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뉴욕....이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내게 많은 인식을 미치고 있었을까. 실은 인도에 대한 인상조차도 BRICs라는 '요즘 좀 잘 나가는 나라들'의 한 부분으로 아주 피상적이었음을 뭄바이에서 깨닫게 된다. 그 뒤로 인도에서 어떤 산업이나 발전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린 것 같다. 나는 지극히 한국적으로 개발중인 한국의 신도시나 상하이를 생각한 게 분명했다. 처음 뭄바이의 인상은 실망 그 자체였다. 습하고 무더운 공기, 우중충한 조명, 더러운 화장실, 요상한 물맛, 몸을 뉘기에는 빡센 벤치, 익히 들어오던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 뭄바이 국제공항은 긴 여행에 지친 우리앞에 이제 여행은 시작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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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가이드북에서도 백방 말리고 있었고 우리 일행도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정말 나가시면 안 됩니다.) 결국 우리는 공항에서 하룻밤을 청했다. 음, 실은 나는 그때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귀마개와 눈가리개를 사용해서 아주 잘 잤다ㅡㅡ;;인도도 밤12시에서 새벽5시 사이에(10시부턴가;) 할증이 있기 때문에 할증이 끝나고 5시 반쯤에야 우리는 이동하기 시작했다. 150루피짜리 프리페이드를 끊고 뭔가 어리버리 밖으로 나오니 꾸리꾸리한, 우리들의 짐을 싣고나니 차가 안 나갈 것만 같던 고물 엠배서더 택시들이 주차장에 가득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우리에게 뭔가 호객을 시도하던 기사들의 끈질김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나라를 다닐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다.
여차여차해서 택시는 공항을 나왔고, 우리는 인도의 쾌쾌한 새벽공기를 맡으며 길을 나섰다. 길에는 뭔가 천더미들이 널려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은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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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목적지로 삼은 뭄바이 CST역. 빅토리아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멋진 건물이다. 실로 뭄바이가 그런 건물들로 가득차있다. 그때는 몰랐지 뭄바이가 그렇게 깨끗하고 멋진 도시라는 것을. 뭄바이에 처음 도착해서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삼은 아우랑가바드에 가는 표를 구하고자 했다만 시간이 너무 일러 창구가 열려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정말 엄청난 호객행위들.(*뭄바이 CST역에서 외국인 창구는 2층 한구석에 있고 오전 8시 이후에 오픈합니다.) 우리는 짐을 클락오피스에 맡기고 잠깐 아침을 먹은 뒤 표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여기가 바로 외국인 전용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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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의 아침.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무 곳에서나 노숙하고 있다. 날이 밝아와도.......
나는 자는 노숙소년에게 물을 끼얹는 장면을 목격하고 굉장히 기겁했다.
또한 아무렇게나 무단횡단을 하는 장면(실은 인도에서 신호를 지킨다는 것 자체가 상식이 아닌 것 같다.),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그러나 나 역시 나중에는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렸다는 사실, 반성한다),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던 갖가지 구걸행위들(애들은 물론이요, 갓난애 안은 소녀들, 노인들, 기타등등..),
그리고 길거리의 즘생들.
인도에서의 쇼킹했던 장면들은 모두 뭄바이에서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우리는 표를 구하고 아우랑가바드로 떠나는 열차시간인 11시까지 뭄바이를 돌아다니기로 결정했다. 이하는 돌아다닌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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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밟는 건지 죽이는 중인지..
잡담중인 아저씨들.
실은 그냥 일반생활에서도 미간에 빨간 점을 찍는다는 거, 우리 사회에선 불가능한 일 아닌가.
인도에서는 개들 등쌀에 찾아보기 힘든 고양이.





