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 호아?(What happened?)

 


(http://news.nate.com/View/20110223n25811&mid=n0507&cid=246911)

저 기사의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아, 인도이야기로구나, 바로 느낌이 왔다.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은 인도일 수 밖에 없다. 국제적으로 입방아에 오르는 나라들 중 미국은 세계의 폭력을, 중국은 세계의 변화를, 인도는 세계는 여전히 하나가 아님을 보여준다.

 

인도에 오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인도에 비교적 푹 빠져지낸 사람으로써 잠깐 인도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쓸데없이 매일 오래전 여행의 기억으로 자위한다는 의미보다는 문화와 민족에 대한 나의 관심, 공동체의 역사와 작동양식, 카스트와 계급, 종교등 문명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나의 관심에 인도는 아주 유용한 시각들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살아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나는 인도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쓴다. 물론 인도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도 갖고 있지만,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건 그런 감상적인 주제는 아니다.

 

왜,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17명이나 되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으로부터 글을 시작해보자. 기사에서는 서벵골에서 서식하는 코끼리들이 서식처를 잃고 먹이를 얻기 어려워지면서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한국이었다면 사람이 17명이나 잡아먹히는 상황이 왔을까. 코끼리가 서식지를 잃는 과정에서 사살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코끼리가 도시로 넘어와 행패를 부리는 것 자체도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 속한 문명에서 인간은 짐승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이고 당연히 이 둘은 대립되는 관계를 갖는다. 유교의 어느 텍스트건 인간에 대한 존중을 넘어 자연 그 자체의 의미를 강조하는 부분은 찾기 힘들다. 약간 오버했는데 당장 도시로 넘어온 멧돼지들의 운명을 생각해보라.

 

인도스러움의 첫번째 특성은 종교적(religious)인 것이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면 사람잡아먹은 코끼리보다 더 쇼킹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선 그 코끼리떼를 사살하거나 가두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게 충격적이다. 부검당한 코끼리 역시 애초에 사살당한 게 아니라 운이 없었기 때문일뿐, 애초에 이 사건은 사람만 죽고 끝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인도인들은 코끼리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코끼리들을 수용하거나 사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사건이 난 이후에도 말이다. 사람을 17명이나 먹은 코끼리보다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도 별 대책없는 이 나라가 더 쇼킹하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는 인도에서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인간과 자연의 위계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기사에서 언급하듯이 코끼리가 사살되지 않는 것은 단순히(단순하다는 게 황당하지만) 코끼리가 신성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소가 도시를 돌아다니고 아무데나 똥을 싸지르고 개들이 어디에나 늘어져있으며 염소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으러 다니고 멧돼지들은 음식물쓰레기를 뒤지는 그런 풍경들이 아마 인도를 처음 여행한 사람들에게 가장 충격을 줄 것이다. 그렇다고 임자가 있어서 그 동물들을 돌봐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동물들은 자기 나름대로 인간의 공간을 무시하고 인간들이 흘린 부스러기들을 먹고 살아간다. 이건 인도인들이 특별히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니다. 즉 인도인들을 우리가 가진 동물애호론자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오류다. 동물의 인권개념까지 나아간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동물들이 도시를 활보하진 못하지 않은가. 인도에서 동물이 마음껏 돌아다니는 것은 인도인들이 모종의 이유로 동물을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바로 종교.

인도의 현대 힌두이즘에서 소는 살생할 수 없다. 여기에서 굳이 현대라고 이름붙인 것은 지금의 철두철미한 채식의 습관이 전통적인 것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현대의 힌디들은 그들의 전통이 고대 아리아인들부터 내려온 것임을 주장하지만 채식하는 전통은 19세기 힌두교의 쇄신과 함께 시작된 비교적 최근의 전통이다. 뭐, 그렇다고 하자. 그 시작이 짧든 길든 인도인들의 현재의 종교는 소를, 개를, 여타의 짐승을 살생하는 것을 금한다. 그렇다면 신성하지 않은 동물은? 마찬가지로 신성하지 않기 때문에 살생하지 않는다.

 

동물은 사람들과 별 관계없이 자기들끼리 잘 산다. 물론 소때문에 길이 막히거나 원숭이가 마당에 난입해서 열매를 따먹는 경우에는 적당한 응징이 가해진다. 소의 엉덩이에 오토바이를 들이민다거나 개를 푼다거나하는.. 그러나 그것뿐이다. 평소에 짐승은 인간과 관계가 없거나, 도리어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존중받는다. 그러다보면 동물을 애호하는 감정이 생기지 않겠냐마는, 일차적인 원인이 종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종교때문에 아예 동물을 먹는 것도, 죽이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때문에 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은 아주 작지만 단적인 사례이다. 바라나시에서 나는 친구가 된 스물셋짜리 브라만에게 사육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 착하고 신성한 소를 잡아먹냐고 물었고 나는 우리에겐 그저 소가 먹을거리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지만 소가 착한 것과 먹을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아 뒤가 찜찜했다. 하지만 내가 만약 힌디라면 나 역시 그렇게 설명해야 했으리라. 종교란 세계관, 보는 법과 생각하는 법,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 우린 보는 법, 생각하는 법, 행동하는 법이 죄다 달라서 그 문제에 대해 서로 명확히 해명하지 못 했다.

 

이런 작은 문제에서 좀 더 나아가보자.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단되고 전쟁을 치루고 아직도 양국 내부에서 폭탄테러와 불평등이 자행되는 이유는 종교가 첫번째다. 한국과 북한의 분단을 종교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문제는 종교적이라는 것을 빼놓으면 설명할 수 없다. 현대의 인도는 세속국가지만 여전히 사회적 갈등들은 종교적인 이유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종교때문에 전쟁을 하고, 목숨을 바치고, 죽고 죽이는 피의 날들을 보내왔다. 아직도.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아니 당췌 종교가 뭐길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인의 시각에서는 종교가 뭐길래,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돈과 명예, 그 무엇보다도 종교는 우선되는 것이다. 심지어 껄렁껄렁한 동네 양아치부터 델리의 허연 엘리트들까지 종교는 늘 그네들 삶 아래 깔려있다. 아무리 세속적인 삶을 살아도 육식을 하면, 다른 카스트와 몸을 섞으면, 해외에 나가면, 죽을 때 화장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인도에서 종교는 아주 기본적이고 필수불가결하고, 사고의 기초가 된다. 이런 이유로 인도적인 것은 우선 종교적(religious)인 것이다.

 

 

부연1) 그렇다고 종교적인 것이 인도적인 것은 아니다.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히스패닉 문명이나 티벳주위의 고산족들같이 다른 문명들도 충분히 '종교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그 내용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따라서 종교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일반적인 속성이며 그것을 통해 인도를 이해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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