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마주친 순간 내 안에 있던 여자가 이 모습을 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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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제1번. 작품번호 104.

예전에 아르떼TV에서 경기필이 연주한 것을 봤을 땐 그냥저냥이었다. 멜로디가 다소 생경스러웠고 가만히 앉아있던 첼로독주자가 갑자기 신들린 듯 첼로는 켜는 모습이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제 DG컬렉션(카라얀과 로스트로포비치의 협연)으로 접한 드보르작은 정말 최고였다. 첼로 협주곡의 황태자라는 별명이 전혀 무색하지 않음을 배웠다. 오죽하면 브람스가 (내가 상상하기론 조금 떫은 말투로) 왜 나는 이런 곡을 쓰지 못했을까, 이런 말을 했을까.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가 이국의 정경(흔히 평론가들이 흙과 공기라고 평하는)을 그리다가 첼로 독주가 등장하는 부분은 정말 영웅의 등장에 비견할만하다. 음 시리즈물이거나 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의 등장. 느닷없이 튀어나옴에도 불구하고 전혀 쌩뚱맞지 않고 애초에 그 영웅의 등장이 기대되는 상황이 계산된 것처럼 아주 멋지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 땅에서의 영웅의 여행은 장엄하기도 하고 우수에 가득하기도 한데, 아, 정말 매우 멋지면서도 인간적이다.

2악장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악장이라고 한다...만 묘하게 그리 슬프진 않았다. 투명한 느낌.

3악장은 과거 고딩 때 배운 소설의 4단계로 비유하자면 절정, 그리고 종결에 해당된다. 슬픔과 극복의 주제가 반복되다가 영웅, 첼로독주는 웃으며 오케스트라 속으로 사그라든다. 영웅의 죽음이라고 부르는 부분. 그러나 비탄에 쩔어 끝나지 않고 영웅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 세상이 온통 환희에 젖어 노래하면서 곡은 마무리된다.

 

꼭 재밌는 서사시를 하나 읽은 느낌이다. 어제오늘 몇번을 들었는지...아오, 밤에 정말 갑자기 음악 하나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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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어지러우니까 애국심이 솟구친다.

시벨리우스가 핀란디아를 작곡하던 시절 그의 조국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다. 핀란드의 독립운동세력은 애국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시벨리우스에게 역사극 '예로부터의(혹은 옛부터의) 정경'의 음악을 위촉했고 시벨리우스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은 7개의 음악을 작곡했다. 그 중의 하나인 핀란디아는 개정을 거쳐 교향시로 탄생했는데 처음에 관객들은 이 음악을 듣고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다가 이내 이 곡 안에 숨겨져 있는 뜨거운 애국심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불온하다고 하여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연주를 금지당하게 되었다.

곡은 투쟁의 모티브와 축제의 모티브가 교차하면서 긴장을 고조시켜나가다가 '핀란디아 찬가'로 유명해진 경쾌한 선율로 클라이막스를 맞게 된다. 꼭 승리를 예감하는 것처럼.

러시아가 당시엔 얼마나 강력했을까. 누구는 끝도 없이 절망하고 누구는 체념하고 누구는 순종하고 누구는 기약도 없는 싸움을 계속 했겠지만..이 음악이 살아남은 것처럼 이 음악 속 정신 역시 살아서 우리에게 승리의 예감을 전해준다. 지금 여기 한국도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이지만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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