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시간이 멈추길 바래,
라는 노랫말이 있는데 나는 당신의 차에 타서 운전하는 당신의 옆모습을 볼 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뭐 요새는 하이킥에서 신세경이 비슷한 상황에서 그런 대사를 친 것 같은데,
정말로, 진실로, 나는 당신의 반짝이는 눈이나 갈색 머리, 꿀같은 목소리를 내보내는 그 입을 보면서
영영 이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지만, 음, 아주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아니다. 복잡한데,
만약 어렸을 때처럼 '좋아한다'와 '사랑한다'를 나눈다면 나는 쉽게 좋아하지만 또 쉽게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 그런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래서 맨날 손해보는 거 같은데 뭐 그 손해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자세를 바꿀 생각은 없다. 아니 고치치 못한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내가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나의 성향은 사랑이 내게 어떤 해를 미쳤든 간에 그것을 간직한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기만하는 우둔한 자세 혹은 뭐 막막한 로맨티스트의 모습일 거 같은데,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점이 나를 환장하게 만든다. 나는 이 지속되는 마음을 지우고 싶고 쉽게쉽게 다른 사랑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그게 참 안 된다. 가끔 조금 사려깊은 아이들은 애써 내 마음을 설득해보려고 노력하는데 그건 내 고집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서 그러는게다. 나는 나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으면 정말 한치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간직한 이 사랑으로부터 잠시 도피하려고 한다. 내 여행은 뭐 도피성여행이 맞다. 다만 그 대상이 취업보다는 사랑이라는게 우습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정말, 사랑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그 생각에 잠겼던 거 같아. 그것은 한겨울 삭풍처럼 차갑고 건조해서 내 가슴을 아주 바짝바짝 얼리고 부숴서 나는 매일 그 고통에 비명을 고래고래 질러댄다. 그 비명소리를 아무도 듣진 못했겠지만.

아, 그러나 2개월은 너무 짧다. 내가 돈이 한 천만원 있어서 멀리에서 한 6개월 정도 공부하다 올 수 있었다면, 내가 영어성적과 학점이 되고 집안이 서포팅을 해주는 상황이어서 아예 멀리 유학을 떠나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건 아주 멍청한 꿈이란 것을 안다. 나는 도망치지 못하고 다시 이땅에 돌아와야할 것이다. 장난으로 거기서 인도여자만나서 결혼한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그런 일은 없다는 거, 다 알잖아. 아마 2개월 후에도 나는 여전히 길고긴 그 사랑을 품고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 음..

일단은 그 2개월을 감사히 생각하자. 할 수 있다면 모두 잊고
이렇게 말하자. 할 수 있다면. 안녕.


한효주도 그렇고 나는 이렇게 눈크고 여우같이 생긴 분을 보면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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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값으로 그냥 내가 쓸 페도라를 하나 샀다.
용산을 돌아다니다가 그게 예전에 함께 걸었던 길이란 것을 눈치채고는 슬퍼져서는
그냥 선물값으로 내가 쓸 페도라를 하나 샀다.

이제 여행까지는 8일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그중 하루는 바쁠테니 빼고 나면 일주일.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을 손에 꼽아보았다. 그리 많진 않지만 그래도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면서 생각해본다.
그리고 볼 수 없는 사람들만큼 손가락을 펴보면 어느새 한주먹 가득 찼던 나의 '보고픈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 별로 없는 나의 보고픈 사람들이 나의 청을 거절하지 않는다면 좋겠다.
M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는 상처를 당할만한 일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게 만든 것,
너무 많은 거절에 너무 지쳐서 별로 많이 있지도 않은 내 보고픈 사람들에게조차도 연락하기가 두렵다.

두려움은 사람을 시작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주저앉혀버리는게지.
나는 M에게 무릎꿇려서 어찌 일어나야하는지 어찌 걸어야하는지 걸음마를 다시 배워야하는 참이다.
그래서 (가끔은 나를 일으켜줄 것도 같은)Z에게 줄 선물을 살까ㅡ하다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집에 주저앉아 버렸다.
가끔 나의 결단은 상황판단에 좌우되는 편인데 나는 이번 경우는 솔직히 의지를 뒷받침해줄 확신이 너무도 적다.
시간이, 과거의 긴 겨울에서 겨우 기어 나온 이 짧은 시간이 내게 그것을 줄 수 있을지.

기아는 3:2로 광주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어떤 여대생들은 미팅 10번을 채우고 이제 인위적인 만남은 안 되겠다는 성찰에 대해 토의했으며 605번 버스에서 어느 여학생은 1시간 내내 내가 싫어하는 하트브레이커를 들었고 시그마를 들고 있던 어느 노인이 내 카메라를 힐끗 쳐다보았으며 결심했던 철야예배에 나가지 못했고 Z를 만나려 했으나 못 만났고 J선배는 낮술에 취했고 내가 화장실에 간다고 나와서 작별인사도 못한 나의 친구P는 사커라인을 보고 있을 것이며 남자 후배M은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을게고 허리가 아픈 나는 콩알만큼 방에 쿡 점박혀서 어디론가 빨려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진은 글의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나도 다른 의미에서 행불자가 아닌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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