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탓인가, 내가 잘못한 것일까. 월요일의 바쁜 일과를 마치고 조금은 방심하고 있었던 나는 일격을 맞았다. 흠. 그런고로 기분이 조금 더러웠고 서럽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그래서 외롭기도 했다. 무작정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서 잠을 청했지만 자고 일어나도 더러운 기분은 사그라들지 않아, 설상가상으로 정말 너무나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픈건지, 마음이 허전한건지. 실은 마음이 허전하고 속이 완전 텅텅 비어서 나는 껍데기뿐인게 아닐까, 이런 걱정을 나는 교활하게도 식욕으로 치환시켰다. 뭐 그런거 있잖은가. 예전에 EBS에서 하던 어린이프로그램처럼 친구도 없고 허전한 날에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친구처럼 나는 요리를 만들어서 내 속에 집어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저번주에 만드려다 시간이 없어 포기했던 닭도리탕(표준어는 닭볶음탕이라고 한다)이 생각났다. 마트에 들러서 닭을 한마리, 감자 네 개, 양파와 당근 하나씩을 산다. 근데..식재료비가 15000원이 나왔다 ㅡㅡ;;;;어머니가 계셨다면 뒤지게 혼났을 거 같지만..여튼 싱싱한 재료들을 구입한 것은 만족.

마트에서 커피빈쪽으로 해서 나오는데 까페 유리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고와 슬펐다. 나는 고운 것을 사랑하는데 그 고움에 너무 주린 나는 끔찍한 표정으로 으아 하고 입을 벌렸다. 햇살이라도 들어마시려고. 그러나 아무것도 채울 수 없었다.

..



결국 감자를 너무 많이 집어넣은 닭도리탕은 2/3가 남고 말았다.
행복한 생은 아니었겠지만 요절한 닭의 생과 감자, 양파, 당근을 먹여준 땅의 자비만큼 내 삶이 풍족해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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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수록된 "지도중독"을 보면 5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B라는 친구가 나온다. B는 주인공인 M의 일종의 지표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애니어그램을 통해 M에게 하나의 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음, 뭐, 실은 그 애니어그램 부분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도 주변사람들의 애니어그램을 해보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니어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그간 주변사람들에 대해 관찰하고 느낀 점들을 정리하고 그것들이 어떤 일관된 느낌을 갖고 있는지, 혹은 그것은 정확한 판단인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할 게다. 무엇보다 지금껏 내가 그들에게 느껴온 막연한 감정들에 대해 정리하고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파악하면서 그들에게 배울 점은 배울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나도 그들에게 하나의 이정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내가 하고자하는 시도는 꽤나 유익한 것이 될게다.

은희경만큼 솜씨있게 글을 쓰진 못하겠지만 그녀가 견지하고 있는 글쓰기의 자세를 본받아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내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면밀하게 관찰하고(즉 일상을 재발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실체를 정확히 포착하며 예리한 위트로 그것을 잘 도려내는, 일종의 수술. 환원론적이지만 잘라낸 암세포의 병리를 발견하고 전체 몸을 낫게 하는 의사의 역할을 나는 내 글과 표현양식에서 기대한다.

좀 진지해졌는데, 실은 은희경처럼 위트있게 글을 쓸 자신이 없어서 그냥 계속 진지하게 쓰고자 한다. ㅠㅠ
아참, 나름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니셜은 무작위로 설정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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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에 들어오다가 문득 고등어 생각이 났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에 나의 우울의 원인을 생각하다가 오늘 밥을 한끼밖에 먹지 못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나마 한끼도 학생식당의 우울한 2500원짜리 밥.
갑자기 나의 우울은 영양부족에서 오는 게 아닐까...하는 좀 개연성없는 생각이 들었다.
음 뭐 요새는 한끼만 먹어도 배가 고프진 않지만...그것도 영양부족인가? 음

요리를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먹었지만 할 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국 그나마 간단한 계란말이와 고등어구이로 낙점!!!!
특히 고등어구이는 저번부터 계속 시도해보려던 요리였다. 요리라고 하긴 좀 민망하지만ㅋㅋㅋ
바로 홈플러스에 가서 고등어와 치즈를 샀다. 운좋게도 친절하신 생선코너 아주머니께 고등어구이의 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ㅋㅋㅋ정말 엄청 어리버리했나보다..

계란말이는 네이버 키친의 도움을 빌렸다. (http://kitchen.naver.com/food/viewMethod.nhn?foodId=203&foodMtrlTp=DI)
예전에 축제 때 경준형님이 하는 것을 얼핏 본 기억도 있고 해서 과감하게 도전!!

첫걸음, 계란을 잘 푼다. 음 뇌이버에서는 뜰채를 이용해서 곱게곱게 하라고 그러던데ㅋㅋ
귀차니즘ㅋ

대략 계란이 야들야들 안 흔들릴 정도까지 익힌다.
그 후 치즈를 얹고 잘 만다!

데코는 좌절..ㅡㅡ;;
거기다 후라이팬이 그다지 청결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고 OTL
마치 대학축제때 주점 끝판에 대충대충 만든 계란말이를 먹는 기분이었다.
음, ㅋ다음번엔 더 잘하겠지!

다음은 고등어!!!생선코너 아주머니가 알려주신 걸 믿고 도전!!!
때깔고운 고등어!
소금간이 살짝 된 고등어를 흐르는 물에 살짝 씻어서 밀가루를 살짝 묻힌다.

중불에 살살 굽는다.
너무 일찍 뒤집으면 살이 부서진다.(이건 어머니한테 급하게 전화해서 물어봤다는..)

살이 적당히 딱딱해졌다 싶으면 그때 뒤집어준다.
얼추 다 익으면 완성!!

그간 집에 오면 라면하고 계란후라이만 먹었는데ㅋㅋ
잘 하진 못하지만 스스로 요리를 해먹으니깐 보람도 있고 간만에 먹은 고등어 맛도 좋고 참 좋은 것 같다.
음.앞으로 하나하나 도전해봐야지ㅋㅋ그래서 나중에 이쁨받는 남자가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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