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과모임이나,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나 사람들은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에 의아해하곤 했다.

모태신앙도 아니고, 딱 봐도 맨날 술마시고 사회비판하면서, 더더욱 사회학을 하는 사람이 일편단심으로 믿음을 가진다면 거짓말같겠지.

나의 믿음은 항상 온갖 종류의 회의와 비판들에 풍전등화였지만, 풍전등화였기에 나는 내 믿음을 더욱 굳게 다지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새벽기도도 가보고, 밤새서 기도도 해보고, 인도도 가보고, 책도 읽어보고, 정말 교회에 목매다는 사람만큼은 아니었지만,

항상 믿음을 의심하는 사람 입장에선 꽤나 순응하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14살 즈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도 나는 '믿음'이라는 이 글자를 아직도 하나도 모르겠다.

무엇이 우리를 창조하고,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단지 이 문장들뿐이지 이 문장의 설득력은 아직도 소음들로만 남아있다.

"왜?"

그동안 교회를 다니고, 또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어느 것도 시원시원하지 않았다.

보통 이야기되었던 의무의 근거는 '그래야만 한다'라는 당위와 '다니면 좋다'는 유익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는데,

그야말로 왔다갔다 할 뿐이고, 나는 그 어느 주장에도 설득될 수 없었다.

교회를 다녀야만 한다. 교회를 다녀야 좋다. 그래 좋다. 근데 그걸 어떻게 아는가?

신이 있다면 어떻게? 왜?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내 흔들리는 믿음의 마지막 원천이었다.

아니 애초에 나는 교회를 다니는 불신자였고 믿음을 갈망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 믿음을 얻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그리고 이 힘듬을 어떻게 신자들에게 나눌 수 있는가. 

매번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 고통은, 그리고 모두의 고통은 교회 안에서 하향평준화가 되어버리곤 만다.

"내 경우에는 이랬지만, " "그런 경우에는 말이지"

모든 차이는 소멸되어 버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질문과 답은 돌고 돈다. 이 순환을 어떻게 돌파해야할지...


그러나 다른 종파나, 다른 종교를 믿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지막 교회생활 이후엔 희망없는 믿음을 짊어진 나귀가 되거나, 열렬한 무신론자가 되겠지.

길어야 2-3년, 나는 이제 믿음이라는 문제가 점점 허위문제로 보이기 시작했다.

' > L'Ecume Des Jou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많은 것들이 나의 곁을 떠나간다.  (0) 2014.02.22
subject matter in my photography  (0) 2013.12.19
배고픔  (0) 2013.07.21
가을타는(궁상떠는) 남자, L.  (0) 2012.11.28
"온전한 나의 것"  (0) 2012.11.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