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다녀온 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리라....마음먹었지만 지연되는 아르바이트 복직과 병으로 인해 결국 학교에 가기 전까지 안산에 쭉 머물게 되었다. 안산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4살인가 5살부터 스물까지 떠난 적 없이 지내온, 한마디로 난 안산토박이지만 학창시절에는 피씨방과 노래방, 오락실 이런 곳밖에 가본 적이 없어서;;;이제 20대 후반에 접어든 자의식강한 비참한 고독남의 취향에 걸맞는 장소를 잘 알지 못했다. 실은 안산은 혼자서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낸다거나, 뭔가 영화나 연극, 혹은 공연을 관람하기엔 조금 힘든 환경이다. 다만 그냥 술마시며 놀기에 좋다..(그것도 어찌보면 학교주변이나 신촌에 비하면 부족함이 있다...)

요새는 집이 하도 더워서 혼자 까페에 가서 포토샵을 하곤 하는데 최근에 괜찮은 까페를 하나 발견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음, 실은 지금 이 글 역시도 그 까페에서 쓰는 거라 조금 이상한 느낌이긴 한데, 여튼 소개하자면 이 까페의 이름은 "커피볶는칼디"이다. 이 이름의 유래는 커피를 발견한 케냐의 소년의 이름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커피맛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까페주인이 직접 커피를 공수해서 로스팅룸에서 볶는다고 하는데 꽤 괜찮은 느낌이다. 나는 커피맛의 포인트는 얼마나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우러나오는 가에 두고 있는데 내 주관적인 느낌에서는 스타벅스보다는 나은 것 같고 커피빈과 비슷한 것 같다. 아메리카노 한잔이 4000원으로 그렇게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무려 한잔을 리필해주기 때문에 나처럼 오랫동안 까페에서 시간을 때우면서 글을 쓰거나 뭔가 작업을 해야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괜찮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커피를 연달아 두잔 마시면 카페인 과다복용에 다른 후유증이 (내게는) 오긴 한다만...ㅋㅋ하도 심심한 요새는 그것을 즐기고 있다.;;인테리어는 아기자기한 맛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꽤 깔끔한 편이고 창가에 앉으면 중앙동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호사(?)를 즐길 수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바로는 한시간에 5천원씩 커피강좌를 연다고 하니 커피에 관심있는 인물이라면 수강하는 것도 괜찮은 듯 싶다. 이미지를 넣으려고 했는데 웹에서 검색이 안 되는 관계로 다음기회에 직접 촬영해서 넣도록 하겠다.

다음 소개하고 싶은 곳은 영화관. 고잔신도시의 중간정도에 시청에서 쭉 이어지는 대로변 한쪽에 프리머스 영화관이 있었다. 이중할인이 가능해서 평일 심야에는 무려 15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몇년 전에 제대 후 안산에서 알바하면서 지낼 때는 정말 혼자 많이도 다녔더랬다. 정말 조용하고 영화보기 좋은 환경이었는데 역시나, 그 한산함으로 인해(사람들이 많이 들지 않았다는 거니까) 프리머스에서 포기해버렸다. 안산 CGV도 그런식으로 망한 적이 있는데 고잔신도시의 그 한산함을 이겨내기란 정말 어려운 모양이다. 여튼 그런식으로 극장은 2년정도 방치되어 있다가 최근 씨너스의 투자로 다시 되살아나게 되었다.(나중에 알아보니 씨너스가 인수한 이후 문을 닫은 모양이다.) 프리머스나 씨너스나 아주 메이저 극장체인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씨너스는 그래도 이수같은 곳에선 꽤 괜찮은 영화선택을 보여주기도 했고 운영마인드도 좋은 것 같아서 긍정적이라고 봤는데 어제 인셉션을 보러 갔을 때 정말 감동하고 말았다. 정말 삐까번쩍하다. 특히나 극장이 위치한 곳이 신도시 상업블록의 끝자락이어서 탁트인 야경을 볼 수 있는 라운지가 있는데 조명선택을 잘해놔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정말 '그럴 듯 하다.' 교통편이 좀 불편한 편이지만 안산에서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로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사람도 적고 조용한 데다가 새로 개장한 후에는 나름 까페테리아도 있어서 영화관람과 담소를 나누기엔 정말 좋은 느낌이다. 영화관 내부도 깔끔하고 의자가 약간 높은 느낌이 있긴 하지만 뒤로 젖혀져서 안락한 자세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CGV나 메가박스를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이유인 영화 시작전 광고 개떡칠이 없어서 난 너무나 좋았다. 아, 정말 안산에 씨너스같은 개념극장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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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에, 혹은 어느 여름날에, 혹은 어느 가을날에, 그리고 어느 겨울날에
당신이 젊고 지나가는 시간을 느끼고 싶다면 사계 전곡 청취는 어떨까.

