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간지..
저 콘서트 장에 가고 싶다

http://www.youtube.com/watch?v=JnRIQhH-evo
영화<봄날은 간다>는 제목의 뉘앙스가 봄의 끝이나 초여름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실은 가을에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 영화이다.
날이 좀 스산해지고 모든 것이 추위 속에서 잠들 준비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조용히 지난 시간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가을이라는 계절에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의 시작과 종말을 관조하는 것! 참...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봄날은 간다>를 봤다. 한꺼번에 보는 게 아깝기도 했고 둘이 헤어지는 게 너무 싫어서 전철에서 20분씩 끊어보기도 했지만 결국 끝내버렸다. 저번주에 영화에 대한 찬사를 대신해 스스로에게 시월중으로 한번 글을 써보자고 약속했는데 거의 포기상태에 왔다가 오늘은 좀 손이 풀린 것 같아서 부족하지만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음향기사 상우와 지방방송국 앵커인 은수

"...봄날이 가면 그 뿐..."
-기형도 <봄날은 간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사랑은 참 이쁘지만 잔혹하고 생각보다 현실적이라는 것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때가 지금부터 6년전 04년 봄이었으니, 나는 그때 내 나름 굉장히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있었다.
나는 너무 쉽게 상우와 나를 동일시했고 은수의 사랑은 이해하지 못 했다. 아마 애써 이해하려고 했어도 이해하지 못 했을게다.
지금도 솔직히 완전히 이해가 되는건 아니었지만 그땐 상우의 그 유명한 테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를 쭉 마음 속 깊히 새겨두고 있었다. 난 상우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순수해보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사랑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 스스로 그런 사랑을 얻기 위한 시도 끝에 실패의 가능성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고 그런 사랑은 소설에나 등장하는 게 아닐까 묻던 시기였으니 반대로 상우의 연애관에 동화됨으로써 변해가는 나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것들은 전부 6년이 지난 시기의 나의 해석이니 나중에 가서 또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스무살의 나는 그당시 나의 연애관에 부합되는 해석을 내렸고 또 그것을 강화했다.
"...아름다와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아마 이런 사랑을 그리지 않았을지.

이 영화의 장점은 묵묵하게 사랑의 정경을 묘사하면서 (약간의 열린 결말) 관객들에게 판단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마다 얼마든지 자기나름의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아주 보편적인 것이어서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 어느 때든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영화가 참 흐리멍텅하지만 그게 우리의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6년에 걸쳐서 네번 봤고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영화를 봤을 땐 연애와 일상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통념상 연애는 약간의 일탈적인 상황으로 여겨진다.
연애는 '빠지게' 되고 그만큼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시간, 비용, 무엇보다도 연애는 아주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연애를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우와 은수의 연애에 있어서 허진호 감독은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진 않지만(보통 멜로영화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사건을 생각해보자)
이끌림 이전에 은수의 외로움이 많은 역할을 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상우에 비해서 은수의 외로움은 생활 자체에 깊게 배어 있다. 혼자 사는 집, 어쩌면 연락도 끊어진듯한 가족, 홀로 일하는 일터, 이혼
등등 당연히 은수는 아주 외로운 여자다.
내가 어릴 적에는 비난했던 행동들이 나는 이제 이해가 간다. 사람이 외로우면 그 외로움을 깨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데
그것에 대해서 비난하기엔, 조금 인간적으로 정상참작의 여지가 매우 크지 않은가.
어쨌든 상우와 은수의 연애에 있어선 은수의 외로움이 큰 원인이 되었고 은수의 리드하에 이 연애는 시작되었다.

중간의 '아름다운' 부분은 생략하도록 하자. 물론 지금도 난 그 장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그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나중에 닥칠 종말을 배태하고 있다는 점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냥 이 정도로만..

이제 그들의 사랑은 계속된 연애관계인가 아니면 그것을 정례화하느냐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원거리연애, 그리고 은수의 직업은 연애에 계속 부담을 더했는데 상우는 늦게까지 이 점을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현실적인 은수는 그 점을 빨리 깨달았고 그것에 대한 불안으로 상우에게 선택을 강요하는데
우리의 상우씨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연애가 정례화되면, 연애가 일상으로 들어와버리면 사람은 또다시 외로워지지 않을까.
은수는 마냥 불안하고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것을 연애로 지속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또 그 연애가 언제까지 외로움을 채워줄 지, 연애가 연애로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상우는 사랑이 사랑이기 때문에 결혼이라는(본인이 아는 유일한) 선택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은수가 선택할 범주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우는 사랑이 변하고 떠나버렸다고 생각하지만(끝까지 변심으로 받아들인 흔적이 보인다.)
지금 바라본 은수는 그 사랑을 더이상 할 수 없어 끝을 확인한 것 뿐이다.
사랑이 변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그 사랑은 끝나버렸다.
아무리 변하는 듯한 그녀의 마음을 붙들어본들 끝나버린 사랑을 되살릴 수는 없으니.

모두가 외로워서 사귄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외로움이 사랑에 있어서 일정부분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부분 은수의 정체된 사랑에 비해 성장한 상우의 모습에서 나는 자꾸 또다른 가능성을 점친다.
은수를 일정부분 내 시각에서 이해했는데 아직도, 여전히, 나는 사랑이 끝난다는 사실이 무섭다.
하지만 무서워도 봄날은 지나면 그뿐. 할머니의 대사를 부인할 수 없다.
"힘들지?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게 아니란다."

10.11.1 1안

자세한 사항은 네이버를 검색하면 많이 나오니 그냥 감상평만 적고자 한다.

전람회의 그림은 음악이 인간의 정서를 얼마나 잘 표현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지 보여주고 있다.
무소르그스키는 소품 하나하나를 통해 그것에 해당하는 인생의 한 단편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 표현의 호소력이 너무 뛰어나서 듣다보면 음향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피아니스트, 그리고 작곡가와 만나는 느낌이 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 곡은 청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호소력이 아주 강한 곡이다. 아주 매력적인 곡이란 말이다.
두번째 곡부터 딴 생각할 틈 없이 우리는 무소르그스키가 제시하는 풍경 속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중세의 오래된 성, 한적한 러시아의 벌판, 궁전, 기기묘묘한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마치 안개속으로 사라지듯 멀어진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타고 한참을 움직이던 우리는 기어이 러시아의 고도 키에프의 대문으로 들어가는데
그 성은 아주 웅장하고 마치 개선하는 것마냥 밝은 날에 환희만이 가득하다. 그것을 보기 위해,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소르그스키의 길고긴 여행에 동참한 셈이다. 마치 몇일동안 산과 들을 넘어 도착한 라닥처럼 그것은 반짝반짝 빛난다.

여행의 막바지에서 청자가 느끼는 그 느낌을 카타르시스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한껏 울고 운 것처럼 마지막 곡의 경쾌한 타건은 먹먹한 가슴을 뻥 뚫어버린다.
무언가 맺혀있던 것이 박살나고 청자는 마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온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전람회의 그림이 천착한 '효과'는 다음 세기의 시각예술들이 보여주는 '효과'를 앞서 보여주고 있다.
원래 그림이었던 것이 음악이 되고 그 속에서 영화가 탄생하는 위대한 여정이랄까.

Modest Mussorgsky (1839-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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