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화횽..젊다..)
(증말?)

많은 사람들이 환장한 천장지구를 보다.

 두기봉의 영화는 대체로 홍콩 느와르의 주요한 법칙들을 따라가다가 비극적인 말로를 통해 홍콩 느와르가 이상화하는 그 무엇, 남성, 의리, 이상화된 사랑 등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데(흑사회를 생각해보라.) 천장지구에서 역시 홍콩느와르의 전형적인 사랑공식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경우와는 달리 이것이 웃기다거나 병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랑의 시작은 분명 홍콩 느와르가 보여주는 남자의 꿈같은 시작이다. 세상에 누가 인질로 끌고간 여성 앞에서 그렇게 멋진 모습을 보이며 거기에 뿅 가는 여성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이건 당대에 관객들이 정말 진지하게 류덕화의 모습에 환장했다는 가정하에 쓰는 말이지만 이 영화의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봤을 때는 장르 안에서 그렇게 독창성있는 모습은 아니다. 또한 그 가정을 제거하고 요새 관객들의 눈높이에서 이 사랑을 바라보더라도 이 사랑이 말도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화와 조조의 사랑은 뻔하지만 사랑의 한 단면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냥 나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랑을 '미친'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사랑이란 말은 이미 어떤 사람에게 미친 하나의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즉 광기는 사랑 안에 내재되어 있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어리석지만 당사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성적인 사랑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조조가 아화는 그냥 건달이고 쓰레기라고 멸시했다면(이게 현실에 더 가깝겠지만) 이 영화의 사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화가 요새 사람들 하듯이 그냥 부자집 아가씨 삥뜯어먹고 튀었다면? 이 영화의 사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사랑이 주는 감동은 우리가 사랑의 미친 모습에 환장하는 것에서부터 온다. 

 그러니...나도 천장지구를 보고 환장한 것이다. 마지막에 조조 몰래 죽음을 향해 사라진 류덕화의 모습은..ㅠㅠ(근데 조조는 류덕화가 튀는 걸 듣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기도한건가?) 그리고 오...오천련...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각설하고 난 아직도 고민중이다. 언제까지 손해보는 사랑을 할 것인가. 언제 나는 정신차릴까. 요새는 체념의 단계를 넘어서 영화들을 통해 그것을 납득하는 듯 싶다. 난 아직도 사랑에 미쳐있고, 계속 미쳐있고 싶은가 보다.

덥고 찌는 여름밤. 내 방 컴퓨터는 부모님이 잡고 있고 나는 얼마 전부터 매일밤 쿡TV로 영화를 보고 있다.
유료컨텐츠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들이 쿡TV 서비스에는 즐비하다.
내가 주로 보는 영화는 액션이나 SF, 공포, 스릴러같이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로맨스나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 장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보고 나면 너무 깊히 그 영화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눈물은 기본이고 몇년동안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내가 본 로맨스는 매우 적은데 그 로맨스 하나하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좋은데 너무 부담된다고나 할까.

그러던 차에 볼 영화를 고르다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월광보합을 보게 되었다.
중학교 땐가 어찌어찌해서 본 것 같은데 그게 선리기연이랑 한 세트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나보다.
월광보합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참 두근거렸던 기억은 있는데 그 후속을 찾아보기엔 그 당시 영화에 대한 나의 관심이 적었나보다. 여튼 오랜만에 본 월광보합은 처음 봤을 때보단 두근대지 않았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부분에 나오는 히로인 주인에 대해서 왜 어렸을 때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말로 이쁘다. 왜 그땐 몰랐을까 ㅡㅡ;;

선리기연은 손오공의 선택에 대한 영화이다. 원작 서유기 역시도 제천대성 손오공이 마음잡고 불법을 구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는 게 주된 스토리라고 봤을 때 캐릭터나 에피소드에 대한 해석은 차치하고 선리기연 역시도 서유기의 큰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유기에서도 손오공은 삼장법사를 떠났다 다시 돌아왔다를 반복하면서 스스로의 힘과 의지를 선한 방향으로 돌리며 불법에 귀의하게 되니까.

그러나 이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와는 별개로 이 영화의 강점은 소설의 결말인 불법에의 귀의가 아닌 손오공이 어쩔 없이 포기한 다른 '선택지'에 있다. 월광보합에 보면 오맹달의 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불로장생하는 것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더 좋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오맹달의 아이를 낳은 요괴는 결국 삼장법사와 불로장생의 꿈을 버리고 인간의 정, 사랑을 택한다. 선리기연에서 주인이 분한 자하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그 운명의 주인공인 주성치는 사랑을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이다. 게다가 얄궂게도 주성치는 애초에 다른 사랑을 살리기 위해 과거로 왔으니 애초에 자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자하의 모습이 참 예뻐보이면서도 너무나 슬퍼보이는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하의 말마따나 '불나방'처럼 불 속에라도 뛰어드는 게 사랑의 한 단면 아닐까.

그리고 사랑을 놓친 주성치. 만약 주성치가 처음 자하의 마음을 받아주었다면 주성치는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월광보합을 조금 더 빨리 사용했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갔더라면 백정정을 살려낼 수 있었을까.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로맨스이야기는 항상 과거에 대한 가정을 동반한 '후회'를 주된 감정으로 삼고 있다. 만약 로미오가 조금 만 더 빨리 깼으면. 만약 내가 그때 조금 더 생각했더라면 등등......이 영화에서 지존보의 주된 후회는 자하의 진실된 사랑을 자신 역시도 받아들이고 있음을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미처 몰랐는데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 "사랑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화마냥 너무나 짧다.

500년 후 인간으로 환생한 주성치에게 빙의해서 화끈하게 "사랑해."라고 말하고 객쩍어하는 손오공의 모습은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만약 그 기한을 정해야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마치 이 대사에 화답하는 듯 싶다. 만약 나도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17년 1월에 다시 보고)

주인의 상큼한 모습을 조금 더 추가한다. 

후아...



*

첨 나타나 여기 산은 내꺼라고 하는 모습에 홀딱 반한 분들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


*


*



*


*

*

막문위님도 넘나 귀여웠던 것



우린 서로 많이 다르다. 생긴 것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다르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다르고 그동안 살아온 삶 역시 달라서 그것을 받아들이기란 참 힘이 든 일이다. 이해라는 말은 참으로 어려운 거다.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남자가 좋다고 일지감찌 떠나버린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굳이 당신이 좋아하고 이해하진 않아도 미워하고 배척하지는 말아달라고. 아버지 히미코는 이제는 모든 것을 돌리고 이해받기에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알지만 같은 입장에서 딸 사오리를 좋아하고 보고싶은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을 안다. '그게 뭐야.'라고 말해도 정은 정인걸.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어도 받아주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