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연구실에서 혼자 앉아서 가만히 있다.
머리 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들끓는데 내 손은 멈춰서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지금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만만디 길에서 버티고 있는
바라나시 길가의 양아치 릭샤꾼과 씨름하는 기분이다.
분명 저녁까지는,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가기 전까지는 마음도 가벼웠고 자료들 정리도 수월하게 되었는데
정작 앉아서 뭔가 끄적이려니까 글이 안 써진다.
꼭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에 걸린 투수마냥 나는 내 테제를 위해서 한 문장도 제대로 써내려갈 수 없다.
아까 나는 이런 어려움을 예견했던지, 꼭 처음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 거는 그런 어려움을 연상했더랬다.
"저기요." 아마 이 말부터 시작할 그 대면이 너무나도 어려워서,
내가 만들어낼 내 글이 보기가 너무나도 부끄럽고 수줍어서, 이렇게 글이 안 써지나보다.
젠장.

어쩔 수 없이 다른 과제부터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 과제를 하고 나면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서 원래 내 과제는 못 할텐데...........

마침 듣고 있는 음악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써야할 글은 마페졸리, 인용해야할 사람은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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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에 간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시면 됩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을뻔한 일이 있었다.
스트레스성 질환이라... 한 중딩고딩 시절때부터 비염이니 장염이니 해서 병원에 가면 꼭 들었던 이야기들.
대학에 와서는 더 고민이 심해졌나 이런저런 잡병들에 시달렸는데
전부다 스트레스성 질환들이었다. (부끄러우니 자세한 설명한 생략한다.)

여튼저튼 요즘에도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데 오늘도 역시나 이 망할 스트레스가 밤에 나를 엄습해서 그것의 근원을 곰곰이 고민해본다. 사실 스트레스받는다고 의식하는 게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키고 그것의 원인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할수록 더 열이 받는 건데, 뭐 내 성격이 이런가부다. 천상 스트레스를 달고 살아야하는 운명인가.
사실 지금 가장 표면적으로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은 일요일 밤에 집에 가서 자고 싶은데 숙제를 다 못해서 연구실에서 밤샘 공부를 해야하는 오늘의 상황이다. 논문 네 편을 읽고 발제를 해야하는데, 마지막 남은 한 편의 논문이 막상 펼쳐보니 제일 어려운 내용이 아닌가. 이제 12시 반인데 논문을 어찌어찌 다 읽으면 한 2시정도 되려나, 근데 그때가 되면 한 이틀 전에 본 첫번째 논문은 기억조차 나지 않겠지. 그 네 논문을 하나로 묶는 주제로 글을 구성해야하는데, 히히히히히.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어차피 내게 다 도움이 되는 경험이니 즐겁게 하도록 하자. 그리고 사실 계속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조금은 즐거울 정도이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아직 견딜만한 모양이다. 오늘 하루종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자꾸 내 목에 어떤 굴레를 채우려는 어떤 시도때문이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건가 아쉽다. 그것도 그게 한참을 고민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고자 했다는 사람이 한 일이라 더더욱 실망스럽다. 이해는 가지만 공감이 가지 않는다. 따라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는데 사실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도 웃긴 노릇이라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무런 배려가 없는데도 온갖 배려를 하는 양 아주 고압적으로 제시하는 그 요구들을 나는 왜 하필 오늘 들어야했던 것일까. 그 외에 여러가지 말도 안 되는 오해들. 블라블라ㅡ
내 애정이 나를 이끌고 있지만 사실 나는 매우 피곤하다. 매우 피곤한데도 내 애정이 나를 이끄는게 나를 더 지치게 한다.
무엇보다도 나를 탓하는 게,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게 어이없는 짓인줄 알면서도 그걸 즐거이 받아들이는 내가 웃기고 슬퍼서 지금..

내 정신의 일부는 한 단계 더 높은 상태에 도달했는데 그걸 견뎌내는 몸과 마음의 체력은 더 약해졌나보다. 마치 벌크업하면 더 약해지는 관절들마냥, 몸과 마음이 삐그덕삐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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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온다.
5월에 들어와서 포스팅한 이후로 이 블로그를 챙기지 못 하고 있었다.
그래도 들어와주시는 분들도 있고 또 네이트처럼 해킹당하는 것도 아니니
시간을 두고 관리한다고 해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왠지 여기는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린다고 해도 나만의 공간이 아니란 느낌이 강해서일까,
아마 끝까지 이 블로그에서의 나는 예의를 지키고,
최대한 조곤조곤 열심히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하겠지.
싸이월드처럼 그냥, 막, 질러대는 이야기들은 이 블로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진학하게 되었다.
이제 한 달 후면 익숙하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나는 불확실하지만 주어진 목표를 두고 무언가를 공부하고 있겠지.
그 시간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 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솔직히 몹시나 불안하다.
불안함을 쫓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들이 앞으로 몇 년....

스스로에게 최소한의 약속을 하자면 2년 안에 이 과정을 끝마치고, 반드시 인도로 가서 못다한 여행을 끝마칠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삶은 지금보다는 덜 불안하고 더 자유로운 처지를 누릴 거라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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