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명절, 기분 좋다.

모짜르트를 듣고, 글을 두어편 써볼 예정이다. 오랜만에 철원에도 한번 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황동규의 시가 보고 싶다. 황동규의 시를 보니 슈베르트도 듣고 싶어졌다.




마지막 산책길
-오문강 시인에게


어쩌다 한 보름 산책 놓친 길
아파트 내어놓기 이틀 전
마지막으로 걸어본다.
마지막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놓고
한 시간쯤 노래하는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를 막 틀어놓고 나왔다.
방이여
오늘은 겨울 안개 속에 버클리 마리나까지밖에 보이지 않는
방이여
짐 싸느라 부산한 체하는 나를 내보내고
혼자서 한번 들어다오
『겨울 나그네』끼마저 벗겨진
저 벌거벗은 슬픔과 맑음을.
크리스마스 다음다음날
보름 전보다도 한결 풀이 파래진 바닷가 길
낚시꾼 하나 없는 길.
주인 없이 방이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이 결국 삶의 마지막 모습.
포르테시모!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졸던 프라이팬이 화닥닥 바닥에 떨어진다.
아무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아 내 끼마저 벗겨진 소리,
벌거벗은 흥취.
좀처럼 듣기 힘든 샌프란시스코 만의 물새 하나가
옆을 스치며 운다.
(1997. 12. 27, 에머리빌에서)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pp64~65, 황동규, 문학과지성사2000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운하고 또 비참한 존재 같소.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빠진 건강과 완전한 절망에 빠져 모든 주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는 한 남자의 심사를 헤아려 보시오.
간직했던 모든 희망이 하나같이 다 무너져버리고
이제는 사랑과 우정으로도 위로받지 못하게 된 남자를 상상해 보시오.
매일밤 침대에 누울 때마다 다시는 아침에 깨지 않기를 기도하오.
그러나 아침은 어김없이 오고 슬픔은 밤새 나와 같이 잠잤다가 다시 깨어 내 옆에 그대로 있소."
1824년 3월 31일, 슈베르트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





학교에 나오는 길에는 최인훈의 소설과 황동규, 정현종의 시를 빌렸다.
나는 싫어하는 것들을 많이 봤으니 좋아하는 것들과 시간을 함께할 참이다.
휴일에는.
음악처럼 살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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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사진을 찍고자 한다면 사진은 무엇인가, 적어도 내게 있어 사진을 찍는 행위는 무엇인가 정리해볼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적어도 기계를 테스트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아서 나도 좋은 성능을 가진 최신식 고급 바디와 렌즈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지 그런 최신식 기계를 만져보고 싶은 욕구는 말 그대로 사진을 찍고자하는 이유는 되지 못 한다. 그 욕구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보다는 카메라, 정확히는 남보다 좋은 카메라를 갖고 싶다는 것에 더 가깝다. 그리고 굳이 남보다 더 좋은 카메라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는 남보다 더 사진을 잘 찍기 위함(이 자체도 그다지 좋은 목적은 되지 못한다. 왜 남보다?)보다는 남에게 내 카메라를 과시하기 위해서, 결국 자기자신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이 경우에는 돈을 더 벌어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차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겠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 나 자신을 과시할 재력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불필요한 낭비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인터넷동호회에서 논하기 좋아하는 화질, 색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비싼 카메라는 보다 진보된 센서를 가지고 있고 싼 카메라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쉽게 작업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해주며 다양한 기능을 통해 보다 더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진을 카메라들의, 카메라메이커들의 시험무대로서만 바라봐야할 필요는 없다. 19C의 전설적인 사진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칼라필름이 등장하기 전의 사진들은? 디지털센서가 등장하기 전의 사진들은? 기술의 진보에 의해 사진예술이 변화해온 측면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진을 찍을 것인가이다. 사진기를 든 사람의 머리, 눈, 손이 중요하지 사진기는 연장일 뿐이다.

물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자신의 표현력을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 연장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산 안에 최고의 연장을 구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카메라는 고가의 장비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애착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좋은 목수가 연장탓 안한다고 하듯이 연장을 구한 이후에는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 자신의 시선을 묵묵히 가다듬어야할 뿐이다.

그런고로 화질과 무보정에 대한 집착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나는 무보정의 의미가 노출을 결정하는 부분에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디지털이라 많이 시도해볼 수 있지만 실패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진을 낭비없이 찍기 위해서는 정확한 노출을 결정하는 능력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암실테크닉은 존재했다. 노출시간을 조정하는 것에서부터 태우고 찢고 긁고 별짓을 다했는데 왜 포토샵에 대해선 '원본'의 잣대를 들이미는가?(필름시절도 합성은 가능했다.)

보정툴을 마음껏 사용하자. 우리는 쉽게 마우스질만으로 쓸 수 있는 훌륭한 암실을 얻었는데 왜 그것을 거부하는가? 우리는 왜 지멋대로인 디지털카메라의 자동암실에 모든 것을 맞겨야하는가? 남에게 내 카메라는 보정 안 하고도 화질이 이 정도야~ 색감죽이지? 이렇게 과시할 일이 없다면 보정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바를 맘껏 표현하자.


-
당신이 사진을 찍는가? 캐논이 사진을 찍는가? 니콘이 사진을 찍는가? 당신 사진의 가치는 당신 기종의 가격으로 환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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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져나가면서 아래로 뿌리내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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