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찌는 여름밤. 내 방 컴퓨터는 부모님이 잡고 있고 나는 얼마 전부터 매일밤 쿡TV로 영화를 보고 있다.
유료컨텐츠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들이 쿡TV 서비스에는 즐비하다.
내가 주로 보는 영화는 액션이나 SF, 공포, 스릴러같이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로맨스나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 장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보고 나면 너무 깊히 그 영화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눈물은 기본이고 몇년동안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내가 본 로맨스는 매우 적은데 그 로맨스 하나하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좋은데 너무 부담된다고나 할까.

그러던 차에 볼 영화를 고르다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월광보합을 보게 되었다.
중학교 땐가 어찌어찌해서 본 것 같은데 그게 선리기연이랑 한 세트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나보다.
월광보합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참 두근거렸던 기억은 있는데 그 후속을 찾아보기엔 그 당시 영화에 대한 나의 관심이 적었나보다. 여튼 오랜만에 본 월광보합은 처음 봤을 때보단 두근대지 않았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부분에 나오는 히로인 주인에 대해서 왜 어렸을 때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말로 이쁘다. 왜 그땐 몰랐을까 ㅡㅡ;;

선리기연은 손오공의 선택에 대한 영화이다. 원작 서유기 역시도 제천대성 손오공이 마음잡고 불법을 구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는 게 주된 스토리라고 봤을 때 캐릭터나 에피소드에 대한 해석은 차치하고 선리기연 역시도 서유기의 큰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유기에서도 손오공은 삼장법사를 떠났다 다시 돌아왔다를 반복하면서 스스로의 힘과 의지를 선한 방향으로 돌리며 불법에 귀의하게 되니까.

그러나 이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와는 별개로 이 영화의 강점은 소설의 결말인 불법에의 귀의가 아닌 손오공이 어쩔 없이 포기한 다른 '선택지'에 있다. 월광보합에 보면 오맹달의 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불로장생하는 것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더 좋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오맹달의 아이를 낳은 요괴는 결국 삼장법사와 불로장생의 꿈을 버리고 인간의 정, 사랑을 택한다. 선리기연에서 주인이 분한 자하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그 운명의 주인공인 주성치는 사랑을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이다. 게다가 얄궂게도 주성치는 애초에 다른 사랑을 살리기 위해 과거로 왔으니 애초에 자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자하의 모습이 참 예뻐보이면서도 너무나 슬퍼보이는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하의 말마따나 '불나방'처럼 불 속에라도 뛰어드는 게 사랑의 한 단면 아닐까.

그리고 사랑을 놓친 주성치. 만약 주성치가 처음 자하의 마음을 받아주었다면 주성치는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월광보합을 조금 더 빨리 사용했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갔더라면 백정정을 살려낼 수 있었을까.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로맨스이야기는 항상 과거에 대한 가정을 동반한 '후회'를 주된 감정으로 삼고 있다. 만약 로미오가 조금 만 더 빨리 깼으면. 만약 내가 그때 조금 더 생각했더라면 등등......이 영화에서 지존보의 주된 후회는 자하의 진실된 사랑을 자신 역시도 받아들이고 있음을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미처 몰랐는데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 "사랑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화마냥 너무나 짧다.

500년 후 인간으로 환생한 주성치에게 빙의해서 화끈하게 "사랑해."라고 말하고 객쩍어하는 손오공의 모습은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만약 그 기한을 정해야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마치 이 대사에 화답하는 듯 싶다. 만약 나도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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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1월에 다시 보고)

주인의 상큼한 모습을 조금 더 추가한다. 

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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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 나타나 여기 산은 내꺼라고 하는 모습에 홀딱 반한 분들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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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문위님도 넘나 귀여웠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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