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컷의 몰락.
(스포가 약간 있는 듯 합니다만 공개된 시놉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규남(김규남)의 주인 원영(최명수)은 한 동물집단의 왕이다. 그는 강하고 거침없다. 그는 폭력을 통해 주위사람에게 군림하고 정부와 섹스를 즐긴다. 이 동물집단의 우두머리가 즐기는 것은 지배욕과 성욕인 셈이다. 아니, 이 문장은 동물집단과 인간집단의 경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시각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을 찾습니다>에서 인간집단의 면모는 동물집단과 다를바 없다. 이 집단을 유지하는 것은 우두머리의 폭력과 야성이고 그는 욕구를 해소하는 동시에 그 구성원들을 물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부양한다.

피학의 대상인 규남이 보이는 면모는 이 도식에 딱 들어맞는다. 사실관계를 다소 건조하게 적자면 '악덕업주 원영은 정신지체자인 규남을 학대한다.'지만 규남과 원영의 관계는 원영이 악하고 규남이 피해자다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영화의 결말까지 규남은 원영에게 관심받고 싶어하고 특히 그의 충견으로써 인정받고 싶어한다. 점점 규남은 포악해지지만 사람을 둘씩이나 죽이고도 원영의 분노에 그저 낑낑댈 뿐이다. 규남이 점점 강해지는 것은 그 주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함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원영은 규남에게 강해지는 법을 전수(?)하는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규남은 원영이 시키는대로 충실히 그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원영의 정부인 인애(김기연)는 원영의 성욕을 감당하는 존재이다. 인애는 내심 원영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원영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생각하지만 원영이 인애를 만나는 목적은 오직 성욕의 해소이기 때문에 점점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원영의 삶은 영화 속에서 세가지 측면에서 변화한다. 우선 영화의 결말을 가져오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규남의 변화이다. 원영은 알게모르게 규남에게 계속 강해질 것을 주문하고 규남은 애완견을 사냥하는 것에서부터 인간을 사냥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인애의 변화. 인애는 탈출구가 보이지않는 삶에서 뭔가 부조리를 느끼고 그녀가 의지했던 강아지가 사라지면서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폭발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아이까지 버리고 원영에게 의지하게 된다. 물론 직접적으로 규남에게 그런 언급을 한적은 없지만 이는 그동안 아무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던 원영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규남 자체의 인식이 점점 변화했다는 것이다. 감독은 규남의 변화에 그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원조교제녀의 역할을 집어넣었지만 솔직히 순수한 사랑으로 인해 원영이 어느정도 영향을 받긴 했지만 단지 그것때문에 변화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듯 싶다.

원영은 한계를 인식한 듯 싶다. 영화 중반부터 원영의 가정이 나오는데, 원영의 야성은 가정이란 틀 안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아내와의 성관계에서 나타나듯이 원영의 야성은 가족제도라는 틀 안에서 거세된다. 인애와의 관계를 더 진전시키지 못하는데서("동네사람들이 알면 어쩔라고..") 원영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원영은 한 생태계의 우두머리수컷이지만 그 생태계는 원영의 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기보단 부수적인 부분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나는 여기에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트릭을 지적하고 싶다. 이 영화는 애초에 알 수 있던 사실을 굳이 처음에 감추고 있다가 중간부터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처음엔 완전 생또라이같은 놈이었는데 아, 실은 저놈도 그냥 보통 사람일뿐이다. 뭐 이런식? 단적으로 말해서 이 영화는 용두사미라는 비판을 받을만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원영의 야성은 점점 (별게 아니라는 것도 밝혀지고)사그라든다. 그리고 결국 규남 앞에서 자신의 야성을 부인하고 만다. "나도 원래 사람이었어."

원영의 죽음은 그 스스로가 야성에 대한 인지를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자신의 야성이 그 자신을 삼킬 한마리의 짐승을 키우는 걸 미쳐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규남이 왜 자신을 따르는지 본인은 무의식중에 알면서도 그것을 인간적인 관계로 전환하려고 했던 데 그 원인이 있다. 야수무리에서 인간적인 정이 야수무리를 지키는 도덕은 아닐진대, 원영은 그와 규남의 관계를 착각하고 인간적인 정을 주는 '인간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에 한때 같은 야수였던 이에게 잡아먹힌 셈이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딱 잘라서 캐릭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 실험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인간사회와 야수무리가 별개의 것인 것처럼 서술했지만..과연 그런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인간사회의 어느 측면에도 이런 점이 있지 않을까..실험이라고 적었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인지라 내가 쓴 글에 겁도 난다. 이 영화는 음, 교훈적이다.

다소 불만인 점은 영화의 얼개를 굵게 단순하게 풀어나가려다 보니 사건의 전재가 치밀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영화의 시간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하나..그러니까 영화의 출발까지는 이게 일상이었는데 영화에서는 갑자기 이게 사건으로 그 본질이 변하면서 전개가 급작스럽게 빨라졌다는 점이다. 규남이 하루이틀 거기서 일한 건 아닐텐데 왜 갑자기 야성이 폭주했을까. 원영이 하루이틀 전부터 원조교제를 한 건 아니었을텐데? 강아지가 하루이틀 없어진 건 아니었을텐데? 원영은 갑자기 왜 이렇게 빨리 착해져?(이걸 해결하기 위해 원조교제녀가 출연하지만 효과적이진 않았다.) 이런 의문들이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던질 수 있는 질문이 많은, 흥미로운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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