더 좋았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들고다니는데 어려움은 없을 듯 싶다. 오히려 마제보다 훨씬 가볍기도 하고.

연구실에서 혼자 있을 때 빼고는 마제를 사용할 수가 없는데, 이걸 연구실에 들여놓고 마제를 집에 가져와서 껴안고 잘 생각이다. 유후~

타건영상을 첨부한다. 중간에 거북한 목소리가 들려도 양해를...



+(3월 5일) 볼텍스 키캡으로 바꾸고 사진 추가.

*

야광은 대충 이런 느낌

*


*




' > 보물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가족 영입, 리코 gx100  (0) 2017.02.05
칼자이스 예나 테사 50mm 2.8 판콜라 50mm 1.8  (0) 2016.09.26
간이 헤드파이 완성!!!  (0) 2013.11.25
닥터마틴 단화 구입!  (0) 2013.11.25
새로 구한 이어폰, ATH-CKS55X  (0) 2013.10.24

이틀째 밤을 세니 눈도 침침하고 졸리고,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성경을 봐도 걱정만 가득하다. 오호라. 

어떻게 되든 이번 학기가 지나면 지금 하고 있는 공부, 그리고 공부의 터전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여기서 머무르면서 얻었던 배움들은 오래도록 남겠지만, 그만큼 나는 내 건강과 시간들을 바쳤으니.. 

그래서 방황중이다. 글도 잘 쓰고 싶고 일도 잘 하고 싶은데 상황은 그리 녹녹하진 않다. 

맨날 오버페이스를 하니 몸은 많이 상하고, 집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무슨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내가 공부하고 있는 내러티브 턴에서는 개인들의 의미가 복원되고 마른 뼈가 살아나는데, 정작 나는 죽어가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 > L'Ecume Des Jou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석, 그리고 요즘의 지름신, GR.  (0) 2017.10.05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0) 2017.07.09
오늘은 D형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0) 2014.09.04
계절이 바뀌고 있네.  (0) 2014.09.02
또다른 계절이 온다.  (0) 2014.08.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