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막 마음에 안 들고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게 요조의 노래는 너무 기능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우울하거나 그냥 알콩달콩한 노래 듣고 싶을 때 딱, 요조의 노래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므로 이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앨범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제목인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거 였더라"를 본 후 나는 내심 이 앨범도 그냥 귀염귀염하게 부르는 노래겠지, 뭐 끽해야 일상적이고 친근한 감성을 일깨우기 위한 작업이겠지, 이렇게 생각하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올 가을까지만 해도 요조는 내게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트위터에서 이 노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를 접하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아니, 요조에게 이런 노래가 있다니. 사운드도 꽤나 괜찮고 말이지. 아니, 이상순? ..그 이상순 말인가? 요조는 싫어하겠지만 나는 자연스레 옛 연인 이상순과 요조의 연애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대로) 이 앨범을 이해하게 되었다.

 

음, 이 노래는 두 대의 어쿠스틱 기타와 남과 여의 목소리가 있고, 그것들의 조화가 있고, 조화를 가능케하는 마법같은 감정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나는 음과 가사 저편에 있는 그 감정들과 기억들만 생각한다.

'세상 > 들어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누엘 드 빠야, jota  (0) 2013.05.02
Franck violin sonata, 4악장  (0) 2013.04.29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0) 2010.09.15
La Valse, 근대와의 작별  (0) 2010.09.10
비발디, 사계.  (2) 2010.04.01

 

우리에겐 생소한 일이지만, 무덤이 없는 사회도 있다. 사실 매장이라는 풍속은 많은 자원의 소모를 유발한다. 예전에 화장을 장려하면서 한국처럼 묘를 쓰다보면 언젠가 전 국토가 묘지로 변하리라던 광고를 기억해보라. 물론 그런 일은 없을테지만, 매장이라는 풍속이 꼭 절대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인도인들은 그랬다. 아니, 힌두교도들은 그러했다. 돈이 있든 없든, 장작을 사서 가트에 가서 시신을 태운 다음에 겅가 강에 그 재와 (장작 살 돈이 부족한 자들의 경우에는 타다 남은) 시신을 강에 떠내려보내곤 했다. 아주 보편적으로 화장을 하는 이유로 힌두스탄에서는 힌디들의 묘역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그와 대비해서 이슬람교도들은 매장을 택하고, 경우에 따라선 굉장히 화려하게 묘역을 만드는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곳곳에 있는 성자들의 묘역은 참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가장 흡족했던 순간은 종교적 차이로 인해 생겨난 관습의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들이다. 더 넓게는 문화의 차이를 한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인도여행의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저 묘지가 있는 스리나가르는 오랫동안 이슬람의 영향 아래 있었고, 무갈 제국이 인도로 남하하는데 본거지의 역할을 한 지역이기도 해서 인도와의 동질성이 가장 부족한 지역이기도 하다. 많은 힌디들이, 힌두스타니들이 카쉬미르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하면서도 그곳 주민들에 대해선 파키스탄의 첩자라거나 혹은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들로 바라보는데는 뭐 역사적인 과정도 한 몫 했겠지만 저런 문화적인 차이에서 받는 충격 역시도 뺴놓을 수 없을 게다.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역사,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국적을 가진 이로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여행객에게는 즐겁지만, 그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게다.

 

'India > Photography' 카테고리의 다른 글

Ganga  (0) 2017.11.06
한 장의 사진, vol.5  (0) 2012.11.12
한 장의 사진, vol.4  (0) 2012.11.02
한 장의 사진, vol.3  (0) 2012.10.30
한 장의 사진, vol.2  (0) 2012.10.29

지난 1년 간, 뭐 1년 전부를 다 바친 건 아니지만 거의 1년의 시간 동안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주최하는 "장애의 재해석"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장애라는 문제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는 장애학과 의료복지, 사회복지학 등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하고 새로운 학문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지지난 학기 조직사회학 수업에서 만난 MBA 석사과정의 학생(지금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계시지만)은 조직이론과 사회심리학을 베이스로 해서 질적 방법론을 통해 연구를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권했고 귀가 얇고 새로운 도전에 목말랐던 나는 덜컥 그 제의를 수락했다.

프로젝트는 1차 심사를 통해 한 6팀 정도가 선정되고 나중에 8월에 내는 최종보고서를 통해 우수팀 한 팀을 뽑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차 심사를 통과하면 연구진행비 200만원이, 2차에서 우수팀으로 선정되면 250만원이 지원된다. 대학원을 다니는 입장에서, 그리고 다른 프로젝트들과 비교해도 그렇게 적은 돈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장애에 대해서 잘 모르는 타 학문 전공자를 위해서 한 분의 자문위원이 선정되어 연구를 지원받을 수 있다. 우리는 단국대에서 사회복지를 강의하시는 신은경 선생님이 자문위원이었는데, 정말 적절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__)

처음 1차 심사 때까지는 아주 순조로웠는데 그 뒤로, 그리고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이 프로젝트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조직을 전공한 공동연구자분과 견해 차이가 점점 두드러졌는데, 이걸 봉합하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다. 우리의 결과물은 어찌 보면 합의의 산물일수도 있지만,, 내게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질적 연구 방법론에 무지했고, 장애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러니까 사실 이 연구는 공동연구자분이 조직 사회학에 대한 강력한 확신에 기반하여 캐리하지 않았다면 좌초했을 지도 모른다. 많이 마찰이 있었고 때론 내가 틱틱대고 일탈한 부분도 있었지만 다시 한 번 공동연구자 분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만약 내가 연구를 다시 진행한다면 내가 밟지 못 한 길로, 장애이론의 영역에 대해서 다루어보고 싶다. 고지식한 성향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늘 어떤 문제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장애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이 내린 답들을 검토해보고 그 답들의 관계와 인간들이 구축한 장애이론의 장을 조망하는 이론적 전망대로 올라고보고 싶다.

' > 인생의 잔재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따스한 토요일 낮, 미소콩  (3) 2013.05.16
플로리다에서 온 편지.  (0) 2013.04.19
Blogsy 구입  (0) 2012.11.26
오늘의 타로  (0) 2012.11.08
오늘의 된장질  (0) 2012.10.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