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에서 스타브로긴의 고백(혹은 치혼의 암자?)이라는 마지막 장이 떠오른다. 사실 이 마지막 장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삭제한 바 있고 나 역시 이 장은 작품의 통일성을 크게 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반전이 심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샤토프와 트로피모비치의 죽음, 그리고 스타브로긴의 죽음까지 달려온 독자가 생각하고 있었던 주제로부터 다분히 벗어난, 흥미롭지만 벗어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벗어났다기 보다는 '고백' 장은 마치 같은 작품 안에서 작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도발같다. 『악령』은 여러가지 주제들이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는데 갑자기 스타브로긴이 이 불협화음은 다 어떤 주제의 부분들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셈이랄까. 만약 우리가 스타브로긴의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해결해야할 문제들은 남아있다.

-그렇다면 스타브로긴의 주제는 무엇인가?

 나는 스타브로긴의 구원에 대한 탐구를 보고 스웨덴보리의 영지주의가 떠올랐다. 스웨덴보리는 보통 윤리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되는 종교적인 구원을 진선미가 합치된 차원으로 고양시키고자 했다. 가령 구원의 윤리가 삶의 복잡다양한 쾌락과 만족들을 배제하고 삶을 가난하게 만든다면, 그 가난한 삶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은 만족을 모르는 상태로 언제나 갈망만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지복의 천국에서 갈망만을 여기는 정신은 무슨 복락을 누릴 수 있을까? 스웨덴보리는 그래서 천국은 그런 모든 가능성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성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스타브로긴의 탐구는 구원이라는 관념에 대한 도전이다. 그의 탐구는 철저하게 윤리적인 힘의 반작용을 관찰하고 그럼으로써 신이 어떤 권능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데 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재력과 인간적인 능력은 그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어떠한 지점에서도 그의 행위에 대한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세계는 침묵하고 스타브로긴의 간지는 치혼에게 무시당한다. 그의 연구는 그의 노력에 비해 적절한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한 것이다. 

-스타브로긴의 주제는 다른 주제들을 포괄하는가?

 키릴로프의 무신론이나 샤토프의 슬라브주의, 아니면 스테판의 자유주의는 스타브로긴의 윤리적인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만약 스타브로긴의 관점으로 악령을 재구성한다면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애초에 기획했던 '정치적 팸플릿'의 형태를 깡그리 무시하게 된다. 물론 『악령』을 정치적 팸플릿이라고 규정하는 건 아니다(그러나 실제로 『악령』에 대해 정치적 팸플릿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도스토예프스키를 현기증만들게 했던 각양각색의 악령들이 매달려있던 정치라는 문제를 완전히 종교로 환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스타브로긴의 고백을 『악령』의 다른 부분들과 어울리도록 해석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라면서 무책임하게 글을 끝맺는다....ㅠ 학교에서 책 갖구 왔는지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없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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