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 책을 이해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는 그런 시점이 왔다.
나는 사실 실증주의가, 실증주의에 기반한 여러 분과학문들의 전개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그것을 비판하는 의견이 이해가 될리가 없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려면 신자유주의의 그 광범위한 패러다임을 이해해야하는데 그 작업 역시 무지 어려운 일일게다.

내 작은 의견으로는 이론과 실천이라는 문제를 떠나서(오늘 하루종일 붙들고 있었던 담론과 해방이라는 책이 그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학문을 하나의 이해의 틀로 생각한다면 그 학문은 엄청 넓은 분야를 집어넣을 수 있는 광대한 외형을 지니고 있어야한다.
신자유주의는 한국에서 수입할 때 좀 싸구려로 들어와서 경제적인 사조 혹은 탈규제에 대한 프로파간다 정도로 체감되지만
실은 국가, 사회,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의식구조를 바꿔놓는 하나의 (반)혁명이다.
..
정도밖에 느낀 점이 없다.
하루의 공부가 이렇게 막막했던 적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08년 봄 아무것도 모르고 다시 학교로 왔을 때 닥치는대로 책을 읽을 때
들던 생각이 딱 그거였는데. 그땐 옆에서 같이 공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았지.

2
집으로 복귀하고 통학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이 주어지고 있다.
솔직히 서서 책을 읽다보면 쉽사리 지치곤 해서(요즘 읽는 책들의 난이도 문제도 크다)
책을 그냥 집어넣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학교나 집에 도착하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나를 둘러싼 문제들을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같은 경우는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다.
사는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나의 살아가는 상태에 대해
뭔가 불안감을 느끼고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닌가 싶은데......
어떤 요인에 의해 나는 지금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거지.
자꾸 생각은 많은데 내가 정작 하는 짓들을 보면 너무 어리석기 그지없을 뿐이다.
이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 같은데 잘 안 고쳐져. 나는 8살때도 내가 어른스럽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저번주 주말에는 술먹고 한 뻘짓들 때문에 아침에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눈뜨기 싫을 정도로 부끄러워서.
근데 이젠 그렇다고 사라져버릴 수도 없고 하니 그냥 얼굴에 철판깔고 사는 수 밖에 없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적어도 떳떳하고 남 눈치 안 보고 살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데.
머리가 아프다. 주말에 마신 동동주가 아직 안 깼나봐.

3
요즘 친구들 사이에선 사회적인 통념, 혹은 기준이 원하는 인간상에 대한 토론이 한참이다.
우린 이제 적절히 잘 놀고 적절히 일도 잘 하고 적절히 나쁜 생각도 하지 말고 적절히 잘 사는 적절한 놈이 되어야한다는데
근데 그 통념을 요구하는 사회는 어디에 있을까.
기업에? 미디어에? 학교에?
그 통념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 사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나 말하는 것일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윤리도 아닐텐데.
그래서ㅡ좀 삐딱선 타는 나는 솔직히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라서 내 맘에 안 들면 내 머리털 하나도 안 뽑고 내 맘에 들면 내 온몸이라도 던질 건데
이러면 착하고 저러면 나쁘고 아주 순간의 윤리로 판가름해서 마음대로 혼내고 고치려는 그 정체불명의 사회가 나는 맘에 들지 않는다.

4
폰스토어가 오는 수,목요일에는 아이폰발송이 없을 것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ㅠㅠㅠ너무 슬프다..제발 빨리 좀 보내줘!!!!!!!!!!!아이폰이 있음 생각을 좀 덜 하겠지?
정신건강상 멍하니 인터넷하는 게 좋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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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건설 입사일을 앞두고 생각이 많은 A와 한강을 산책하다.
폭우가 내린 후 가을이 온 모양인지 요즘 서울하늘은 참 청명하다.
우리가 합정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해가 목동 위에서 온통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풀지 못한 문제들, 앞으로도 풀기 어려울 문제들을 한강 옆을 스치는 바람에 대고 이야기했다.
다니고 싶은 회사가 없으면,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으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나.
무언가 억지로 책임감을 만들고 남들이 하니까 나도 성공하고 싶고 가지고 싶으니까 돈을 많이 벌어야되고
왜 사람은 스스로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일까.
처음부터 가슴팍에다가 아 나는 이러이러해서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야겠습니다 이렇게 적고 나올 수 없을까.
사람사는 건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일까.