굴지의 타타그룹.
플로라.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뭄바이 국철. 실은 모든 역들은 테러위협때문에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열차로 오늘 팔 생선들을 나르는 아줌마들. 인도의 아주머니들은 대개 강인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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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빨래터 도비가트. 실은 이렇게 빨래터에서 빨래만 전문적으로 하는 카스트가 현존한다는 것이 인도에서만 가능한 일 아닐까.
나는 이렇게 적었다.
"인도의 시내 철도를 이용하여 '도비 가트'를 다녀왔다. 잠시 봤지만 뒤이어 들이닥친 유럽 방문객들 때문에 약간은 슬퍼졌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그들은 같은 슬픔을 느낄까. 사진기를 들이댔을 때 그들의 비참한 지위를 이용해 내게 구걸을 시도한 도비가트의 아이들 때문에 더더욱 슬퍼졌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철도에서 만난 7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가 갓난 아이를 업고 있었다;)에게 동전대신 덥썩 연필 두 자루를 쥐어주었다. 그 아이는 이게 뭔가 하는 표정으로 내게 설명을 요구했고 나는 이것이 무언가를 적는데 사용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그리고 헛되보이는 꿈을 그려주었다.)


에어컨 빵빵한 버스에서 세계최대의 빈민가를 바라보는 유럽인들....
사진을 찍자마자 돈을 요구했던 아이들. 얘네들은 나중에 뭐가 될까.
렌즈를 넘어 나를 찌르는 눈빛들. 어떻게 이런 눈빛들이 가능할까.

세계적인 인기.



아무데서나 잘 잔다. 정말.

콜로니얼 양식.
나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영국의 영화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곳."

콜라바에 있는 타워호텔.
인도문, 철없는 필자. 이때만 해도...때깔이 좋았다.ㅋㅋ
"인도문을 관람. 처음 보는 아라비아해. 물이 그리 맑진 않다."
타즈마할 호텔.
처음 바라본 아라비아해에서. 우리 일행분들도!
손주를 안고 계시던 할아버지.

꼴라바의 '까페 Leopold'에서 처음 마신 인도맥주. 낮술을 먹고 흔들렸나보다. 이게 가장 싼 맥주였는데 무려 185루피였다. 다른 캔맥들은 350ml들이 캔 하나에 300루피를 넘었다. 네명에서 점심을 먹고 2500루피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뭄바이의 물가는 확실히 인도에서도 손가락에 드는 듯 싶다. 뭄바이에서 뭐 먹지 마세요
낮잠을 주무시는 할머니들의 발을 몰래.
붐비는 크로포드 마켓. 생각해보면 꽤 훌륭한 시장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산 질좋은 100루피짜리 셔츠는 여행 끝날 때까지 잘 쓸 수 있었고 그런 물건을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었다. 뭐 악세사리는 어차피 나중에 티베탄 마켓이 있는 곳에 들러 산다고 하더라도 여행 초기에 사용할 의류를 구매하는 것에 있어선 뭄바이의 크로포드 마켓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뭄바이의 맥도날드. 맥도날드가 인도에서는 홈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점원이나 손님이나 영어만 쓴다. 하지만...도통 햄버거의 맛은...소고기도 없고 돼지고기도 없고...인도에서 여행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치킨버거가 중간은 한다는 의견인 것 같다. 나는 멋도 모르고 마하라자 뭐시기 버거를 샀다가 남기고 말았다. 정말 햄버거를 좋아해서 남기는 적이 별로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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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뭄바이 CST역.
그야말로 빠글빠글하다. 아무데서나 잘 눕고 아무데서나 잘 이야기하고 아무하고나 잘 웃는 사람들.
그땐 정말 덥고 사람들 적응이 안 되어서 힘들었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뭄바이는 참 멋진 곳이었다. 단 한나절만 놀고 와서 좋은 기억만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인도의 대도시들은 정말 힘들기만 할 뿐이었고 뭄바이처럼 고풍스럽고 멋지고 깨끗한 대도시는 본 기억이 없다. 아마 미련이 남아서겠지만....
첫날 나는 이렇게 적었다.
"마음이 괴로운 내게 인도는 웃음을 주었다. 어이없게도 귀지로 내게 사기를 치려 했던 엉터리 사기꾼, 앉아서 수다를 떨던 할머니들, 호객꾼들, 말도 안 되게 이쁜 길들, 바람, 인정, 그 찌를듯한 눈빛들, 요상한 당당함, 묘한 향기. 이 땅을 사랑하게 될까?"
아마 그 때 나는 벌써 사랑에 빠지고 있었나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아우랑가바드행 SL열차를 탔다.


