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딱히 잠을 이루지 못할 이유는 없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문제인데 잠이 오지 않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고민이 시작되어서 잠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그 고민은 내 인생을 쭉 훑고 지나가서 마지막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그 문제로 넘어갔다.

참 웃긴 거지, 나는 진로문제보다 그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진로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낙관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지 않았다.
뭔가 막막하긴 하지만 그만큼 내겐 아직 선택권이 몇가지 남아있으니까 여러가지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었지만
그 문제, 1년이 넘게 나를 발목잡고 있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자 가슴이 심히 답답해졌다.

실로 7월 내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런데 이 고민의 목적은 그걸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었나?
매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의 실패가 아니었을까.
탈출하고자 하면서도 매번 나는 그 둘레를 빙빙 돌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어떻게해야 하는가? 가슴이 꽉 매였다.

자꾸 그 문제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내가 애써 잊고자 했던 시도들, 여행을 가려는 것, 학원에 등록하려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한 게
실은 그 문제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생각하면 너무도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같은 곳을 빙빙 돌면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나는 내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 > L'Ecume Des Jou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3일  (0) 2009.08.04
봄날은 간다, 김윤아  (0) 2009.08.02
7월 28일  (0) 2009.07.28
  (0) 2009.07.23
검증  (0) 2009.07.19

초보시절 나를 가르쳐준 엄격한 표정의 모델분

mx매뉴얼中

' > 인생의 잔재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다메 칸타빌레 중에..  (0) 2009.08.23
야구팬들의 여신  (0) 2009.08.22
혼란한 정국을 살아가는 팁  (0) 2009.08.20
8월 16일. 장난질의 끝.  (0) 2009.08.16
쇼핑 중 맥주 횡재  (0) 2009.08.07
부끄럽지만 돈키호테란 책을 스물다섯에야 읽게 되었다.
그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
기사도 소설의 끝무렵, 그리고 중세의 끝무렵에 근대국가에 한발짝 다가섰던 세르반테스는
그야말로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는 소설을 세상에 선사했다. 
이 책이 무려 400년 전에 쓰여졌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세르반테스의 감각은 시대를 앞서 나갔던 것 같다.
마치 현대인이 바라본 1500년대, 중세,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 삶에 대한 통찰이랄까..

나는 돈키호테가 참으로 우스웠지만 그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초판사처럼 내가 돈키호테를 읽은 목적도 순수하진 않았지만 마지막엔 그처럼 경탄할 수 밖에 없었다.
기사도 소설의 모든 미덕을 갖춘 기사, 돈키호테여! ㅠ-ㅠ



본문 中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옛날, 이름까지 기억하고 싶진 않은 라만차 지방의 어느 마을에 창꽂이에 꽂혀 있는 창과 낡아빠진 낭패, 야윈 말, 날렵한 사냥개 등을 가진 시골 귀족이 살고 있었다.......

어쨌든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 시골 귀족은 한가할 때마다(사실은 1년 내내 한가했지만) 기사소설에 빠져든 나머지 나중에는 사냥도, 심지어 재산관리조차 제쳐두었다. 기사소설에 대한 호기심과 광기가 지나치다 못해 급기야는 광활한 논밭을 팔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집안 가득 기사소설을 빼곡이 들여놓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 가엾은 시골 귀족은 판단력을 잃어버렸고, 심지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로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부활한다 할지라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들을 이해하고 의미를 되새기느라 밤을 지새곤 했다. ......
결국 그는 책을 읽는 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몇 날 밤을 한숨도 안 자고 말똥말똥한 상태로 지새곤 하는 반면 낮에는 완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이렇게 잠도 안 자고 책만 읽다 보니 머릿속이 푸석푸석해지는가 싶더니 결국은 이성을 잃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머릿속이 책에서 읽은 마법 같은 이야기들, 즉 고통과 전투, 도전, 상처, 사랑의 밀어들과 연애, 가능치도 않은 갖가지 일들로 가득 차버린 것이었다. 그는 책에서 읽은 몽환적인 이야기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

