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원로 작가 카를로스 푸엔떼스의 1962년作, 원제 "아르떼미오 크루스의 죽음"
주인공인 나, 아르떼미오 크루스는 영락한 세도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노예생활을 하다가
멕시코 혁명에 참여한다. 카란사 장군의 휘하에서 싸우다가 포로로 잡힌 아르떼미오는 같이 사형에 당할 처지에 놓인
곤살로와 서로의 인생을 털어놓고 대지주 가문의 출신인 곤살로는 축재의 비밀을 털어놓지만
아르떼미오는 배신하여 목숨을 건지고 때마침 찾아온 기회를 잡아 명성을 얻게 된다.
혁명전쟁이 끝나고 곤살로의 집에 찾아간 아르떼미오는 곤살로가 말해준 비밀을 이용하여 재산을 가로채고
그의 누이 카딸리나와 결혼한다. 그 후 그는 혁명의 영향으로 인해 약화된 지주들의 위치를 이용하여
그 지역의 대지주들의 땅을 모두 흡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의원직에 오르면서 출세가도에 오르게 된다.
이후 배신과 비리, 미국과의 결착을 통해 그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55년, 그는 위독한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의 가족들이 유산을 요구하는 어지러운 방에서 생을 갈구하며 지난 삶을 회상하게 된다.

작가는 독립 후 보수주의자로 활동한 그의 조부, 지방의 세도가이며 풍안아였던 그의 부친, 기회주의자 아르떼미오,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서 전사한 그의 아들의 삶을 조망함으로써  '배반'의 멕시코사를 그려내고 있다.
독립 이후의 혼란, 혁명전쟁, 미국의 개입 등의 역사적 사실에 집중하기 보다는 개성넘치고 힘있는 캐릭터를 통해서 이들 멕시코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일반 역사소설과는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1인칭, 2인칭, 3인칭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현재 위독한 상태에서 그가 가족들을 바라보고 자신의 몸의 상태를 서술하는 경우엔 1인칭, 위독한 상태에 빠져들어 그 내면의 목소리가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할 땐 2인칭, 그리고 과거를 회상할 땐 3인칭의 시점을 취하고 있다. 1,2인칭을 사용하는 부분에서는 서술의 속도보다는 그 밀도에 집중한다면 3인칭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서술의 속도를 높이는 식으로 인칭의 조절이 자유롭게 쓰이고 있는 점도 이 소설에서 주목할 점이다. 가끔 이러한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는 부분에서 혼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르떼미오의 외면과 내면, 그의 외부와 내부의 이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하는 점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서술방식의 혼용은 꼭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푸엔테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정치는 파편적이고 우리의 역사는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적 전통은 풍요롭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얼굴 즉, 우리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볼 때가 되어야 비로소 그런 풍요의 시간이 온다고 생각한다.” (네이버 펌,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312699) 소설은 55년 아르떼미오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아르떼미오는 멕시코의 한 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죽음은 한 세대의 끝을 보여주지만 그 과거 세대의 경험을 통해 한 나라는 또다른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비록 그 경험이 수치와 실패의 기억들일지라도...

한장한장이 비장하면서도 속도감이 있다. 탈식민주의의 비장함과 중간중간에 들어간 초현실적인 서술(이 시기에도 마술적인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유행했는지는 잘 모르겠다.)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다음은 본문 중에서...

