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밝히면 나는 믿음의 수준이 불가지론과 무신론 사이에 있는, 리츄얼에 대해서 많이 의식하면서 교회를 다니는 신자이다. 

신기하게도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를 보기 전에, 내가 두세달 간 열심히 읽었던 책이 벡의 《자기만의 신》이었다. 

벡에 대한 공부가 전무해서 정리를 해서 블로그에 올리긴 너무 힘들기도 하고 또 벡의 다른 책들을 막 보기 시작해서 벡에 대한 글은 먼 미래에나 쓸 수 있을듯 하다.

여튼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벡의 책과 도킨스의 책은 많은 정서상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물론 벡이 21세기고, 도킨스가 19세기. 

그러나 뒤에 쓰겠지만, 어떤 점에선 벡(그리고 바우만)의 종교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앞서가는지, 아니면 유럽이 아방가르드한건지 몰라도

미국이나 한국의 현실, 전장의 공기는 조금 더 도킨스의 정서가 사람들을 자극할 여지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아마 뒤지게 히트했겠지. 


책의 논지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 이 책은 다소 정치적인(페미니스트들과 비슷한) "각성"을 주기 위한, 그러니까 계몽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① 이 책의 신은 불가지론 이신론보다는 인격신에 가까운 신을 다루고 있다(물론 도킨스는 불가지, 이신같은 입장도 마뜩잖아한다).

② 기독교의 여러 논증은 엉망진창에 거짓이다(폭로). 여기에서 주로 등장하는 데몬은 버트런드 러셀.

③ 그리고 자연과 도덕을 기독교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없다. 

④ 오히려, 과학(엄밀하게 말해선 도킨스의 진화생물학)이 자연과 도덕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⑤ 종교로부터의 해방!


우선 나는 이 글이 저널리즘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글이 논의될 수 있는 영역은 어디일까? 종교? 생물학? 사회학? 

만약 종교라면, 신학자들은 도킨스가 말하는 것처럼 진지한 논쟁을 거부할 것이다. 

생물학이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데, 중간에 신학자와의 토론을 거부하는 과학자의 모습처럼, 이런 주제를 진지하게 다룬다는 건 점잖치 않은 일이다. 

세 번째로 인문학이나 사회학에서 이 주제를 다룬다면, 음, 그냥 복고적인 세속주의자? 계몽주의의 한 징조로 이 글을 바라보겠지. 

이 역시 점잖치 않은 일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학술장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폭넓고 점잖지 못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로버트 머튼이 말하는 과학장의 보편성같은 어떤 최종 심급이 있기 힘들다.  

게다가… 도킨스의 극단적인 사이언티즘(문자 그대로, 정확히 사이언티즘이다)은 듀이도 수용하기 힘든 수준이라…


도킨스가 취하고 있는 전략은 모던한 비판이론가의 그것과 같다. 

인식적인 우위로(놀랍게도 도덕에서도!) 무지몽매한 신자들을 일깨우는 것이다!!!!! 놀라움!!!


우선 과학이 신을 대체할 수 있을까?는 사회학의 200년 역사를 공부하시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무책임! 놀라움!)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내가 유신론을 옹호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도킨스의 도그매틱한 접근이 유신론의 그것과 무지무지 유사하다. 

도킨스가 진화생물학을 바탕으로 도덕을 설명하는 그 부분부터 이 책은 시망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도킨스의 진화생물학은 여러 분파 중 한 갈래에 불과하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19

http://www.sciencetimes.co.kr/?news=%EC%82%AC%ED%9A%8C%EC%83%9D%EB%AC%BC%ED%95%99-%EC%9D%B4%EB%A1%A0%EC%9D%84-%EB%B9%84%ED%8C%90%ED%95%9C-%EC%B0%BD%EC%8B%9C%EC%9E%90

도킨스가 속한 진영의 입장과 그들의 현재는 이 기사를 한 번 읽어보도록 하자. 도킨스는 문화에 대해선 별도의 매커니즘을 adhocing하는 입장이기는 하다. 

도킨스는 계몽되지 못 했던 인간의 과거를 딛고 비환원적으로 가치세계의 매커니즘(매커니즘이라 쓰니 앞에 말과 모순이 있는 것 같지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모순적인 것은 생물학이 가치의 영역을 다룰 때, 그 영역은 호킹, 아인슈타인의 과학보다는 유신론으로 오염된 영역으로 떨어져버린다는 것…

호킨스는 자신의 입장이 철저하게 오염되지 않은,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웃긴 건 에드워드 윌슨은 호킨스를 또 인문학 놈팽이로 생각한다는거지…

(사회생물학에 대해선 폴 레비노의 <Artificialiry and enlightenment: from sociobiology to biosociality>가 재밌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나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이 책은(이건 도킨스가 밝히고 있는 바이다) 학술적인 엘리트가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무지몽매한 대중들을 위한 책이다. 

도킨스의 철학적 수준을 내가 알지 못 하지만, 이 책은 길게 봐야 20세기 초반 정도의 과학철학의 수준(러셀의 합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포스트모던한 사람이라면 이 책과 기독교 서점에 가면 숱하게 있는 신앙서적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는 못 할 것이다. 

결국 이런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신이냐? 아니면 유전자냐?

왜 양자택일이어야하지? (물론 도킨스는 자기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에 나의 질문도 저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도킨스가 헛발을 디뎠다고 해서 유신론을 변호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책의 명성과 도킨스의 명성을 알고 이 책을 봤을 때 좀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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