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하라슈트라 주의 교통요지, 왕년에 아우랑제브황제가 천도하려고 했던 곳, 데칸고원의 핵심!!!아우랑가바드로 향했다. 하지만 뭔가 아우랑가바드라는 엄청난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이름을 딴 그곳의 첫인상은 황량한 지방소도시였다...열차에서 새벽에 내린 관계로 숙소를 잡기 조금 불리한 상황이었고 한시간가량을 우리 일행이 돌다다닌 끝에 들어간 곳이 Tourist's Home. 나중에 생각해보니 뭐 여긴 '그럭저럭'인 것 같다. 아우랑가바드 자체는 숙소상황이나 식당 등등 여행하기엔 힘든 지역이다.

Welcome!

딱 봐도 그렇게 좋지 않다...만 우리 일행은 인천에서 출발한 이후 숙소에서 자본 적이 없으므로 들어가자마자 넉다운...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오후엔 엘로라를 다음날 오전엔 아잔타를 돌아보기로 했다.
여기에서 사소한 문제 발생. 우리의 택시 드라이버가 사실은 인도방랑기 블랙리스트에도 오른 적 있는 비마라는 작자였다는 것. 인도방랑기에서 본 글 제목까지도 기억났는데('비마란 작자를 조심하세요.')왜 그땐 몰랐을까. 아우랑가바드에 방문하는 여행자분들은 정말 비마란 작자를 조심하셔야 합니다....(조금더 상세히 적자면 그렇게 심각한 사기꾼은 아니지만 기름값, 밥값 등등해서 애초에 말한 요금과 다르게 받아먹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짜증날 정도로 난폭운전을 한다는... 처음엔 한국사람들의 추천이 적힌 수첩을 들이대며 매우 잘 해줄 것 같지만 엄청 쪼잔한 아저씨...마하라슈트라 주 관광청에서 하는 관광상품을 이용할 것을 적극 추천함.)
여튼 우리의 아우랑가바드 여행은 비마라는 소심한 사기꾼 아저씨, 그리고 데칸의 무지막지한 더위와 먼지 속에 함께 하는 것이 되어서 그렇게 좋은 기억만으로는 남지 않게 되었다.

첫날 방문한 엘로라는 인도에서의 종교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유적이었다. 브라만에서 불교로, 불교에서 다시 힌두교로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만 너무 더웠다 ㅠㅠ 이하 엘로라 사진.

데칸.




코끼리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을까.

오래된 연인들.














불교 사원형석의 유적.











유적을 돌아다니다가, 유적사진을 찍다가 지쳐 사람들을 찍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인도에서의 사진찍는 방향을 사람쪽으로 설정했다. 한낮의 엘로라는 너무 더워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약간 이른 시간에 돌아오던 중 아우랑가바드 북단에 있는 다울라다바드라는 성을 관람하고 가기로 한다. 다울라다바드때는 조금 시원해서 그랬을까, 약간은 더 편한 마음으로 성을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과거 델리의 약간 또라이 술탄이 이곳으로 천도를 결심하고(비방문이 붙었다는 이유로)델리의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올 계획이었다던 조금 회괴한 역사의 현장이었지만 성 자체는 상당히 웅장하고 볼만한 성이다. 성은 바위를 뚫고 아주 견고하게 지어져 있는데 그건 폭군이 백성을 얼마나 두려워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하 다울라다바드.




깊은 해자.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사진을 허락해준 남매들.
절대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다. 인도에선 친한 남자친구는 손을 잡는다!


