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주일 전이다. 내가 갓 공부놓은지 얼마 안 돼서 안산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을지로에 가기 위해 종묘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렌즈 나사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

 

좀 썰렁한 인트로로 글을 시작했다. 

작년에 영입해서 아주 애지중지 잘 쓰던 자이스 판콜라 렌즈를 술먹고 고장냈다. ㅠㅠ (이로써 이 렌즈는 완전 내 운명)

술먹는 자리에는 가급적 카메라를 안 들고 가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지만 아끼던 판콜라 렌즈가 심하게 고장나고 말았다.  

나무에 부딪혔는지, 나사산이 파였는지 렌즈가 돌아가질 않아서 운명했다고 생각하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꽤나 마음에 들던 렌즈라서 수없이 자학하면서 마음아파하고 있다가, 

펜탁스클럽 질문글에서 세계사를 추천하시길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친구편에 세계사로 들려보냈다. 

다행이도 종로에 있는 세계사 사장님이 흔쾌히 수리를 맡아주신다고 해서 정말 감사의 기도를…

 

조금 심한 파손이기도 해서 시간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잘 작동되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세계사 사장님의 방향도 나랑 비슷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중간에 제 친구가 들렀는데, 잘 돌아가지만 아직은 미흡하다며, 조금 더 수리를 했음 좋겠다고 하셨다고 그러더라.

아직 미흡하다고, 나사산을 직접 깎으시겠다고(!) 그러시더라. 그래서 내 친구와 나사깎는 노인 드립을 한동안 치고 놀았더라는…

처음 맡기고 한 두 달 정도 지난 지금, 렌즈가 다시 내 손에 돌아왔다. 

정말 다행이도 잘 작동한다. 문제있으면 언제든지 오라는 말씀도 해주시니 한결 안심. 

수리비도 생각보다 많이 안 받으셔서 좀 놀랐다.

텟사 렌즈 하나도 포커스링이 뻑뻑해서 기름칠하러 같이 맡겼는데, 도합 5만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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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돌아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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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다시 돌아온 판콜라 렌즈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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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클래식 카메라나 클래식 렌즈라는 것들이 설계되고 시판된지 오래된 것들이라서 그걸 수리하는 건 기예의 영역인 거 같은데,

세계사는 믿을만 한 것 같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납기가 길어질 거 같으면 미리 연락도 자주 해주셨다.

더 유명한 보O사는 MX 수리를 망쳐서 내 시선에서 out, 

다시 돌아온 판콜라 렌즈를 써보니, 음 굿!

이상하게 마음에 드는 사진도 많이 남겨주는데 사건 사고도 많은 렌즈가 되어가고 있다ㅡ;;;

 

세월이 수상하다. 

유행은 돌고돈다고 그랬나, 요즘 사진찍는 사람들의 트렌드는 작고 성능좋은 미러리스, 또는 빈티지한 똑딱이가 아닌가 싶다. 

내 장비도 점점 무거워지면서 작년부터 계속 Point & Shoot, P&S 카메라를 영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올해들어 똑딱이라는 말의 무게와 다르게 똑딱이들의 몸값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셀러브리티들로 인해 촉발된 빈티지 똑딱이 열풍으로 인해 필름 똑딱이의 중고가가 왠만한 하이엔드 디카의 가격을 뺨치고 있다. 

DSLR 장비에 거의 모든 예산을 몰빵하고 있어서, 수십만원이나 하는 서브카메라를 들이기에는 부담이 컸지만, 또 DP처럼 싸지만 다루기 힘든 장비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약간 희귀한 매물로 나온 GX100은 꽤 연식이 된 카메라지만 바디의 만듬새나 화각, 그리고 마크로 기능, 가격 모두 다 매력적이었다. 

왕년에는 거의 백을 찍는, 지금의 GR1,2와 같은 위치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10만원 이내에 구할 수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않겠는가. 

언젠가는 최신형 GR을 써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어차피 당분간은 메인카메라에 집중할 수 밖에 없고 서브카메라의 롤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적절한 구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오늘 하루를 쓴 입장에서는 적절한 프로파일을 갖추지 않으면 쌩jpg로 쓰기에는 좀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기본적인 노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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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는 귀하신 몸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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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은 뭔가 펜탁스스럽지만, 직접 써보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가 마음에 든다. 

아주 먼 옛날 GRD 시절부터 리코의 디자인은 감성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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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 시스템은 펜탁스다. 어렸을 때 배운 카메라가 펜탁스라, 그 카메라랑 렌즈들을 공유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지만, 펜탁스는 나름의 장점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M42 렌즈들과 펜탁스 렌즈들이 플랜지백이 같기 때문에, DSLR 시대에도 펜탁스 기기들은 M42 렌즈들을 비교적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래전에 나온 수동렌즈들도 펜탁스가 K마운트를 유지하고 있는 고로, 빈티지한 렌즈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펜탁스의 장점이라고 하겠다. 


 장정은 장점이지만, 사실 나는 니콘이, 쏘니가 쓰고 싶다. 크흐. 내가 다시 M42 렌즈에 눈을 돌리게 된 건, 카메라 바디를 바꾸면서 고화소에 맞는 렌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펜탁스 렌즈 중에서도 해상력이 좋은 렌즈들은 수동렌즈라 할지라도 가격이 상당하고, 그렇다면 나온지 오래 되어서 저렴저렴하면서 높은 해상력을 가지고 있는 칼 자이스 렌즈들에 나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M42 렌즈들을 찾으려고 장터에서 기웃기웃거렸는데 웃기게도 쏘니와 다른 마포진영들에서 내놓은 미러리스 카메라들이 M42 마운트를 호환하는데 성공하면서, 내가 오래전에 M42 렌즈에 관심을 가졌을 때보다 가격들이 올라있더라. 조나나 플라나같은 좋은 렌즈들은 아직도 왠만한 펜탁스 최신렌즈 가격을 하고… (애플이 가격방어가 굉장한데, 라이카와 칼 자이스의 가격방어를 보면 말이 안 나온다.) 그래서 결국 칼 자이스 예나 DDR(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바로 동독되시겠다)이 찍힌 이 두 형제를 수중에 넣게 되었다. 


 50mm 렌즈를 두 개? 바본가요? 가 아니라, 둘을 구한 시점이 다르다. 테사 렌즈는 한 8년 전에 구매하고 잘 쓰지 못 해서 장농에서 고이 쉬고 있었고, 이번에 구한 게 판콜라 렌즈다. 후에 사용기와 사진 샘플들을 첨부하겠지만, 써보니 역시나 칼 자이스는 단단하고 선예도가 좋다. 물론 핀맞추는게 지옥이지만… 그나마 라이브뷰를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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