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합의적인 논의, 즉 진리 탐구를 위해 바쳐진 모든 논의는 원리들, 사실상 윤리적인 원리들에 기초하고 있다. 나는 그것들 중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1. 오류가능성의 원리. 아마 내가 틀렸고 어쩌면 당신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모두 틀릴 수 있다.
2. 합리적 논의의 원리. 우리는 비판적으로 그리고 물론 논쟁 중에 있는 다양한(비판할 수 있는) 이론들을 가능한 한 개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시험할 필요가 있다. 
3. 진리 근접성의 원리. 우리는 거의 언제나 그런 비판적 논의들의 도움으로 진리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거의 항상 합의에 도달하지 않는 경우들에서도 우리의 이해를 개선할 수 있다.

이 세 원리들은 인식론적이며 동시에 또한 윤리적 원리들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여타의 다른 것들 중에서 이것들은 관용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너한테서 배울 수 있다면, 그리고 만약 내가 배우고자 한다면, 그러면 진리를 위해 나는 당신을 관대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당신을 가능한 동등한 자로 여길 것이다. 인류의 잠재적 통합이나 모든 인간의 잠재적 평등은 우리가 기꺼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선결조건들이다. 우리가 어떤 토론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원리는 더욱 중요하며, 심지어 그 논의가 합의에 이르지 않을 때라도 그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논의는 우리의 몇 가지 오류들에 대해 빛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크세노파네스:그의 위대함을 확립하기 위한 시도>, 칼 포퍼

한참 벡이나 바우만을 읽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도서관에서 칼 포퍼를 빌렸다. 안산 중도에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조차도 없어서 주문했는데 의외로 『파르메니데스의 세계』가 있어서 빌릴 수 있었다. 이 책에서 포퍼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그리스 과학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위대했는지 감동적인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포퍼가 봤을 때 밀레토스 학파의 과학자들, 그리고 파르메니데스에 이르는 그리스 과학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의 발견을 예견하고, 그 방향을 선결하고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관찰과 이론의 선후관계에서 당대의 경험주의자들은(물론 후기경험주의는 전혀 다르지만) 귀납적인 과정을 통해 이론이 성립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포퍼의 생각은 그것과는 달랐다. 포퍼는 사고(그러므로 전적으로 철학적이면서도, 삶과 유리되지 않은)를 통해 연역된 가설은 틀릴 수도 있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을 비판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진리에 다가가는 그 과정이 과학이라 생각했다. 그리스 과학자들이 위대했던 점은 “제자들에게 비판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학설의 대담한 변화가 금지되지 않는” 합리적인 전통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포퍼에게 있어서 과학은 단순히 실증적인 도구라거나 게임(후기 경험주의에서의)이 아니라 합리적인 전통 그 자체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