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동에서 의정부로 가는데 1시간반, 그래도 꽤 일찍 도착한 편이어서 허겁지겁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의정부는, 음, 예전에 군시절에 많이 지나다니던 기억이 난다. 43번도로를 쭉 타면 서울에서 의정부, 포천을 경유해 철원까지 도착하니까. 반대로 철원에서 뭔가 행정배차가 났을 땐 의정부에 들리곤 했다. 고양으로 파견을 갔을 때는 장교를 꼬셔서 의정부에서 롯데리아 햄버거를 우걱우걱 처먹던 기억이 난다. 그땐 네비게이션없이 정말 지도를 읽고, 길을 외워서 다녔으니까 음 의정부 시내에서는 꽤나 헤맸던 기억이 난다. 의정부역에 도착했을 땐 아 여기가 그때 그곳이었구나 뭔가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음...나는 아직도 코란도나 갤로퍼 한대 뽑아서 놀러다니는 꿈을 갖고 있으니까...그때의 기억이 내 삶에 찍어놓은 자국은 왠만해서는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의정부에서 광릉수목원에 가는 버스를 탔을 때가 3시, 모임은 2시반에 모이기로 했는데 이래저래 10분, 20분정도 잡아먹고 버스를 어디서 탈 지 몰라 헤매다가 늦은 시간에 출발하게 되었다. 입장이 4시까지이고 관람이 5시까지이니 꽤나 늦은 셈이었다. 게다가 산골은 해도 빨리져서 사진은 고사하고 그저 떨다가 오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뭐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런 걱정들은 모조리 들어맞았지만 뭐 있는대로 긍정하기로 했다. 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겨울숲을 꿈꾼 건 아니었으니까. 실은 뭐 겨울숲은 앙상하고 처량한 맛이 있어야되지 않겠느냐고, 이게 진짜다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런 외로움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 간 것이었으니까. 뭐 오히려 더 좋지 않겠냐고. 들어가자마자 귀에 이어폰을 꼽았다. 맨귀에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그때 나는 된장끼가 발동한 모양인지 음악이 듣고 싶었다. 잽싸게 슈베르트 8번을 건다.

해는 지기 시작하고 제법 서울에서 떨어진 산골의 공기는 차다. 나는 몇몇 추억들과 지금 나와의 거리를 생각해본다. 거기에서부터 나는 어디까지 왔나. 그 추억들과의 인력은 얼마나 강한가. 그러다 그것들에 끌려들어갈 것 같으면 잽싸게 셔터들을 눌러댔다. 그것들은 나의 현재 위치를 얄짤없이 말해준다. 사진들은 차갑고 매정하게 너는 여기에 있고 그것들로부터 떨어졌음을 그리고 앞으로 그것들로부터 더 멀어질 것임을 말해준다. 말해준다라는 표현도 실은 어울리지 않고 그것들은 내 등을 떠민다.

그때 그 사람들은 나를 부정할까. 1악장의 추위 속에서 튀어나오는 2악장은 꼭 따듯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느낌이 든다. recall이란 단어가 정확하겠다. 나그네가 실제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그의 머릿속에 정말 더 생생하게 펼쳐놓은 기억들. 슈베르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났지만 수십년뒤에 갑자기 튀어나온 교향곡을 듣고 사람들이 그를 다시 기억한 것처럼.

난 그게 너무 낯간지럽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내 사진들도 나에게 있어선 그런 존재들이 될 것이다. 내가 군에 들어갈 때 들고간 몇장의 사진들처럼 내가 먼 길을 떠날 때(돌아오지 않겠지 아마?) 그 길 위에서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추억들을 되새김질하고 있지 않을지.


나는 정말 하나도 잊지 않고 있다오. 부지런히 찍은 사진들엔 당신들의 얼굴이 녹아있어. 가끔은 웃고 가끔은 눈물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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