나는 학부시절 내내 스스로에게 부과한 문제들의 사이즈가 너무 커서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자유가 무엇인지 당췌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런 게 있기나 하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유령들을 잡아내기 위해서 나는 공부를 계속하지 싶다.
죽을 때까지 아 이건 이겁니다 이렇게 쉽게 말할 실력이 될 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앞으로 술을 먹으면 핸드폰을 꺼두어야겠다.
정말 모든 사단이 술먹고 핸드폰만지다가 일어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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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니 어제구나 17일은 너무너무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끔 너무 생각이 많아서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데 어제가 딱 그런 하루였다. 그런 날은 또 묘하게도 생각할 시간은 더럽게 많지...

싸구려모텔의 꽃무늬 벽화를 보며 나는 일어나기가 너무너무 싫었다.
그 전날의 술자리와 언쟁에서 내 감정과 모든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버려서 누워서 그냥 하루종일 쭉 뻗어버리고만 싶었다.
그러나 하필 구해지지 않은 알바 대타. 또 학교로 가서 알바를 시작하면 밤까지 집에 못 온다는 생각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오늘도 4만원의 유혹에 못 이겨 학교를 갔다. 그래서 정말 점심부터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일하고, 잠깐 공부하고, 진정제처럼 음악을 꾸역꾸역 투여하니까 하루가 정말 순식간에 갔다.
그것때문에 또 기분이 더러워.
언능 집에 가고 싶어서 학교에서 내려왔는데 아니 글쎄 신촌역에 가서야 내가 지갑을 두고왔다는 사실을 발견.
그래서 꾸역꾸역 학교에 다시 가니 땀이 비오듯이 쏟아져서 다시 신촌역으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기로 결정하고 여의도로 갔는데 글쎄 여의도로 가는 버스를 20분, 안산가는 버스를 30분 기다렸다.
버스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또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그 찰나에 인도에서 I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까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I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금 그 썰을 풀지 않으면 도저히 편하게 잘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내 인도여행의 최종목적지이던 레에 가기 위해 들린 스리나가르의 버스정류장에서 I를 만났다.
레로 가는 도로의 특성상 버스의 한쪽 면은 계속 절벽을 보고 달리게 되고 한쪽 면은 설산준봉과 그림같은 계곡들을 지나가게 되어있는데
니콘 D60을 든 I는 미리 자리를 잡지 못하고 버스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내심 I가 내 옆자리에 앉길 바랬는데 정말로 I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내 옆자리에 앉게 되었고 나는 두근거렸다.
I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녀가 프랑스 사람인줄 알았다. 신기하게도 그땐 얼굴이나 풍기는 분위기로 정말 유럽사람들의 국적을 맞출 수 있었는데 작은 키의(서양인들 기준에선) I의 갈색머리와 천진난만함은 내게 그녀가 프랑스사람이냐고 물어보게 된 이유였다. 그녀는 웃으면서 자기는 루마니아 사람이라고 말했고 내게 가끔씩 창밖의 풍경을 찍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때부터 쭉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묘하게 그때 나는 정말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어실력을 발휘했더랬다.
 라마유루에 도착했을 때 그간 위태위태하게 오던 버스가 기어이 고장이 나버렸고 다음 버스가 올때까지 그곳에서 무한정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활달한 I는 버스가 멈춘 곳에서 2km정도 떨어진 라마유루 곰빠에 가보자고 그랬고 마침 따분해 죽을 지경이던 나는 흔쾌히 okay라고 말했다. 라마유루에 함께 갔던 데이트는 처음 라닥에 도착했을 때니까 정말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다. 창공은 수정같이 푸르고 그 아래 나무 한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의 절벽위에 라마교의 깃발만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I는 라마유루에서 하루 머물다 갈 것을 제안했고 나는 역시나 흔쾌히 okay. 결국 같이 가기로 했던 프랑스의사선생님의 도난 사건으로 인해 라마유루에는 머물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일로 인해 우리는 레에서도 일행이 되었다.
 그리고 레에서의 5일. 결코 마냥 좋기만 했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우린 달라도 너무 달랐고 또 나의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또 우리의 다른 관심사, 레의 한국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했던 내 사정, 그리고 내 감정때문에 힘들었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날들은 마치 꿈만 같았다.


쓰다보니 그 이야기들을 다 쓰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실은 그냥 나만 꼭꼭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라서.
다시 현실로, 다시 안산으로 돌아가야하는 순간이 왔다.
나는 그 노선이 내 심보마냥 배배 꼬인 5601번 버스 앞자리에서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어두운 미래를 보았고
입술을 질끈 깨물며 머리를 창문에 박아댔다.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버스는 자꾸 이상한 동네로 돌아가고 뒤에 앉은 아저씨는 버스가 덥다며 궁시렁대고 있었다. 나는 I의 얼굴을 그렸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누군가를 생각했다. 그네들은 이제 내 삶에서 저 멀리 별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그 별들의 운동마냥 미친듯한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다. '새의 선물' 마지막이 떠올랐다. 시속 120km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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