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 (8.29)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연루의혹이 제기되어온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사퇴의사를 밝혔다.
장관 지명자와는 달리 총리 지명자는 보고서채택에 이은 국회의 동의가 필수적이므로 후보자가 여야의 동시적인 반대를 받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오죽하면 김태호는 버리는 카드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을까. 어쨌든 사퇴하는 김태호 후보자의 마음이야 착잡하겠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억울하다는 사퇴의 변은 향후의 정국과 자신을 선택한 대통령, 그리고 본인의 추후 거취에도 썩 좋은 발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백번 사죄해도 모자른 판인데.

이번 청문회의 테마는 '죄송합니다 청문회'라고 하더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국민들에게 염증을 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도덕성을 문제삼아 집권한 386엘리트들이 그들의 단언과는 달리 기존 세력과 도덕적으로 차별화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많은 후보자들이 낙마했다. 그러나 대선의 포커스가 서민경제에 맞춰진 상황에서 당선된 이명박 정권은 실용을 기치로 내걸며 '도덕성'마저 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국민들이 경제적 실적만 좋으면 다 용인할 수 있는 것처럼. 무엇이 이번 정권의 실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정권에 대한 제언을 한가지 하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도덕성은 하나의 기본적인 조건과도 같다. 혹자는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도덕적인 문제 앞에서 쿨한 유럽정치를 기준으로 한국정치가, 그리고 한국 국민들이 지나치게 쓸데없는 문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하지만(필자도 이런 마음이 없지는 않다) 그건 정치공간 자체를 지나치게 서구화된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한국적인 조건에서 탄생했다. 뭐 굳이 유교적인 전통을 꼽지 않더라도 과거 국민들이 독재정권들을 미워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정권의 도덕성결여였다. 박정희정권 하에서 일어났던 많은 파동들을 보면 하나같이 엘리트들의 비리에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그 시기에 정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국제적인 냉전구도의 최전방에 서서 강력한 라이벌과 총칼을 맞대고 있었다는 총체적인 위기적인 상황 속에서 국민들은 그들을 강력하게 이끌 정권과 하나의 동의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정권이 그것과 유사한 구도를 이끌어 나가려고 했지만 상황이 냉전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뿐 더러 지도자의 카리스마 역시 박정희와 비교할 수 없다.

즉 정권은 도덕성이라는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에서 인선한 인사들이 적어도 무능하진 않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 인사들이 유능하다고 쳐도 그들의 지위와 부를 이용해서 저지른 행위들을 국민들이 용서하리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고위층들의 윤리문제를 짚고 넘어가기엔 너무 주제가 크고 사태에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이번 청문회 정국의 책임은 국민들의 정치관과 한국정치의 기본적인 전제를 무시한 청와대에 있다.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고전을 왜 읽는가?  (0) 2011.04.01
goclassic사이트의 흥미로운 논쟁.  (0) 2010.10.31
나는 당신의 젊음에 찬사를 보낸다.  (0) 2010.03.11
3.1  (0) 2010.03.01
10.29헌법 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소고  (0) 2009.10.30


이 청년이 '결국에' 어떻게 될 지는 두고봐야겠지만.
일단 나는 당신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goclassic사이트의 흥미로운 논쟁.  (0) 2010.10.31
청문회 정국을 바라보며  (0) 2010.08.29
3.1  (0) 2010.03.01
10.29헌법 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소고  (0) 2009.10.30
목숨보다 값진 것?  (0) 2009.10.04

나는 오늘 하루가 시간상으로 어제와 분리되는 시점에 당신의 도시에 있었다.
은희경 소설 말미에 나오는 것처럼, 혹은 김승옥이 무진을 떠나면서 느낀 것처럼
나는 당신과의 거리를 쟀다. 몇km의 거리가 쉬이 지나갔고 나는 그 '멀어짐'을 느끼기 위해 엑셀을 때려밟았고
곱게곱게 안산시내를 돌아다니던 작은 모닝은 거친 숨을 쥐어짰다.
모닝이라, 실로 밤에 사랑의 상처에 빠진 남자와는 굉장히 안 어울리는 차종아닌가.

집에 와서는 스러져서 잠이 들었다. 한 12시까지 잠들려고 했는데 아침이 되자 동생이 잠을 깨웠다.
그렇군, 집에 오랜만에 왔으니 몇가지 의무가 나에게 넘어온 셈이다.
군말없이 일어나서 동생을 알바하는 곳에 태워주고 돌아온다.
동생을 내려주고 93.1을 듣는다.
마침 나온 음악이 스메타나, "나의 조국"-몰다우.
나는 그제서야 오늘이 3.1절임을 깨닫는다.


어렸을 적엔 3.1절은 신성한 의미를 지녔었다.
그땐 민주화 세력이나 권위주의 세력이나 모두 민족을 등에 업으려 했기 때문에
독립운동의 신성한 권위, 대한민국의 뿌리라는 사실은 의심받지 않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요새는 한 정권, 한 시대의 정당성을 단지 '능률'과 '돈'이라는 측면에서 판단하려는 경향이 고개들고 있어서
식민시대의 경제개발이 수치상으로 어쩌니,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건국했느니(차라리 미국이 건국했다고 하지),
뭐 그딴 얘기를 하면서 한국민족을 현재의 기득권에 길들이고 짜맞추려고 하는 것 같아 조금 슬프다.
나는 민족의 실체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는 입장이지만 그만큼 민족의 개념은 노력하면 어떤 의미로든,
악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과 역사적으로 입증된 실례가 있기 때문에
뉴라이트들, 그리고 그에 부화뇌동하는 몇몇 짭퉁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그들 뒤의 부끄러운 무리들의
시도가 미치는 해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공화국에 필요한 것은 굴종과 순응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이다.
그네들의 시도는 당장 그들의 이익에 부합할 지 몰라도 장기적인 시점에선 이 공화국의 미래를 망쳐버릴 것이다.

1919년 3월 1일은 엘리트들과 대중들의 차이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엘리트들이 이상을 외치며 아주 현실적으로 발을 뺀 것에 비해, 그리고 아주 쉽게 포기한 것에 비해
대중은 그 힘이 일제에 의해 소진되어버릴 때까지 당당히 맞서 싸웠다.
일제가 강압적인 통치의 한계를 느끼고 정치엘리트들을 구워삶을 계획을 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우리 엘리트들은 비겁했지만 우리 민초들은 역사 앞에 당당하다.
그래서 33인의 선언자들이 3.1절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 학생운동가였던, 작은 여학생이었던 유관순 열사가 3.1절은 대표하는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집시법 위반자가 아니라, 불순분자가 아니라 3.1절의 아이콘인 셈이다.

최근 3.1절과 유관순 열사를 역사책에서 축소 혹은 삭제하려 한다는 보도를 접하고
심히 우려가 들어 남기는 글이다.


나는 아직 많이 문약하고
그저 스메타나, 시벨리우스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야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