사실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베이징에 단체관광을 갔던 것을 빼면 해외에는, 특히 배낭여행은 내게 처음인지라
짐을 쌀 때 얼마나 고민되었던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중요한 짐은 놓고 오고 쓸데없는 짐들만 너무 많았던 것 같아. 여행떠날때 짐을 뭐뭐 쌌나 찍어둘라고 했는데 급하게 부랴부랴 나오는 바람에 생략.

타이항공 항공권. 아시아나항공과 맺은 협정으로 한국에서의 항공권업무는 아시아나가 대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방콕을 경유해서 가기 때문에 티켓이 두장.

생각해보면 참 좋은 비행기였다.
여러가지 모드를 고를 수 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바타부터 시작해서 도착할 때까지 스트레이트로 영화만 질렀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이것저것 모드를 고르다 그냥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내 모자, mp3. 지금은 완전 구겨져서 방랑자의 모자로 전락했지만 이때만 해도 태가 살아있었다.
mp3는 여행을 위해 범용 전지를 사용하는 아이리버 옛날 mp3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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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대만을 지나 비행기는 다시 망망대해로 들어섰다. 에메랄드빛의 선명한 바다. 눈꺼풀이 움찔움찔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내오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방콕까지 한시간 반. 고도 10368m, 830km/h, 바깥온도는 영하 42도씨, 100km/h로 불어오는 바람을 헤어나가고 있다."
하늘, 기내식. 여행 초반부엔 의욕이 너무 강해서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했더랬다. 방콕가는 기편에는 무려 비빔밥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과감하게 탄투르치킨으로 결정....결국 남겼다. 그러나 인도에 들어가자마자 이때의 기내식이 얼마나 훌륭한 식사였는지 내내 생각하게 된다.

방콕공항.
상당히 넓고 많은 쇼핑가가 있다. 아래로는 방콕공항의 풍경.

처음으로 본 인도인.
지금 생각해보니 방콕공항에서 본 인도사람들, 굉장히 깔끔하다.
*
열심히 일하는 태국여자분.


그땐 몰랐는데...인도인이다.
귀여운 타이꼬마.
천상 인도인.
이분도 천상 인도인..
뭄바이행 비행기를 탔던 게이트.
1시간이었나, 2시간을 연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게이트로 들어서는 순간 강렬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냄새. 내가 계속 '인도냄새'라고 기억하고 있는 강렬한 향이 게이트 전체에서 뿜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 내가 정말 인도로 가고 있구나, 실감했다. 인도인에 대한 첫인상을 그때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태국인들보다 자신감있고 개성있다. 키가 크고 피부색과 수염 모두 짙다. 그리고 코가 길다......."
이땐 인도인들에 대해서 코딱지만큼도 몰랐다. 내가 자신감, 개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실체와 직접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놀라움. 난 그때까지도 한국에서 뻗어나간 어느 길의 연장에 서있었던 셈이다. 그 길이 아주 다른 세상으로 향한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인도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인도인들이 왁자지껄 술파티를 벌이던 뭄바이행 비행기에서조차도 나는 내가 어느 세계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지 못했다. 그 세계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내게 그 거대한 실체의 작은 조각을 드러냈다.

"왜 오셨수?"


"왜, 인도로 오셨어요?"
당신이 만약 인도의 어느 곳을 걷다가 한국사람을 마주치면 거의 십중팔구 마주치게 될 질문이다. 이 질문은 왜 (인도같은)(후지거나 혹은 힘든) 곳으로 여행을 왔냐는 말을 생략하고 있다. 또 (인도같은)(후지거나 혹은 힘든) 곳으로 여행을 온 자기자신에 대한 질문 혹은 그것을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섞여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곳에 오셨어요?"
나는 왜 인도로 갔을까. 인도에 있을 때 나는 그것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찌 표현해야할지,
그냥 좋았다는 말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좋지 않았던 적이 많았고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가끔은 인도의 거리도 지겹고 계속 말을 붙여오는 사람들도 너무 짜증나서 솔직히 패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쁜 조건속에서도 아주 많은 순간 만족스러웠고 심지어는 행복한 적도 있었다. 참으로 알 수 없게도.
나는 왜 인도로 갔을까. 이것을 설명하는 시도는 내가 인도로 간 상황, 인도에서 겪은 일들, 그리고 느낀 점들을 모두 종합하는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왜, 인도로 오셨어요?"는 궁극적으로 내 여행기를 모두 포괄하는 제목이 될 것이다.
때문에 자세한, 그리고 유용한 '정보'는 이 글에선 다루지 않을 예정이다.
아주 주관적이고 참을성있게 바라봐야하는 글이 되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된다만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 되리라 생각한다.
자, 그럼 시작해보자.





