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파는 소녀.

 

 

너를 떠올린다.

여행을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고(특히 인도엔 널린 게 사람이니까) 그들을 일일이 기억할 순 없지만(실은 거의 다 기억한다 근데 안 그런 척 해야할 때가 있어) 너는 유난히도 기억에 남는다. 바라나시 우체국의 조그만한 앞마당을 지날 때면 너가 내 팔을 붙잡고 뽀스트카드, 뽀스트카드라고 부르짖곤 했다. 난 내 사진을 인화해서 엽서로 보냈기 때문에 너의 엽서들이 필요없긴 했지만, 왠지 그때는 호객하는 인도상인들이 얄미워서 너의 엽서들을 사지 않았다. 그러나 너는 내 거절이, 아니 내가 기억에 나지 않는 것마냥 처음 온 여행객에게 하듯이 매번 똑같이 생경한 자세로 내 팔을 잡고 뽀스트카드, 뽀스트카드 이렇게 두 번 말하곤 했다. 사지 않는다는 시늉을 하면 너는 토라진 것처럼 다른 여행객들에게 쫄래쫄래 가곤 했지.

어려서부터 장사를 하는 걸 보니 너도 그리 집안 형편이 좋진 않았던 모양이다. 야무지고 쓸데없이 대화를 허락하지 않는 너의 단호함에 비추어 너가 아마 어린 동생을 둔 장녀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냥 내 상상이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이 사진을 보면 너는 적어도 장터에서 구걸하는 아이들보다는 훨씬 잘 입고 훨씬 잘 씻었다. 그리고 사실 파는 사진들도 적어도 먼지는 끼지 않을 정도로 최근에 프린트한 사진들이었어. 지금 너는 아마 그때보다 더 야무지고 예쁜 아이가 되어서 아마 조만간 결혼을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 전에 사과를 하고 싶다. 사진을 다시 보기 전에는 난 널 그저 구걸하는 아이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어. 그래서 그저 한국에서 생각한대로 너에게 엽서를 사는게 부도덕하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작별할 때도 되도 않는 연필 선물을 했지. 너가 콧방구 뀐 것도 나는 이제 이해한다. 내가 무지했다.

그런데 막상 너가 사는 곳으로 가면 나는 무엇이 도덕적이고 무엇이 부도덕한지 도무지 판단할 수 없구나. 너무나도 자본주의적인데, 또 너무나도 전통적이어서 나는 무엇으로부터 윤리를 찾아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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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비쉬누 게스트 하우스. 아니 Rest House 였나? 어쨌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다시 찾아갈 때는 그 위치로 찾아갈 거니까. 그러나 사실 이제 다시 바라나시의 그 골목길을 길을 잃지 않고 다닐 자신은 없다.

 

그해 바라나시의 봄(?) 은 몹시나 더웠다.

가트에는 더위먹은 똥개들만 그늘에 숨어 낮잠을 취하고 있었고 정말 부지런하게 나와서 호객행위를 하던 인도 사람들도 계속 덥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소년들만 그 더위에도 크리켓을 치고 겅가 강의 시원함에 몸을 맡겼다. 겅가 강의 소년들, 그리고 뱃사공들의 피부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겅가의 태양에 단련된(아마 이 경우 태양신이 따로 있겠지) 윤기나는 검은 그 피부. 바늘로 찔러도 튕겨나올 것 같이 탄력있어보이고 더러운 겅가강물에도 오염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지나친 자외선 노출로 인해 겅가 강변에서도 종종 피부암 환자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비쉬누 레스트 하우스는 가트 바로 위에 있어서 아주 전망이 좋았다.

방은 조금 후진 감이 없지 않지만 저 테라스에서 지낸 날들은 인도의 어느 숙소에서도 누릴 수 없었던 호사스러운 날들이었다.

자이살메르의 루프탑에서 보낸 저녁들은 서늘했지만 겅가강변의 시끌벅적한, 그리고 다채로운 만남들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 자리에서 나는 조제를 생각하고, 맛없는 밥을 먹고, 현승이와 맥주를 마시고, 인도에서 유일하게 본 중국 청년과 대화를 나누고, 수학여행온 영국 여자애들과 부질없는 일출구경 계획을 약속하고(약속을 왜 안 지키니 나쁜 기집애들아), 일기를 쓰고, 기타 등등

외롭지 않았다. 정말이지 외로울 틈이 없었다.

 

 

지금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발표를 해야하나 그냥 포기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다.

글을 쓸 자신이 없다, 저기 앉아있던 나와 대화를 나누면 아마 그는 내 말에 콧방구도 뀌지 않을 것이다.

염병할, 어쨌든 나는 지금 저기가 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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