멋쟁이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친히 떠온 약수를 마시게 해준 가족들. 덕분에 로컬워터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정도는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해보이던 연인들. 어설프지만 Be Happy!를 외쳐주었다.;;;




돌아오니 아우랑가바드의 해는 저물었다. 밤엔.....할일이 없었다 ㅡㅡ;;;;

이윽고 아침. 새벽부터 들이대는 비마의 모닝콜에 우리는 무거운 잠을 깼다.
아잔타에서 상당히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대부분 개인적 관심에 의한 유적사진이기때문에
여기선 최소한으로 올리고자 한다.
(유적은 좋지만 사진 촬영 여건이 좋지 않아 그닥 좋은 사진을 남겨오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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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뉴욕....이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내게 많은 인식을 미치고 있었을까. 실은 인도에 대한 인상조차도 BRICs라는 '요즘 좀 잘 나가는 나라들'의 한 부분으로 아주 피상적이었음을 뭄바이에서 깨닫게 된다. 그 뒤로 인도에서 어떤 산업이나 발전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린 것 같다. 나는 지극히 한국적으로 개발중인 한국의 신도시나 상하이를 생각한 게 분명했다. 처음 뭄바이의 인상은 실망 그 자체였다. 습하고 무더운 공기, 우중충한 조명, 더러운 화장실, 요상한 물맛, 몸을 뉘기에는 빡센 벤치, 익히 들어오던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 뭄바이 국제공항은 긴 여행에 지친 우리앞에 이제 여행은 시작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가이드북에서도 백방 말리고 있었고 우리 일행도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정말 나가시면 안 됩니다.) 결국 우리는 공항에서 하룻밤을 청했다. 음, 실은 나는 그때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귀마개와 눈가리개를 사용해서 아주 잘 잤다ㅡㅡ;;인도도 밤12시에서 새벽5시 사이에(10시부턴가;) 할증이 있기 때문에 할증이 끝나고 5시 반쯤에야 우리는 이동하기 시작했다. 150루피짜리 프리페이드를 끊고 뭔가 어리버리 밖으로 나오니 꾸리꾸리한, 우리들의 짐을 싣고나니 차가 안 나갈 것만 같던 고물 엠배서더 택시들이 주차장에 가득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우리에게 뭔가 호객을 시도하던 기사들의 끈질김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나라를 다닐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다.
여차여차해서 택시는 공항을 나왔고, 우리는 인도의 쾌쾌한 새벽공기를 맡으며 길을 나섰다. 길에는 뭔가 천더미들이 널려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은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
*
*
우리가 처음 목적지로 삼은 뭄바이 CST역. 빅토리아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멋진 건물이다. 실로 뭄바이가 그런 건물들로 가득차있다. 그때는 몰랐지 뭄바이가 그렇게 깨끗하고 멋진 도시라는 것을. 뭄바이에 처음 도착해서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삼은 아우랑가바드에 가는 표를 구하고자 했다만 시간이 너무 일러 창구가 열려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정말 엄청난 호객행위들.(*뭄바이 CST역에서 외국인 창구는 2층 한구석에 있고 오전 8시 이후에 오픈합니다.) 우리는 짐을 클락오피스에 맡기고 잠깐 아침을 먹은 뒤 표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여기가 바로 외국인 전용창구!
*
*
*
뭄바이의 아침.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무 곳에서나 노숙하고 있다. 날이 밝아와도.......
나는 자는 노숙소년에게 물을 끼얹는 장면을 목격하고 굉장히 기겁했다.
또한 아무렇게나 무단횡단을 하는 장면(실은 인도에서 신호를 지킨다는 것 자체가 상식이 아닌 것 같다.),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그러나 나 역시 나중에는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렸다는 사실, 반성한다),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던 갖가지 구걸행위들(애들은 물론이요, 갓난애 안은 소녀들, 노인들, 기타등등..),
그리고 길거리의 즘생들.
인도에서의 쇼킹했던 장면들은 모두 뭄바이에서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우리는 표를 구하고 아우랑가바드로 떠나는 열차시간인 11시까지 뭄바이를 돌아다니기로 결정했다. 이하는 돌아다닌 사진들.


*
등을 밟는 건지 죽이는 중인지..
잡담중인 아저씨들.
실은 그냥 일반생활에서도 미간에 빨간 점을 찍는다는 거, 우리 사회에선 불가능한 일 아닌가.
인도에서는 개들 등쌀에 찾아보기 힘든 고양이.





