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일을 처음 했을 때가 생각난다.

정신없이 바빴고 수학을 안 하다 해서 기억도 잘 안 났다.

아이들은 예뻤지만 착하진 않았다. 

그러나 서로 착할 수 없는 것은 서로 기능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도 이게 잘 될 지 안 될 지 모르겠지만 여튼 팔아야 했다. 

어르고 달래고 그러면서도 이게 당최 필요한 일인가 드는 지속적인 의문.

목도 아프고 감기도 많이 옮았다.

그런데 그나마도 학원을 올 수 있는 아이들은 비공식적이지만 교육시장의 보호를 받고 있고 있다는 점을 알았다.

학원은 성적을 올리는 목적도 있지만, 암묵적으로는 맞벌이가 가능하게 아이들을 잠시 보육해주는 공간이라는 점을 배웠다.

애들이 갈 곳이 없는데, 그건 어른들이 나빠서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보다 위험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외적인 위협은 점점 늘어가는데 공권력은 -비록 한국의 공권력은 굉장히 세밀하게 서비스하는 편이지만- 그 영역을 다 커버할 수 없고,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포스트모던 사회학 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위험을 개인이 컨트롤하고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위기에 서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공동체, 자발적인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촘촘이 만들어진 공동체들이 연대하는 순간 그 힘은 더이상 국가가 제공하기를 포기한 사적인 영역까지 충만하게 채워줄 수 있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 기보다는 아직 거기까진 공부가 안 되어있는 게 사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대학원 첫 학기에 읽었던 마페졸리의 부족사회란 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물론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아직도 확신이 없지만;; (난 마페졸리의 논변이 자연주의가 아닐까 의심한다)


여튼 그래서 되게 떠돌다가 온 지금의 일터는 아주 마음에 든다.

적은 페이를 받지만, 일터의 인격적인 분위기와 우리 단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 다루고 있는 문제들 모두 마음에 든다.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고 싶고 도움되고 싶은, 그런…


그래서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고 그 길을 인도한다면,

나의 긴 방황도 이를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사람은 다 미완의 존재라지만, 나는 왜이리도 다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돌인지. 

일년전의 내가 너무 어리석고, 삼년전의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가늠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일을 사랑하고 교만하지 않으며 계속 공부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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