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해방을 향한 추동력을 가지고 지금 진행되고 있으며, 그리하여 지위와 계급을 넘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개인들과 집단들을 자기 자신의 개성적인 사회적 및 정치적 사태에 댛 자기의식적인 주체로서 단결시키는 개인주의화(다른 저서에서는 자기화로도 나와있는?) 과정의 주장과 약속을 출발점으로 택할 수 있을까? 아니면 바로 그 과정의 결과로 사회적 및 정치적 행동의 최후의 보루가 없어지게 될까? 그렇다면 개인주의화된 사회는 갈등과 드러나지 않는 병세로 분열되어 실제로 아무것도 마지 않는, 심지어 새롭고 음험한 근대화된 야만주의조차도 막지 않는 정치적 무관심과 같은 것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제도적 종속성을 통해 개인주의화된 사회는 동시에 전통적인 (계급) 경계들으 가로질러 모든 종류의 갈등과 속박과 연합에 취약하게 된다. 노동시장 양편의 적대감은 한정된 대비로 그 중요성이 줄어들며, 사적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억압된 사회성들이 그 중심에 자리 잡는다. 뒷뜰 가까이에 건설되는 고속도로, 학교부지 선정의 악화, 부근에 건설되고 있어서 '집합적 운명'을 뚜렷이 의식하게 하는 핵폐기물 처분장과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제도적으로 형성된 집합적 운명이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맥락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어떻게 인식되고 취급되는가이다. 이것을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계급의식의 오목거울이 부숴지지만 산산조각나지는 않고, 작은 틈과 균열이 무수히 많이 있는 거울의 표면이 통일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없을지라도 각 조각은 자체적인 총체적 상을 만들어 낸다고 말할 수 있다. 반복해서 몰아쳐 오는 개인주의화의 격랑을 통해 사람들이 사회적 속박에서 풀려나고 사유화되면서 이중의 효과가 나타난다. 한편에서 인식형태들이 사적(私的)으로 되는 동시에 시간축을 따라 인식할 수 있는 것이지만 비역사적으로 된다. 아이들은 조부모는 물론이고 더 이상 부모의 생활맥락조차 모른다. 말하자면 결국에 역사가 (영원한) 현재로 오그라들 때까지 인식의 시간적 지평이 점점 더 협소해지고, 모든 것이 자신의 개인적 자아와 삶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된다. 다른 한편 공동으로 조직된 행동이 개인적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들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제약요인들이, 정확히 말해서 또다시 새로운 제도적 조건의 생산물인 영역들이 늘어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주의화는 각자의 생애가 기존의 결정요인들에서 벗어나서 그 또는 그녀 자신의 손으로 결정됨을 의미한다. 근본적으로 각자가 결정할 수 없는 생활기회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으며, 각자가 결정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결정해야만 하는 생애의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 생활상황과 과정의 개인주의화는 이리하여 생애가 자기성찰적으로 됨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으로 규정된 생애가 자가생산되고 계속해서 생산되는 생애로 변형된다.…"


울리히 벡<위험사회> 中 

랑랑을 보면 나는 야심있게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중국인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마윈이나 레이쥔이나 뭐 이런 사람들 … 랑랑은 슈퍼스타다. 물론 랑랑의 실력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는 없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며, 슈퍼스타다. 그리고 기왕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음반시장인 미국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슈퍼스타다. 자꾸 이렇게 반복하는건, 랑랑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클래식 피아니스트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앨범을 통해 지향하는 바도 아닌 것 같고. 

 이 앨범은 뉴욕을 무대로 한 미국음악들을 새로이 편곡한다. "쭝궈-천조국 관광의 해"를 맞이해 NYC의 관광홍보대사로 임명된 정치적인 맥락이 있기도 하고, 랑랑도 뉴욕에 반했다고. 랑랑은 이 앨범에서 거쉬인에서부터 알리샤 키스까지, 웨스트사이드스토리부터 스파이더맨까지, 다채로운 뉴욕의 음악적 풍경을 그려낸다.  
 이 앨범의 매력은 고전과 현대작들을 잘 버무려서 뉴욕의 정취를 그려냈다는 점이겠지만, 어마무시한 미국의 뮤지션들이 함께 했다는 점에서 들어볼 가치가 있다. 피쳐링 뮤지션들 기준이 그래미상 수상이라고 봐도 좋다. 허비 핸콕(!), 제이슨 이즈벨, 캔디스 스프링스, 매들린 페이루, 리사 피셔처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핫했던 뮤지션들이 랑랑의 뉴욕 관광을 돕는다. 씨에씨에~ 좋다해~

쓰다보니, 난 랑랑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이 앨범은 트렌디한 재미로 가득차있고 재밌는 앨범이다. 8-9번 트랙 Tonight(From 'West Side Story')과 Moon River(From 'Breakfast at Tiffany's)에서 숨가쁘게 달리다가 문 리버의 아련함을 그려내는 광경도 참 좋다(매들린 페이루가 요즘 너무 좋기도 하고!!). 그러나 알리샤 키스의 곡은 편곡은 좋지만 뭔가 새로운 재해석이 있나 싶고, 거쉬인의 곡은 파나소닉렌즈들에서 라이카렌즈향나듯이 허비 핸콕향이 아주 쪼오금~ 들어가있는 것 같다. 허비 핸콕과 랑랑의 인연이야 유명하지만, 정말 허비 핸콕이 이 연주에 들어가있냐고 묻는다면 정말 잘 모르겠단 말이지. 그렇다고 랑랑이 재지한 피아니스트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잘 모르겠고…

그러나 랑랑은 될놈될이다. 허비 핸콕과 손을 잡았기 때문에, 또 저렇게 정치권에서도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그리고 본인도 능력있고 야심이 꽤나 있기 때문에 잘 될 거야 아마… 앨범은 좋은데 자꾸 랑랑에 대한 르상티망과 선입견이 내 청취를 방해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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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2-3년 전에, 줄기차게 다니던 카페가 있었다. 취향이라고 해야하나,  내가 가고 싶은 카페는 우선 사람이 많지 않고, 채광이 좋아야하며, 적절한 커피값에 커피맛도 좋아야 한다. 커피 리필까지 있으면 금상 첨화.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카페 주인들이 싫어할 손놈 스타일이지만, 카페에서 혼자 죽치고 책보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그 땐, 이 까페의 이름이 달랐다. Cafe Gusto. 아마 안산에서 카페질 좀 해본 사람이라면 알 이름이리라. 신도시에선 꽤나 오래된 카페였고, 또 많이들 가는 까페였으니까. 여름과 겨울,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다니던 카페였지만, 이사를 하고 또 카페질할 시간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다니지 못했는데 어느날 지나가다보니 카페 이름이 바뀌어 있더라. 쫄보인지라 간판이 바뀐 카페에 들어가지 못 하고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이 있다. 


바뀐 이름은 fall black. 오랜만에 들어가보니 내부 인테리어는 바뀌었지만 아주 많이 바뀌진 않았다. 채광을 좋게 해주지만 겨울에는 추위의 원인이 되는 유리 창문도 변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없었는데, 가운데 이런 장이 생겼더라.

바는 모양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게 반갑고 안심이 된 점은 커피맛이 동일하다는 점이었다. 메뉴를 보니 드립메뉴도 많이 생겼고. 아마  사장님은 같은데, 내부공사를 하고 체인점을 벗어나시는 식으로 리뉴얼하지 않았을까. 



많은 것이 바뀌어가는 계절이다. 
변해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요즘 변하지 않는 것들에 마음을 두고 싶다. 커피맛이 변하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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