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쌔까만 츄리닝입고 한강달리는 놈", "다 컸는 줄 알았는데 더 크는 놈"



제왕은 검은 츄리닝 검은 비니로 어둠에 몸을 숨긴다. 아직 빛이 없어. 온갖 욕설과 쓰잘데기없는 말의 소모만이 가득한 거리에서 그는 빛을 찾으려(혹은 빛이 되려) 노력했지만 닭대가리들(혹은 귀쳐막고 듣는 애새끼들)속에서 그는 절망했다. 어느새 그도 원치않는 차가운 비수같은 랩들을 쏟아냈고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며 오만하고 다른 MC들을 깎아내리는 것을 즐긴다는("실력은 있지만 인간성은 별로")누명을 안겼다.

그러나 힙합에 있어서 자뻑랩은 그냥 하나의 수사가 아닐까? 그 사람의 랩을 그의 인간성과 연결짓는 것은 온당한가? 혹은 랩이나 입소문을 통해서 불확실하게 알게된 그의 인간성은 그의 작업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끼리끼리 친한 MC들끼리 형님아우하면서 놀면 발전이 있을까. 버벌진트는 호전적인 자세로 그런 질문들을 이끌어냈고 한국힙합씬은 활발한 논쟁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졌다(고 VJ는 평가한다.).

부클릿에 나와있듯이 09년 그가 맞이한 두 사람의 죽음(아마 세사림일지도?)은 그에게 무엇인가 말해야겠다는 강력한 동기를 제공해준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 로스쿨진학에 따른 이사와 처지의 변화들은 그의 입을 간지럽혔으리라. 비트메이커 델리보이와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시작한 작업은 누명시즌에서의 은퇴선언을 뒤엎고 정규앨범 <The Good Die Young>을 탄생시켰다.

이번 앨범은 보다 개인적이고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내성적이다. 몇몇 곡들에서는 힙합씬을 언급하고 있지만 1집 <무명>과 2집 <누명>에서 볼 수 있는 결연한 전의와 우월감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런점에서 이 앨범은 두장의 EP들과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 시기와는 달리 한국 힙합씬의 전면에서 싸움을 거친 탓에. 그리고 때이른 죽음들을 본 이후라 훨씬 비관적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길을 찾고 있으며 싸우기보다는 함께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닭대가리, 귀쳐막고 듣는 애새끼들에게 일갈하던 사자에서 자기 주위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제 막 서른이 된 젊은이(누명 마지막곡 제목대로라면 아이겠지만)로 돌아온 듯 하다.

수록곡들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높고(내가 그래서 버벌진트 음반을 산다.)..정말 완전 죽인다 그런 트랙은 모르겠는데 왠지 모든 곡들을 계속 꾸준히 듣고 싶다. 추천트랙을 굳이 꼽자면 신선했던 을지로 5가, 신나는 Yessir, JK의 쩌는 피쳐링이 돋보였던 나쁜 교육, 장엄한 La Strada, 그리고 가장 맘에 들었던 삼박자 2010을 추천한다.

+음..다 좋은데 개인적으로 델리보이핫츄랙~ 이건 좀ㅠㅠ약간 거슬렀다..뭐 집중에 방해되는 건 아니지만서도..조금..


앨범리스트

1. 56 Bars

2. 무간도(無間道) (Feat. 휘성) (Prod. by Verbal Jint& Delly Boy)

3. Inspiration

4. Searchin' (Feat. The Quiett)

5. 을지로 5가 (양고기 찬가)

6. Yessir (Feat. 조현아)

7. Ordinary (Feat. Rimi)

8. Check the Rhime

9. 삼박자 2010

10.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11. Quiz Show (Feat. Lisa)

12. R.E.S.P.E.C.T.

13. Dramas of Life (Feat. Beenzino)

14. 나쁜 교육 (Feat. Tiger JK)

15. La St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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