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선선하다. 어제가 입추라고 그랬나. 내일은 아마 교회사람들과 양평으로 나들이갈테고 돌아오면 토요일 오후가 될테고 토요일 오후가 지나면 주일이 오고, 주일이 오면 교회 잠깐 갔다오면 하루가 다 지나고.. 시간이 너무 빠르다. 그래도 빨리 나는 언제나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으면 한다. 


선선하다, 라는 말이 좋다. 선선하다라는 말은 2008년의 여름이 떠오르게 한다. 조제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던 여름을 보내고 나는 그 학기부터 살기로 한 대학교 기숙사에 짐을 풀고 서울에 온 기념으로 서대문에 가서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8월말의 해는 느릿느릿 그 화려한 색채를 하늘에 흩뿌리면서 저물어가고 있었다. 파랗고 어떻게 보면 까만 하늘이 저쪽 끝에서부터 금빛에서 와인빛깔로 점점 물들어가고 있었다. 식어가는 대지 위로 이제 막 가을이 오는 것처럼 바람이 불어 참으로 시원하고 선선했다. 아마도 그런 날씨라면 누구든 마음도 선선해지지 않을까. 절묘하게도 그때 걸려온 전화에서는 그리워하던 목소리가 흘러왔고, 나는 '선선하다'라는 말에 그때의 행복을 버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소하지만 기억에 남는 그 저녁에 본 영화는 이스라엘 영화 젤리피쉬였다. 


아마 젤리피쉬를 포스팅하면서 이런 말들은 이미 쓰지 않았을까 싶지만, 날씨가 선선해지니 그냥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끄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또다른 가을을 맞이하고 선선하다라는 말을 더 풍성하게 가꿔나가야겠다. 신선한 날들이여, 신선한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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