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형식적인 파격성으로 유명한 곡이다.

소나타 형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제시부-전개부-재현부로 나뉘어져 있고, 교과서에서 본 걸 기억하자면 A-B-A' 이런 식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음악은 무엇보다도 엄밀한 계산과 형식미가 존중되는 분야고, 특히나 이런 이상은 고전주의 시대에는 아주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자.


이 소나타의 2악장은 마치, 열차에서 헤어지기 전에 느끼는 그런 마음을 담은 것 같다.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들 있잖아, 머뭇머뭇거리던 연인이 막상 열차가 달리니까 막 뛰어가는 그런 장면.

만약 우리의 사랑을 A-B-A'라는 형식으로 계속 말해야한다면, 그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 형식에서 벗어나서 사랑을 노래하고 싶으리라.

2악장의 파격을 나는 다소 우발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베토벤같이 치밀한 음악가에게 있어서 우발적인 파격은 큰 의미를, 어쩌면 보다 사소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시간이 없는 사랑에게 지금까지 잘 지켜왔던 형식의 엄격함을 벗어나는 일은 더 큰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는 음악 자체의 논리로 들어가면서 점점 인간적인 것과 멀어지던 음악의 제왕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점들은 토마스 만의 글을 읽으면 좀 더 명확해진다.



그의 강연 주제는 무엇이었던가? 이를테면 그는 '왜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작품 111번에서 제3악장을 쓰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꼬박 한 시간이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제1악장에 대응되는 제3악장을 왜 생략했는가에 대한 베토벤의 해명을 신랄한 위트로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베토벤은 조수가 그런 질문을 하자 시간이 없어서 아예 제2악장을 늘렸노라고 태연하게 답했다는 것이다.시간이 없다니! 게다가 '태연하게' 그런 말까지 했다니. 그런 식의 답변이 질문자에 대한 경멸을 담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정당한 경멸이었다. ... 그러고서 크레추마어는 바로 그 소나타 다단조에 관해 말했는데, 사실 그 작품은 그 자체로 완결되고 정신적 균형이 갖춰진 작품이라 보기 어려우며, 당시의 비평가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풀기 어려운 하나의 미학적 수수께끼가 되었다고 했다. ...  바로 그런 점에서 그들은 베토벤이 과거에 추구했던 경향이 퇴화하고 지나친 심사숙고와 과도한 엄밀성 및 음악적 과학성이 나타난다고 보았던 것인데, 그런 요소들이 때로는 이 소나타의 제2부를 이루는 기괴한 변주곡에 포함된 아리에타 주제 같은 아주 단순한 소재에까지도 적요되었다는 것이다. 갖가지 리듬이 대비되면서 펼쳐지는 온갖 운명과 숱한 세계를 헤쳐 나가면서 제2악장의 주제가 점점 확대되어 마침내는 그 자체를 벗어나, 피안이나 추상 세계라 할 수도 있는 아득한 높이로 사라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 왜냐하면 정점에 도달한 전통을 이미 극복한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은 바로 그 객관성 속에서 스스로를 자신 이상으로 확장시키고 그리하여 위대하고 신비한 신화적 세계, 집단적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우스트 박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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