굴지의 타타그룹.
플로라.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뭄바이 국철. 실은 모든 역들은 테러위협때문에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열차로 오늘 팔 생선들을 나르는 아줌마들. 인도의 아주머니들은 대개 강인하시다..,.
*
세계 최대의 빨래터 도비가트. 실은 이렇게 빨래터에서 빨래만 전문적으로 하는 카스트가 현존한다는 것이 인도에서만 가능한 일 아닐까.
나는 이렇게 적었다.
"인도의 시내 철도를 이용하여 '도비 가트'를 다녀왔다. 잠시 봤지만 뒤이어 들이닥친 유럽 방문객들 때문에 약간은 슬퍼졌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그들은 같은 슬픔을 느낄까. 사진기를 들이댔을 때 그들의 비참한 지위를 이용해 내게 구걸을 시도한 도비가트의 아이들 때문에 더더욱 슬퍼졌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철도에서 만난 7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가 갓난 아이를 업고 있었다;)에게 동전대신 덥썩 연필 두 자루를 쥐어주었다. 그 아이는 이게 뭔가 하는 표정으로 내게 설명을 요구했고 나는 이것이 무언가를 적는데 사용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그리고 헛되보이는 꿈을 그려주었다.)


에어컨 빵빵한 버스에서 세계최대의 빈민가를 바라보는 유럽인들....
사진을 찍자마자 돈을 요구했던 아이들. 얘네들은 나중에 뭐가 될까.
렌즈를 넘어 나를 찌르는 눈빛들. 어떻게 이런 눈빛들이 가능할까.

세계적인 인기.



아무데서나 잘 잔다. 정말.

콜로니얼 양식.
나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영국의 영화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곳."

콜라바에 있는 타워호텔.
인도문, 철없는 필자. 이때만 해도...때깔이 좋았다.ㅋㅋ
"인도문을 관람. 처음 보는 아라비아해. 물이 그리 맑진 않다."
타즈마할 호텔.
처음 바라본 아라비아해에서. 우리 일행분들도!
손주를 안고 계시던 할아버지.

꼴라바의 '까페 Leopold'에서 처음 마신 인도맥주. 낮술을 먹고 흔들렸나보다. 이게 가장 싼 맥주였는데 무려 185루피였다. 다른 캔맥들은 350ml들이 캔 하나에 300루피를 넘었다. 네명에서 점심을 먹고 2500루피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뭄바이의 물가는 확실히 인도에서도 손가락에 드는 듯 싶다. 뭄바이에서 뭐 먹지 마세요
낮잠을 주무시는 할머니들의 발을 몰래.
붐비는 크로포드 마켓. 생각해보면 꽤 훌륭한 시장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산 질좋은 100루피짜리 셔츠는 여행 끝날 때까지 잘 쓸 수 있었고 그런 물건을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었다. 뭐 악세사리는 어차피 나중에 티베탄 마켓이 있는 곳에 들러 산다고 하더라도 여행 초기에 사용할 의류를 구매하는 것에 있어선 뭄바이의 크로포드 마켓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뭄바이의 맥도날드. 맥도날드가 인도에서는 홈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점원이나 손님이나 영어만 쓴다. 하지만...도통 햄버거의 맛은...소고기도 없고 돼지고기도 없고...인도에서 여행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치킨버거가 중간은 한다는 의견인 것 같다. 나는 멋도 모르고 마하라자 뭐시기 버거를 샀다가 남기고 말았다. 정말 햄버거를 좋아해서 남기는 적이 별로 없었는데...
*
*
다시 뭄바이 CST역.
그야말로 빠글빠글하다. 아무데서나 잘 눕고 아무데서나 잘 이야기하고 아무하고나 잘 웃는 사람들.
그땐 정말 덥고 사람들 적응이 안 되어서 힘들었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뭄바이는 참 멋진 곳이었다. 단 한나절만 놀고 와서 좋은 기억만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인도의 대도시들은 정말 힘들기만 할 뿐이었고 뭄바이처럼 고풍스럽고 멋지고 깨끗한 대도시는 본 기억이 없다. 아마 미련이 남아서겠지만....
첫날 나는 이렇게 적었다.
"마음이 괴로운 내게 인도는 웃음을 주었다. 어이없게도 귀지로 내게 사기를 치려 했던 엉터리 사기꾼, 앉아서 수다를 떨던 할머니들, 호객꾼들, 말도 안 되게 이쁜 길들, 바람, 인정, 그 찌를듯한 눈빛들, 요상한 당당함, 묘한 향기. 이 땅을 사랑하게 될까?"
아마 그 때 나는 벌써 사랑에 빠지고 있었나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아우랑가바드행 SL열차를 탔다.


