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음식점에 가면 머나먼 땅에서 오랜 시간을 떨어져 산 고려인 동포들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민족에 본질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을 지나도 여전히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건 조금 신기하게 다가온다.

강제이주를 당했을 때 고려인들에게 붙은 별명이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지금에는 오히려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게 사라져가는 식문화로 여겨지는데, 고려사람들은 여전히 개고기를 좋아한다니 참 묘한 일이다.

러시아 음식은 드넓은 땅에 사는 무수히 많은 민족들, 정주민족, 유목민족, 유럽인, 아시아인 모두 모여 만든 음식인데,

그중 개고기, 특히 개장은 고려인들이 러시아음식에 추가한 메뉴이다.

애초에 '개장'이라는 말 자체가 여전히 한국에서는 개고기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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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을 시키면 익숙함과 동시에 낯섬을 느낀다.

간과 향을 맞추기 위해 소금과 이런저런 소스들을 주는 건 한국과 같다.

다만 그 소스가 우리가 익히 한국에서 보던 것들과 다르다.

특이한 건 미원을 겁나 많이 준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정체를 모르는) 향신료 하나, 마늘 팍팍,

가장 고려인 개장의 포인트는 고수를 넣는다는 점이다.

같이 간 고려인 분이 그러더라. 팍팍 넣으라고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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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맑은 국으로 나온다. 개고기를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소고기와 질감은 비슷하다.

국물을 떠먹어보면 의외로 향을 잘 잡아서 훌륭한 느낌이 든다.

개고기 요리의 포인트는 개고기의 향을 잡아내는 것이니까.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향이 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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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국의 상태로 먹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다데기를 넣어야지.

일단 주어진 고명을 다 넣는다. 마늘 팍팍, 깨도 넣고, 소금, 매운소스, 향신료 등등

그런데 의외로 간을 맞추는게 쉽지 않다.

으음 평소 소금을 많이 치는 편이 아니라 살살살 넣으니, 같이 가신 분이 팍팍 넣으라고 하신다. 

러시아 음식들은 간을 팍팍 해야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고수를 아주 잘 먹는 편은 아닌데, 고수와 어우러지는 맛이 있었다.

맛있으면서도 뭔가 위화감이 들고, 그렇다고 고수를 넣지 않으면 맛을 주는 포인트가 사라지고…


 그러므로 개장은 분명 한국음식인데, 한국음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먹을 순 없었다. 

같이 일하는 고려인 선생님이 생각났다. 젊은 여자분인데 국물을 아주 좋아하시고, 특히 개장과 개고기를 좋아하신다고 했다.

성적인 편견이나 고리타분한 견해를 설파하자는 건 아니고, 한국문화에서 보통 여자들이 개고기를 잘 안 먹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개장을, 순대국을 열심히 먹는 선생님의 모습은 늘 신비롭게 느껴진다.


같으면서 다름, 다르면서 같음은 아닌 것 같다. 같으면서 다름에 가까운 것 같다.

아, 음식포스팅에서 중요한 점 맛. 맛은 의외로 심심할 정도의 깔끔진 맛이다. 가격이 한국 영양탕에 비하면 싼 편이기도 하고…

마음으로는 추천하고 싶지만, 일반적인 초이스는 아닐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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