나는 생각이 너무 괴로워서 별로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웃고 울고 싶을 때 사계를 듣는다.
사계에는 청춘 역시도 하나의 장으로 녹아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청춘의 괴로움을 견디기 쉽게 만들어준다,
그래, 나는 약 2000cc의 맥주를 마시고 m에 대한 생각으로 견디기 힘들었고 꿀물을 마시는 것처럼
사계를 들었다. 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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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연찮은 계기로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에서 개최하는 수난절 연주회에 가보게 되었다.
오라토리오 장르를 접하는 것은 처음이고 또 기분이 몹시 불경스러운 이유로 찝찝했으며 몸이 피곤하여
가서 그냥 꾸벅꾸벅 졸면서 기도하다가 오는게 아닐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버거킹에서 잽싸게 와퍼세트를 먹고 연대쪽으로 걸어갔다. 지난겨울에 필름포럼가는 길에 들리고서는 오랜만에 돌아본 연대는 음 봄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찌 그리 이쁘고 잘 생겼던지. 나는 이쁜 사람들을 보니 M이 생각나서 마음이 찌릿찌릿해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음, 실은 그래서 요한 수난곡을 꼭 들어보고 싶었다. 경건함으로 열정을 누를 수 있을런지. 안 되겠지만 막스의 말대로 종교가 아편이라면 중환자나 다름없는 내게 종교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리라. 구원에 대한 약속 없이는 생을 살아가기 힘들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악기는 바로크시대 수준으로 소편성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하프시코드와 저 뒤편에 뻗어나온 파이프들로 숨을 쉴 오르간. 교회당 내부는 조금은 시끌벅적했다. 아마 음악을 전문적으로 들으러 다니는 관객이라기보단 합창단으로 출연하는 학생들의 가족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학교에서 이런 음악회를 한다는 게 음대가 없는 학교를 다니는 나로서는 조금은 부러웠다.

이윽고 지휘자가 손을 들고 장엄한 합창으로 수난곡은 시작한다.

Herr, unser Herrscher, dessen Ruhm in allen Landen herrlich ist! 주여, 온 땅에 그 명성이 드높으신 우리 주여!
Zeig uns durch deine Passion Dass du, der wahre Gottessohn 당신의 고난을 통하여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Zu aller Zeit, Auch in der
größten Niedrigkeit, Verherrlicht worden bist! 가장 낮아지셔서 영원토록 영광 받으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소서

마치 하나의 도전같이 수난곡은 시작된다. 요청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왠지 나는 경건한 바흐가 신에 대해서 가지는 자신감, 자부심을 느낀다. '한번 보여주세요!!'라는 외침이랄까.

수난곡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유다와 제사장들의 병사들, 로마군병들이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죄없는 예수를 그들은 마치 강도를 잡듯이 몽둥이를 들고 찾아왔다. 예수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순순히 잡혀들어가고 제사장에게 심문을 받는다. 은근히 따라들어온 베드로는 세번 예수를 부인하고는 예수의 말씀을 생각하고 극심한 슬픔에 잠긴다. 빌라도는 유대사람들이 넘긴 예수를 심문하지만 쉽게 죄상을 찾을 수 없고 당당한 예수 앞에 떪떠름하여 유대인들에게 이자를 방면하자 말하지만 유대인들은 합창한다.

Nicht diesen, sondern Barrabam! 그 사람이 아니오. 바라바를 놓아 주시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 애쓰지만 완강한 유대인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Pilatus : "Sehet, das ist euer König!" 보시오, 당신들의 왕이오
Sie schrieen aber : "Weg, weg mit dem, kreuzige ihn!" 그들이 외쳤다 :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요한수난곡에는 유난히 König과 kreuzige를 강조하는데 장험한 요한복음의 분위기를 살리기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그리고 빌라도가 아주 중요한 배역을 맡는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것이 예언대로였다.

"Es ist vollbracht!" "다 이루었다."

이어 주의 고통과 죽음을 감사하고 찬미하는 서사와 아리오소, 아리아, 코랄, 코러스가 연이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나의 영혼을 부탁하는 코랄과 함께 수난곡은 끝마침한다.


바흐가 처음 라이프치히 지역의 칸토르로 부임하던 첫 해에 이 수난곡은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곡은 실제 예배에 연주되기 위한 의도로 작곡되었고 작곡이 완료된 즉시 전곡의 연주가 허가되었다고 한다. 난 이 수난곡의 코랄을 들으며 한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한 삶을 살았던 바흐가 어쩌면 천국의 아름다움을 맛본 것이 아닐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소편성의 바로크 음악이 그렇게 풍푸하고 웅장한 위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조금 엉성한 교향곡이나 오페라보다 수난곡이 훨씬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물론 거기에는 내가 신자라는 점과 바흐라는 거장의 솜씨가 많은 영향을 끼쳤겠지만 말이다.

나오는 길에는 집에 어서 들어가서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텅 빈 듯해서 견디기 힘들었던 가슴도 뭔가로 채워진 듯 했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천천히 생각해보고 그 좋은 것들로 내 속을 가득채워가길 원한다. 내 갈망이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것이라면 신과 음악으로 그것을 달래봐야지.

그러나 M과 함께 음악회에 가고 싶었던 건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중간에 예수의 죽음이라는 엄숙한 장면에서 살짝 졸던 합창단원분의 귀여운 모습에 완전 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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