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매스컴과 미학> 302페이지

"최소한 안드레아 스페렐리는 토포스에 호소하는 데카당스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 준다. 반면 전형적인 것에 호소하는 전형적인 예는 찾아내기가 상다히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강력하고 완전한 의미 속에서 읽은 등장인물에 대하여 전형성을 느끼는 성향이 있는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서 전형을 이용하고 또 그렇게 유도하는 대신 직접 전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전형성은 생활 속에서 이용될 때에만 생산적이고 건전하게 이루어진다(이 역시 매우 쉽지는 않다). 그리고 이것이 책 속에 나타나면 작가의 감수성은 의심을 받게 되며, 우리는 위험하게도 이러한 전형성의 이용에 보다 가까워 지게 된다.

 

 프랑수아 사강의 <한 달 뒤, 한 해 뒤>의 앞부분에서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베르나르가 문학 살롱에서 아무 말 없이 사랑하는 여인인 조제를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려는 마음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피아니스트의 <끊임없이 밀려오는 경쾌한 구절과 함께......>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 매우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악 연주를 듣고 있었다. 이 순간 베르나르는 그 음악의 가사가 자신에게는 하나의 계시와도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욕망, 그들의 젊음과 우울함과 일치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느낌은 매우 희미하고 좀처럼 감지할 수 없기 떄문에, 독자는 이것이 분명해지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작가는 갑작스러운 베르나르의 생각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그것 봐, - 그는 경탄을 금하지 못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 정말 간결한 표현이군! 아 그렇지, 프루스트가 있었지! 하지만 프루스트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여기서 짧은 에피소드는 끝이 난다. 이제 마법은 깨지고, 베르나르는 다시 살롱의 생활로 돌아온다. 이 여성 소설가는 베르나르를 통하여 몇 가지 상황들이 문학적으로 한계에 도달하였음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들의 참신함을 이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이제는 모든 것에 초연해진 한 문인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려고 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에피소드에서 또 다른 예기치 못한 작용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로써 프랑수아 사강이 결국 베르나르와 동일시된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분석되고, 심오해지는 바로 그 순간, 발을 빼고 만다. .. 작가는 우리에게 교훈적인 가치의 결여를 보여 주었으며, 다른 작품으로부터 상황과 특성을 차용해 옴으로써 어떤 상황과 특성을 만들어 내는 것을 포기하였다. 세심함이 결여된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에게 등장인물을 규정해 주지 못하고, 작가의 미숙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작가는 적어도 이 경우에서는 책을 통한 경험의 우월함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으며, 삶의 활력을 지닌 서사 스타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무능력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러한 태도에는 또 다른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편의상 독자의 속물근성과 일종의 속물적인 공모를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었다. 독자가 독창적인 예술적 사실에 대하여 이미 감동을 맛보았으며, <마음이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처럼 또 다른 감동에 내몰리게 됨은 너무나 분명하다. 따라서 작가는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결실을 일구어 내었던 것이다. 작가는 감동을 <묘사>하거나 만들어 낼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독자를 <기성화되어 있는>감동으로 이끌었다. 속물근성과 게으름, 또한 이미 충분히 잘 알려져 있는 <보편적인 것들>의 교환 등은 맥도널드가 의미하는 전형적인 미드컬트의 표현이다.

 

 


요즘 공부하기도 하는 내용이지만 책을 펼쳐보다가 조제라는 이름에 화들짝 놀라 저 페이지를 봤던 것 같다.

내용은 사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그 이름이 반가웠다.

 

난 바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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