사실상 그는 이미 이성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세상 그 어떤 미치광이도 생각지 않았던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무기를 들고 말등에 올라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속 편력기사의 모험들을 직접 실천에 옮겨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길이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투구를 해결했으므로 이제 야윈 말을 보러 갔다. 비록 피골이 상접한 고넬라의 말보다도 더 약하고 병치레를 많이 했지만, 그의 눈에는 알렉산더의 부세팔루스나 엘 시드의 바비에카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는 장장 나흘 동안이나 그 말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 고민했다. ...... 이렇게 그는 수많은 이름들ㅇ르 지었다가는 버리고, 다시 만들었다가는 버린 끝에 마침내 로시탄테라고 정했다. 그가 생각하기엔 고귀하고 듣기에도 좋았으며, 한때 바싹 야위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이름이었다.

말에게 마음에 꼭 드는 이름을 붙여주고 나자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도 짓고 싶었다. 그래서 여드레를 고민한 끝에 돈키호테라 부르기로 했다. 사실은 이 점 때문에 앞에서 언급했던 작가들이 그의 이름이 케사다가 아니라 키하다가 맞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것이었다. 어쨌든 훌륭한 아마디스는 단순히 아마디스라고 불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조국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조국의 이름을 자기 이름에 덧붙여 아마디스 데 가울라라 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돈키호테도 훌륭한 기사처럼 그의 이름에 고향의 이름을 덧붙여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고 결정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문과 고향 마을을 만방에 알리는 일이라 생각했으며, 그런 이름을 갖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무기를 손질하고 투구를 만들고, 야윈 말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의 이름까지 만들어놓고 나니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사모하는 여인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사랑 없는 편력기사는 잎새와 열매가 없는 나무요, 영혼이 없는 육체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되뇌곤 했다. ......
사람들 말로는 그의 마을 근처에 아주 아리따운 처녀 농부가 있었으며, 그가 한때 열렬히 사랑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의 존재조차 몰랐을 뿐 아니라 그를 마음에 두어본 일도 없었다지만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알돈사 로렌소였다. 돈키호테는 그녀를 마음속 연인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과 어울릴 만한, 그리고 공주나 귀부인에게 잘 맞을 이름을 찾아 고심하던 끝에 마침내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녀가 토보소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이름이 자기 자신이나 모든 것들에 붙여진 이름처럼 음악적이고 신비롭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 준비를 갖추고 나자, 씻어버려야 할 불명예, 바로잡아야 할 부정, 고쳐야 할 무분별한 일, 개선해야 할 폐단과 해결해야 할 부채가 있는 이상 하루라도 지체하는 건 세상에 대한 손실이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으므로, 자신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는 데 더 이상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는 눈물 범벅이 된 산초 판사의 한탄을 들었다.
 "오, 기사도의 꽃이시여, 너무나 위대한 삶을 사신 주인님이 한갓 몽둥이질에 생을 마감하실 줄이야! 오, 혈통의 명예, 명성, 모든 라만차 지방의 영광, 더 나아가 이 세상의 영광, 주인님이 계시지 않으면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 응징을 받을 두려움이 없어져 이 세상은 악당으로 넘쳐날 거예요. 오, 여덟 달 만의 모험으로 전에게 바다로 둘러싸인 훌륭한 섬을 주시니 알렉산더 대왕보다도 더 대범한 분이시여! 오, 오만한 자에게는 겸손하게, 겸손한 자에게는 오만하게, 위험 속에 뛰어들고, 모욕을 견디며, 이유 없는 사랑을 하시고, 선한 자들을 모방하고, 악한 자들을 매질하시고, 천박한 자들의 원수이자, 결론적으로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의 편력기사여!"

(비평을 목적으로 스크랩한거야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