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 운전면허를 막 따고 아버지와 대부도에서 드라이브를 하던 참이었다.
대부도는 시화호라는 인공호를 끼고 있어서 안개가 잦은 곳이고 드라이브를 간 그날도
온통 안개였다.
"봄날은 간다"를 알게 된 건 그때였다. 종종 이 노래가 어디선가 들려오긴 했지만 그때만큼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곡의 인트로부분에 나오는 피아노 소리가 세상을 가득 매우고 나는 무언가 갑갑함과 동시에 황홀해졌다. 아마 차를 잠시 세웠던 것 같다. 노래가 끝나면 제발 DJ가 곡명을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DJ는 끝내 곡명을 말해주진 않았지만 어찌어찌해서 찾았던 것 같다. 아마 김윤아의 목소리로 짐작하고 찾았을 게다.
그 노래를 듣고, 그 노래가 영화의 OST라는 것을 알고, 영화를 보고, 그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되고......


예전, 적어도 1년 반 전까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그 때 그 노래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청동에 스는 녹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내 기억과 감정이 겹겹이 쌓여서
좋아하는 마음 그 이상의 것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점점 과거를 생각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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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딱히 잠을 이루지 못할 이유는 없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문제인데 잠이 오지 않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고민이 시작되어서 잠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그 고민은 내 인생을 쭉 훑고 지나가서 마지막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그 문제로 넘어갔다.

참 웃긴 거지, 나는 진로문제보다 그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진로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낙관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지 않았다.
뭔가 막막하긴 하지만 그만큼 내겐 아직 선택권이 몇가지 남아있으니까 여러가지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었지만
그 문제, 1년이 넘게 나를 발목잡고 있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자 가슴이 심히 답답해졌다.

실로 7월 내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런데 이 고민의 목적은 그걸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었나?
매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의 실패가 아니었을까.
탈출하고자 하면서도 매번 나는 그 둘레를 빙빙 돌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어떻게해야 하는가? 가슴이 꽉 매였다.

자꾸 그 문제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내가 애써 잊고자 했던 시도들, 여행을 가려는 것, 학원에 등록하려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한 게
실은 그 문제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생각하면 너무도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같은 곳을 빙빙 돌면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나는 내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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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7월도 몇일 안남았다.
이번 여름은 매일같이 내리는 비와 공부방에서 곱사등이처럼 쪼그라들었던 날들로 기억될 듯 싶다.
돈을 쓴 곳은 없는데 이상하게 되는 듯한 느낌.
많이 쓰는 날과 적게 쓰는 날의 편차가 너무 크니 내 생활에 대한 느낌에 혼란이 올 수 밖에.

오늘은 보지 말아야할 것을 봐버렸다.
역시나...
그처럼 마음을 먹으면 뭐해. 매번 파도에 쓸려가듯이 사라져버리는데.

지속적인 생활과 마음둘 곳, 풍성한 밥상, 따뜻한 배려가 너무 그립다.
좁은 길을 따라가면서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하나하나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게 필요한 것들까지 다 버린 듯한 느낌이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나.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내일은 일을 하고, 책을 보고, 글을 써야지.
자자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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