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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운전면허를 막 따고 아버지와 대부도에서 드라이브를 하던 참이었다.
대부도는 시화호라는 인공호를 끼고 있어서 안개가 잦은 곳이고 드라이브를 간 그날도
온통 안개였다.
"봄날은 간다"를 알게 된 건 그때였다. 종종 이 노래가 어디선가 들려오긴 했지만 그때만큼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곡의 인트로부분에 나오는 피아노 소리가 세상을 가득 매우고 나는 무언가 갑갑함과 동시에 황홀해졌다. 아마 차를 잠시 세웠던 것 같다. 노래가 끝나면 제발 DJ가 곡명을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DJ는 끝내 곡명을 말해주진 않았지만 어찌어찌해서 찾았던 것 같다. 아마 김윤아의 목소리로 짐작하고 찾았을 게다.
그 노래를 듣고, 그 노래가 영화의 OST라는 것을 알고, 영화를 보고, 그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되고......
예전, 적어도 1년 반 전까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그 때 그 노래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청동에 스는 녹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내 기억과 감정이 겹겹이 쌓여서
좋아하는 마음 그 이상의 것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점점 과거를 생각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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