사실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베이징에 단체관광을 갔던 것을 빼면 해외에는, 특히 배낭여행은 내게 처음인지라
짐을 쌀 때 얼마나 고민되었던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중요한 짐은 놓고 오고 쓸데없는 짐들만 너무 많았던 것 같아. 여행떠날때 짐을 뭐뭐 쌌나 찍어둘라고 했는데 급하게 부랴부랴 나오는 바람에 생략.

타이항공 항공권. 아시아나항공과 맺은 협정으로 한국에서의 항공권업무는 아시아나가 대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방콕을 경유해서 가기 때문에 티켓이 두장.

생각해보면 참 좋은 비행기였다.
여러가지 모드를 고를 수 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바타부터 시작해서 도착할 때까지 스트레이트로 영화만 질렀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이것저것 모드를 고르다 그냥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내 모자, mp3. 지금은 완전 구겨져서 방랑자의 모자로 전락했지만 이때만 해도 태가 살아있었다.
mp3는 여행을 위해 범용 전지를 사용하는 아이리버 옛날 mp3로 가져갔다.

*
"..막 대만을 지나 비행기는 다시 망망대해로 들어섰다. 에메랄드빛의 선명한 바다. 눈꺼풀이 움찔움찔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내오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방콕까지 한시간 반. 고도 10368m, 830km/h, 바깥온도는 영하 42도씨, 100km/h로 불어오는 바람을 헤어나가고 있다."
하늘, 기내식. 여행 초반부엔 의욕이 너무 강해서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했더랬다. 방콕가는 기편에는 무려 비빔밥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과감하게 탄투르치킨으로 결정....결국 남겼다. 그러나 인도에 들어가자마자 이때의 기내식이 얼마나 훌륭한 식사였는지 내내 생각하게 된다.

방콕공항.
상당히 넓고 많은 쇼핑가가 있다. 아래로는 방콕공항의 풍경.

처음으로 본 인도인.
지금 생각해보니 방콕공항에서 본 인도사람들, 굉장히 깔끔하다.
*
열심히 일하는 태국여자분.


그땐 몰랐는데...인도인이다.
귀여운 타이꼬마.
천상 인도인.
이분도 천상 인도인..
뭄바이행 비행기를 탔던 게이트.
1시간이었나, 2시간을 연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게이트로 들어서는 순간 강렬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냄새. 내가 계속 '인도냄새'라고 기억하고 있는 강렬한 향이 게이트 전체에서 뿜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 내가 정말 인도로 가고 있구나, 실감했다. 인도인에 대한 첫인상을 그때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태국인들보다 자신감있고 개성있다. 키가 크고 피부색과 수염 모두 짙다. 그리고 코가 길다......."
이땐 인도인들에 대해서 코딱지만큼도 몰랐다. 내가 자신감, 개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실체와 직접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놀라움. 난 그때까지도 한국에서 뻗어나간 어느 길의 연장에 서있었던 셈이다. 그 길이 아주 다른 세상으로 향한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인도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인도인들이 왁자지껄 술파티를 벌이던 뭄바이행 비행기에서조차도 나는 내가 어느 세계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지 못했다. 그 세계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내게 그 거대한 실체의 작은 조각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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