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제기해보자.
음악지식을 알면 알수록 음악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가령 악보를 볼 줄 아는 사람, 곡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보다 더 그 곡에 대한 상위의 해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일반대중이 상대적으로 음악에 대한 전문가인 연주가와 지휘자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들의 음악에 대한 평을 내릴 수 있을까?

최근 나의 흥미를 돋군 논쟁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클래식 음악 사이트 고클래식(http://www.goclassic.co.kr/)에서는 음악적인 지식과 음악적인 이해, 인식, 그리고 음악 자체에 대해 꽤 심도깊은 논쟁이 이루어졌다. 나의 지적관심사와도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꽤 재미있게 그 논쟁을 지켜봤다. 간단하게 그 논쟁의 경과와 대립되는 각측의 의견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이 논쟁을 소개하고자 한다.

논쟁의 발단은 교향/관현악 게시판의 6283번글, Dvorak(이하 D)님의 " 데이비드 진만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구해서 들어봤습니다만.."이라는 글로부터 시작되었다. (http://blog.goclassic.co.kr/dvorak/tb/1285143374) 이 글에서 D는 데이비드 진만의 연주를 밋밋하며 마치 맹물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사실 이 글 자체로 보면 논란의 여지는 없었고 그 게시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감상 수준의 게시글이었다. 하지만 이 글에 hajin(이하 H)님의 댓글 "음악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하여..."이 게시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http://blog.goclassic.co.kr/hajin/tb/1285181631) 이 글에서 H는 음악감상의 더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해선 항상 배움의 자세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상자는 음악을 해석하고 그것을 접하게 만들어주는 연주자와 지휘자의 권위를 인정해야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그들이 음악을 훨씬 많이 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그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 때문에 올바른 비평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며 (권위로부터 습득된 음악적) 지식에 기반한 것이어야한다고 H는 주장하고 있다.

H님의 주장은 감상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충고로서 나쁘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게시된 시점이 다분히 D님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도가 의심받았다. 또한 음악지식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좋았지만 그것을 습득하는 방법, 그리고 음악가집단의 권위에 대한 정당화에 있어선 실패했다. 그리고 청자집단에 대한 정의가 모호했기 때문에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글에서 프로의 윤리를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음악이란 것이 단순히 귀의 즐거움을 만족시켜주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지적인 기반을 둔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추후 전개될 논쟁에 중요한 주제를 제공해주었다. 음악은 단순히 감각적인 행위만은 아닌 것이다.

클래식음악에 대한 아주 평범한 의견은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가사가 없는 순수기악의 경우에는 적어도 작곡가가 제시한 악상들을 파악하고 그것을 종합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익숙한 의사전달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 과정을 어렵게 느낄 수 밖에 없다. 이 논쟁이 진행된 커뮤니티는 클래식음악에 대한 고수와 초보들이 다양하게 분포해 있는데 암묵적으로 그들은 '어려움'에 대한 동의를 갖고 있다. H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 댓글은 그가 제시한 방법 중 한가지, 악보를 읽을 수 있게되면 음악에 대한 이해가 증진된다는 점을 공간감을 시각화한다는 설로 지지하고 있다. 이 논쟁에서는 대체로 음악지식에 대한 추구 자체가 곡에 대한 이해를 수월하게 한다는 점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다. 일단 도움은 되는 것이다.

논쟁은 이어서 음악토론 게시판의 1148번글, souly(이하 S)님의 "악보는 우리를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해줄까? "(http://blog.goclassic.co.kr/hajin/tb/1285181631) 글에서 보다 정돈된 주제로 진행되었다. S는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음악지식은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S에 따르면 '악보'는 음악가에서 그것을 연주하는 집단에 제시하는 기호로서 존재하는데 결국 청취자가 듣는 음악은 음의 형태를 띄기 때문에 음악감상에 악보를 곁들이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S는 피터 키비가 제공한 사례를 보여주는데 이 사례는 청자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음악을 인식하지만 궁극적인 미적 경험은 같음을 보여준다. 결국 음악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대적이라는 점과 그것을 수직적인 위계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S는 악보, 그리고 여러 이론과 지식을 통해 음악에 대해 보다 폭넓은 이해는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보다 깊은 이해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없음을 논증하고 있다.

S의 의견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것은 fishtail(이하 F)의 "souly님 생각의 몇 가지 오류."(http://blog.goclassic.co.kr/fishtail/tb/1285770203) 글이다. souly의 의견에서는 음악의 인식과 미적 체험이라는 용어가 다소 혼동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점,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감동하든 음악감상은 분명 음악가가 하나의 곡을 통해 제시한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souly의 논법은 음악에 대한 이해가 넓은 차원의 것이라는 것을 논증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어떤 목적을 가진다는 점, 그 목적아래 넓은 차원의 위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F는 짚어낸다. F에 따르면 음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재해석을 가하는데 여기에서 음악지식이 작용할 원리가 존재한다. 또한 souly는 미적 체험을 단순히 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충 이런 큰 틀 아래서 여러가지 의견이 펼쳐졌고 이 안에서 음악에 대한 인식과 음악활동의 본질에 대한 질문들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비록 학술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 논쟁은 아니었고 결론을 얻기엔 논의가 부족했다는 점은 있지만 정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진 논쟁으로선 꽤 훌륭한 수준이었다. 커뮤니티 자체의 분위기는 논쟁의 격화를 줄이고 그것을 실용적으로 해석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클래식 동호회원으로서 필요하고 건전한 논의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하나의 감상법과 비평법을 강요할 순 없지만 적어도 한 개인은 스스로의 방법론에 대해 심의하고 그것을 습득할 필요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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