너는 더이상 피곤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을 것이다. 그 이상은 더 지칠 수가 없겠지. 그것은 네가 말을 타고 가기도 하고 도보로 걷기도 하고 또는 낡은 기차들을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끝이 없이 넓은 땅이란다. 이 나라를 기억할 수 있겠지? 너는 기억할 것이다.......
너는, 붉은 사막들, 인디언 무화과와 용설란으로 이루어진 대초원 지붕과 돌로 만든 좁고 길게 낸 작은 창문들이 있는 성벽들, 튼튼한 도시들, 용암으로 된 도시들, 볕에 말린 <아도베> 벽돌로 지은 지방 도시들, 부들로 지은 마을들, 검은 진흙탕이 있는 작은 길들, 한발로 찌든 도로들, 바다의 가장자리들, 기름지면서도 망각된 해안 지대들, 밀과 옥수수가 있는 온화한 계곡들, 북부 지방의 목초지들, 바히오의 호수들, 늘씬하면서도 높다란 숲들, 건초를 올려 놓은 나뭇가지들, 하얀 산꼭대기들, 아스팔트같이 검고 된 흙으로 된 평원들, 말라리아와 사창굴이 있는 항구들, 용설란의 석회분이 들어 있는 인경(鱗逕), 가라앉은 쓸모 없는 강들, 황금과 은을 채광하는 천공(穿孔)들, 공론이 없는 인디언들, <꼬라> 인디언의 소리, <야키> 인디언의 소리, <우리촐>인디언의 소리, <떼뻬외나> 인디언의 소리, <와스떼까>인디언의 소리, <또또나까>인디언의 소리, <나와>인디언의 소리, <마야>인디언의 소리, <치리미아>피리와 북, 셋으로 나눈 춤, 기타와 <비우엘라>, 깃털장식, 미초아깐 사람들의 가느다란 골격, 뜰라스깔라 사람들의 땅딸막한 육체, 시날로아 사람들의 맑은 눈, 치아빠스 사람들의 하얀 치아, 세 가닥으로 꼬아서 딴 머리, <쫒찔레> 인디언들의 허리띠, 성모 마리아의 베일, 시골풍의 상감 세공, 할리스꼬 지방산 유리, 오악시까 지방산 경옥, 배암의 폐허, 흑두상의 유적, 큰 코상의 유적, 사원의 내진과 재단의 병풍들, 물감과 부조, 또 난찐뜰라와 뜰라꼬차과야의 이교적 신앙, <떼오띠와깐>을 비롯하여 <빠빤뜰라>, <뚤라> 및 <우스말>의 옛 명칭들을 가져오고 있는데 그 모든 것은 네게 무거운 것들이다. 단 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비석들이다. 그것들은 움직이지도 않으며, 네가 네 목에다 붙잡아 매고서 갖고 온 것이다. 네게는 무거운 것들이며, 그것들은 네 뱃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그래서 그것들은 네 소간강균들이 됐고, 네 기생충들이 됐으며, 네 아메바들이 된 것이야......
 네 땅.
.......
 너는 그 대지를 유산으로 줄 것이다.
.......
 너는 이 나라를 남길 것이며, 네 신문을 남길 것이고, 팔꿈치로 찌르는 짓과 아첨과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거짓스런 연설들을 들으면서 졸음이 든 의식을 물려줄 것이다. 너는 저당 물건들을 물려줄 것이며, 탁월한 계급을 물려줄 것이고, 대단치 않은 권력을 물려줄 것이며, 헌신적인 우둔과, 조그마한 야심, 우스운 약속, 썩은 궤변, 제도적인 것을 핑계삼는 비겁한 행위, 어줍잖은 이기주의를 물려 줄 것이다.
 너는 그들에게 도적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굴복된 노조들, 새로운 사유 대토지들, 미국 투자들, 투옥된 근로자들, 독점자들, 대 언론 기관, 그들의 품팔이꾼들, 수류탄병들, 비밀 경찰들, 해외 예금, 단골 투기가들, 비굴한 국회 의원들, 아부 잘하는 장관들, 멋진 분열 행위, 기념제와 추도식, 벼룩들과 구더기가 꼬인 옥수수 부침, 무식한 인디언들, 휴직중인 노동자들, 까까중처럼 헐벗은 산들, 잠수용 수중 호흡기 <아콸렁>과 행동으로 무장된 뚱뚱한 사나이들, 손톱들로 무장된 몸매가 마른 사나이들을 물려 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나라 멕시코를 가질 것이며, 그들은 네 상속 재산을 가질 것이다.
 너는 내일이 없는 흐뭇한 타인들의 얼굴들을 물려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오늘 행하고 오늘 말하는 모든 것은 현재이며 현재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위 <내일>이라고들 말하는데, 그것은 그들에겐 내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그렇지 않고 미래가 될 것이다. 너는 내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오늘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들ㅇ느 다만 오늘 살고 있기 때문에 내일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 네 민족이다.
 네 죽음, 네 죽음을 미리 아는 동물, 너는 네 죽음을 춤추며, 네 죽음을 그림으로 그리며, 네가 죽기 전에 네 죽음을 회고하고 있다.
 네 고향.
 돌아가지 않고는 네가 죽지 못할 네 고향.
......
 너는 그 땅으로 출발하여, 그 땅을 발견하고, 시발점에서 출발하여 목적지를 발견하는 그 어린이가 될 것이다. 오늘이야말로 죽음이 시발점과 목적지를 똑같게 만들며, 모든 것을 무릅쓰고 그 두 지점 사이에 자유의 칼날을 꽂는 날이다.
......
(pp.359~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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