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40분 경에는 작은 고양이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 나한테 놀라서 풀숲으로 도망했다.
12시 5분 경 한강을 지날 즈음에는 보이지도 않는 구름이 달을 뒤덮었다. 달이 그냥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11시 28분 즈음에는 개골목에서 소리지르면서 싸우는 남녀를 지나서 학교로 갔다.
미미한 것들이 하나하나 기억났다.
나는 알고 싶고, 또 알고 싶었다. 그것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 아무리 아사히를 마셔본들, 일본의 역사를 정독한 들 난 일본사람이 될 수 없다.
미국을 사랑해도 마찬가지.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그것에 관심을 가져본다고 해서 그것이 될 순 없다.
그러나 반대로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관심이 필연적으로 있어야한다.
그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되고 그것을 가진다면 사랑한다는 행위는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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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운전면허를 막 따고 아버지와 대부도에서 드라이브를 하던 참이었다.
대부도는 시화호라는 인공호를 끼고 있어서 안개가 잦은 곳이고 드라이브를 간 그날도
온통 안개였다.
"봄날은 간다"를 알게 된 건 그때였다. 종종 이 노래가 어디선가 들려오긴 했지만 그때만큼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곡의 인트로부분에 나오는 피아노 소리가 세상을 가득 매우고 나는 무언가 갑갑함과 동시에 황홀해졌다. 아마 차를 잠시 세웠던 것 같다. 노래가 끝나면 제발 DJ가 곡명을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DJ는 끝내 곡명을 말해주진 않았지만 어찌어찌해서 찾았던 것 같다. 아마 김윤아의 목소리로 짐작하고 찾았을 게다.
그 노래를 듣고, 그 노래가 영화의 OST라는 것을 알고, 영화를 보고, 그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되고......


예전, 적어도 1년 반 전까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그 때 그 노래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청동에 스는 녹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내 기억과 감정이 겹겹이 쌓여서
좋아하는 마음 그 이상의 것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점점 과거를 생각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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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딱히 잠을 이루지 못할 이유는 없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문제인데 잠이 오지 않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고민이 시작되어서 잠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그 고민은 내 인생을 쭉 훑고 지나가서 마지막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그 문제로 넘어갔다.

참 웃긴 거지, 나는 진로문제보다 그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진로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낙관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지 않았다.
뭔가 막막하긴 하지만 그만큼 내겐 아직 선택권이 몇가지 남아있으니까 여러가지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었지만
그 문제, 1년이 넘게 나를 발목잡고 있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자 가슴이 심히 답답해졌다.

실로 7월 내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런데 이 고민의 목적은 그걸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었나?
매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의 실패가 아니었을까.
탈출하고자 하면서도 매번 나는 그 둘레를 빙빙 돌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어떻게해야 하는가? 가슴이 꽉 매였다.

자꾸 그 문제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내가 애써 잊고자 했던 시도들, 여행을 가려는 것, 학원에 등록하려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한 게
실은 그 문제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생각하면 너무도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같은 곳을 빙빙 돌면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나는 내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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