"오빤 내가 왜 좋아?"

조제, 그 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이것저것 말했지만 실은 그 아이의 하나하나의 장점을 놓고 보자면 그건 다 거짓말이었다. 일례로 나는 세상에서 그 아이가 가장 이쁘다고 말했지만 (우리의 통념에 동의한다면) 세상에는 그 아이보다 이쁘고 늘씬한 미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성격이나, 여러가지 장점들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나는 그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별것아닌 장점이나 단점들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였던 게 아니었을까.
인도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도는 한국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상당히 더럽고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고 눈치도 없으며 거짓말을 아주 밥먹듯이 하며 치안은 개판이고 또 나라는 어찌나 커서 이동할 때는 정말 개고생이고 무진장 덥고 숙소도 후지고......'관광'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도는 정말 단점투성이인 나라일 뿐으로 나는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이 만약 인도로 관광을 간다고하면 정말 따라다니며 뜯어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 나는 왜 인도로 갔을까? 인도행을 결정하던 봄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인도라에 대해 부처님의 고향, 수많은 철학과 종교가 일어난 곳, 브릭스의 일원으로 한창 떠오르는 개발국가, 약간 후진 나라 이 정도의 막연한 인식밖에 가지고 있지 못 했다.
사실 처음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려고 했다. 아는 후배가 계속 꼬시기도 했고 나 자신도 서구국가들에 대한 동경을 심히 많이 품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여행은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아마 SLR클럽이었을거야, 거기에서 어느 분이 올린 게시물을 보게 되고 인도에 대해 갑자기 엄청난 동경을 품게 되었다. 그 분은 한 게시물에 정말 많은 인물사진을 올렸는데 나는 그 안에서 후줄근하고 누추한 사람들의 몸뚱아리 위로 뭔가 불타오르는 듯 빛나는 그 눈동자들을 보고야 말았다. 홀렸다고 말해야할까. 그 뒤로 인도에 대한 게시물들, 인도방랑기의 여행기들을 뒤져보기 시작했고 어느새 선진국들의 대륙은 나에게 잊혀지고 말았다. 나는 달아올랐다. 꼭 소개팅 직전에 상대방의 (사기)사진을 본 느낌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인도를 만나고, 만지고, 말하고,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실은 인도의 그 저렴함이 참 마음에 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유럽에서 한달동안 빌빌 대면서 매일 햄버거를 벗삼는 날들을 이어가야하는데 그 돈으로 인도에서는 그럭저럭 두달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약간 방탕한 쇼핑과 술판으로 인해 나중에는 계획보다 조금 더 돈을 쓰긴 했지만...인도 여행의 굉장한 장점 중 하나는 몹시 저렴(이 말은 한국적인 의미에서) 연인에게는 모욕이 되겠지만하다는 점이었다. 그래 비유로 말하자면 더이상 굳이 비싼 레스토랑, 비싼 선물을 요하지 않아도 되는 오래된 연인과 같다고 할까.

다시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인도에서 쓴 돈만큼 다른 여행지를 갔다면 어땠을까. 유럽에서는 크게 고생하지는 않았겠지만 인도처럼 많은 땅과 많은 사람들을 접하진 못했을 게다. 동남아에 갔다면 꽤나 호화롭고 대접받는, 그리고 꽤나 향락에 젖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겠지만 많은 생각을 하진 못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북미나 남미는 아마 비행기값이 나의 여행비용과 맞먹었을 것이며.......앞으로 살아가면서 인도보다 좋은 여행지를 분명 나는 만날 것이다. 그러나 스물여섯 나의 봄, 이것을 송두리째 인도에 투자한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 내게 인도는 최고의 선택지였고 나는 다시 그것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없이 인도를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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