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권위에서부터 나온다는 테제를 한국의 현실에서 생각해보자. 한국정권의 권위는 헌법에서 보장한 한국시민으로부터 인정된 정부라는데 있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정당성, 한국정부의 정당성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민의 인정 혹은 승인이라는 용어는 확연한 실체와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모든 시민들이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고 또 동일한 권력과 이를 표현할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중요한 것은 권력을 얻기까지의 과정이 굳이 정당할 현실적인 개연성은 없기 때문이다. 시민의 승인을 얻은 정부는 정당하지만 모든 정부가 시민의 승인을 얻으면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 불합치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민주적인 절차이다. 헌법은 민주적인 절차의 규정을 통해 권력을 얻는 방법을 규정하고 강제한다. 그리고 민주정부의 일상을 헌법이란 외피 아래 규정하며 감독한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 속에서 헌정이라는 개념의 역사는 길지 않다. 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부가 주장하는 정당성은 민족과 근대화에 있었다. 박정희는 시민의 승인으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민주적인 절차와 민주성에 대한 고려를 할 필요가 업었다. 물론 미국이나 시민들의 압력이 거셌지만, 독재정권에 민주성은 독이 될 뿐이다. 박정희의 권력을 강화시킨 것은 무력, 그리고 미국의 경제적 지원, 우세였던 북한과의 대결 혹은 통일국가 수립, 경제발전 등등 수도 없이 많았다. 박정희가 짚어낸 것처럼 한국은 냉전시대의 최전선에서 위기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생존이 국가의 최대목표가 될 수 있었다.(그러나 이로 인해 독재정권 수립의 필연성이 생겨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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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명박을 선택한 한국인들은 민주성의 함양이 꼭 경제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어쩌면 이 둘은 동시에 달성 불가능한 목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더 나아가 극렬한(극렬하지만 다수인)분자들은 민주정이 경제발전을 방해하며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가 우리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역시 다수의 기회주의자들은 이 기회에 권위주의 정권부터 있어왔던 제한조치들의 파괴를 통해 방종을 꿈꾸는 이기주의와 무정부주의의 혼합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있어서 민주적인 절차는 배터지는 아저씨에게 입혀놓은 잘빠진 수트와 같은 존재라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가득할게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헌법과 정부의 연결고리를 약화시킴으로써 헌법이 뒷받침하는 정부의 권위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괴리가 극복되지 않는한 민주화 이후 정치권 내에서 보여주는 우유부단함, 혼란스러움 등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민주적인 절차를 확실히 공고화하던지 아니면 포기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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