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연찮은 계기로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에서 개최하는 수난절 연주회에 가보게 되었다.
오라토리오 장르를 접하는 것은 처음이고 또 기분이 몹시 불경스러운 이유로 찝찝했으며 몸이 피곤하여
가서 그냥 꾸벅꾸벅 졸면서 기도하다가 오는게 아닐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버거킹에서 잽싸게 와퍼세트를 먹고 연대쪽으로 걸어갔다. 지난겨울에 필름포럼가는 길에 들리고서는 오랜만에 돌아본 연대는 음 봄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찌 그리 이쁘고 잘 생겼던지. 나는 이쁜 사람들을 보니 M이 생각나서 마음이 찌릿찌릿해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음, 실은 그래서 요한 수난곡을 꼭 들어보고 싶었다. 경건함으로 열정을 누를 수 있을런지. 안 되겠지만 막스의 말대로 종교가 아편이라면 중환자나 다름없는 내게 종교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리라. 구원에 대한 약속 없이는 생을 살아가기 힘들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악기는 바로크시대 수준으로 소편성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하프시코드와 저 뒤편에 뻗어나온 파이프들로 숨을 쉴 오르간. 교회당 내부는 조금은 시끌벅적했다. 아마 음악을 전문적으로 들으러 다니는 관객이라기보단 합창단으로 출연하는 학생들의 가족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학교에서 이런 음악회를 한다는 게 음대가 없는 학교를 다니는 나로서는 조금은 부러웠다.

이윽고 지휘자가 손을 들고 장엄한 합창으로 수난곡은 시작한다.

Herr, unser Herrscher, dessen Ruhm in allen Landen herrlich ist! 주여, 온 땅에 그 명성이 드높으신 우리 주여!
Zeig uns durch deine Passion Dass du, der wahre Gottessohn 당신의 고난을 통하여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Zu aller Zeit, Auch in der
größten Niedrigkeit, Verherrlicht worden bist! 가장 낮아지셔서 영원토록 영광 받으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소서

마치 하나의 도전같이 수난곡은 시작된다. 요청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왠지 나는 경건한 바흐가 신에 대해서 가지는 자신감, 자부심을 느낀다. '한번 보여주세요!!'라는 외침이랄까.

수난곡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유다와 제사장들의 병사들, 로마군병들이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죄없는 예수를 그들은 마치 강도를 잡듯이 몽둥이를 들고 찾아왔다. 예수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순순히 잡혀들어가고 제사장에게 심문을 받는다. 은근히 따라들어온 베드로는 세번 예수를 부인하고는 예수의 말씀을 생각하고 극심한 슬픔에 잠긴다. 빌라도는 유대사람들이 넘긴 예수를 심문하지만 쉽게 죄상을 찾을 수 없고 당당한 예수 앞에 떪떠름하여 유대인들에게 이자를 방면하자 말하지만 유대인들은 합창한다.

Nicht diesen, sondern Barrabam! 그 사람이 아니오. 바라바를 놓아 주시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 애쓰지만 완강한 유대인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Pilatus : "Sehet, das ist euer König!" 보시오, 당신들의 왕이오
Sie schrieen aber : "Weg, weg mit dem, kreuzige ihn!" 그들이 외쳤다 :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요한수난곡에는 유난히 König과 kreuzige를 강조하는데 장험한 요한복음의 분위기를 살리기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그리고 빌라도가 아주 중요한 배역을 맡는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것이 예언대로였다.

"Es ist vollbracht!" "다 이루었다."

이어 주의 고통과 죽음을 감사하고 찬미하는 서사와 아리오소, 아리아, 코랄, 코러스가 연이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나의 영혼을 부탁하는 코랄과 함께 수난곡은 끝마침한다.


바흐가 처음 라이프치히 지역의 칸토르로 부임하던 첫 해에 이 수난곡은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곡은 실제 예배에 연주되기 위한 의도로 작곡되었고 작곡이 완료된 즉시 전곡의 연주가 허가되었다고 한다. 난 이 수난곡의 코랄을 들으며 한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한 삶을 살았던 바흐가 어쩌면 천국의 아름다움을 맛본 것이 아닐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소편성의 바로크 음악이 그렇게 풍푸하고 웅장한 위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조금 엉성한 교향곡이나 오페라보다 수난곡이 훨씬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물론 거기에는 내가 신자라는 점과 바흐라는 거장의 솜씨가 많은 영향을 끼쳤겠지만 말이다.

나오는 길에는 집에 어서 들어가서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텅 빈 듯해서 견디기 힘들었던 가슴도 뭔가로 채워진 듯 했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천천히 생각해보고 그 좋은 것들로 내 속을 가득채워가길 원한다. 내 갈망이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것이라면 신과 음악으로 그것을 달래봐야지.

그러나 M과 함께 음악회에 가고 싶었던 건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중간에 예수의 죽음이라는 엄숙한 장면에서 살짝 졸던 합창단원분의 귀여운 모습에 완전 반함

'세상 > 들어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La Valse, 근대와의 작별  (0) 2010.09.10
비발디, 사계.  (2) 2010.04.01
The Quiett, "Quiet Storm : a Night Record"  (0) 2010.03.20
Bach Cello Suites  (0) 2010.03.18
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 Antonin Leopold Dvorak  (0) 2009.12.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