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제1번. 작품번호 104.

예전에 아르떼TV에서 경기필이 연주한 것을 봤을 땐 그냥저냥이었다. 멜로디가 다소 생경스러웠고 가만히 앉아있던 첼로독주자가 갑자기 신들린 듯 첼로는 켜는 모습이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제 DG컬렉션(카라얀과 로스트로포비치의 협연)으로 접한 드보르작은 정말 최고였다. 첼로 협주곡의 황태자라는 별명이 전혀 무색하지 않음을 배웠다. 오죽하면 브람스가 (내가 상상하기론 조금 떫은 말투로) 왜 나는 이런 곡을 쓰지 못했을까, 이런 말을 했을까.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가 이국의 정경(흔히 평론가들이 흙과 공기라고 평하는)을 그리다가 첼로 독주가 등장하는 부분은 정말 영웅의 등장에 비견할만하다. 음 시리즈물이거나 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의 등장. 느닷없이 튀어나옴에도 불구하고 전혀 쌩뚱맞지 않고 애초에 그 영웅의 등장이 기대되는 상황이 계산된 것처럼 아주 멋지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 땅에서의 영웅의 여행은 장엄하기도 하고 우수에 가득하기도 한데, 아, 정말 매우 멋지면서도 인간적이다.

2악장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악장이라고 한다...만 묘하게 그리 슬프진 않았다. 투명한 느낌.

3악장은 과거 고딩 때 배운 소설의 4단계로 비유하자면 절정, 그리고 종결에 해당된다. 슬픔과 극복의 주제가 반복되다가 영웅, 첼로독주는 웃으며 오케스트라 속으로 사그라든다. 영웅의 죽음이라고 부르는 부분. 그러나 비탄에 쩔어 끝나지 않고 영웅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 세상이 온통 환희에 젖어 노래하면서 곡은 마무리된다.

 

꼭 재밌는 서사시를 하나 읽은 느낌이다. 어제오늘 몇번을 들었는지...아오, 밤에 정말 갑자기 음악 하나로 기쁨.

'세상 > 들어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Quiett, "Quiet Storm : a Night Record"  (0) 2010.03.20
Bach Cello Suites  (0) 2010.03.18
Finlandia Op.26  (0) 2009.12.12
유재하 1집  (0) 2009.12.06
Verbal Jint 3집, <The Good Die Young>  (0) 2009.11.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